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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라는 이름의 그늘과 빛
윤수천/동화작가
2015-01-02 11:34:52최종 업데이트 : 2015-01-02 11:34:52 작성자 : 편집주간   김우영

'강아지 똥'으로 유명한 동화작가 권정생이 동화를 쓰겠다고 작심한 데는 아버지의 각별한 애정이 한 몫을 했다. 오사카 시청의 환경미화원이었던 아버지는 거리 청소를 하다가 버려진 헌 책을 보면 집에 가져와 뒤뜰에다 모아놓곤 했는데, 어린 권정생은 이 책들 가운데서 동화책을 골라내어 혼자 읽곤 했던 것이다. 

하루 세 끼 입에 풀칠하기조차 어려웠던 때에 만난 동화책은 어린 권정생에게 또 다른 세상을 보여주었고 마침내는 동화책을 쓰는 작가가 되고 싶다는 욕망을 불어넣어 주었던 것이다. 가난한 생활 탓에 영양실조가 원인이 되어 얻은 만성 폐결핵으로 일생 동안 고통 속에서 지내야만 했던 그였지만 결코 동화 쓰는 일을 저버리지 않은 이면에는 그 시절에 만난 동화 세계의 감동과 설렘 덕분이었으니 권정생에게 있어 아버지란 존재는 단순한 혈육의 관계를 넘어 인생의 스승으로 각인됐다 할 것이다. 

한국 사회에서 아버지란 존재는 곧잘 껍데기나 그림자로 비유되곤 한다. 그러다 보니 한 가정의 중심축이면서도 항상 변두리 신세 취급을 받거나 있어도 없는 존재로 인식돼 왔고, 아버지들 역시도 이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였다. 그 많은 문학작품과 드라마, 영화 속의 아버지들을 보면 이 또한 거짓말이 아니다. 

정이라곤 손톱만큼도 없는 엄한 아버지는 기본이었고 폭군에다 무법자, 술꾼에 이르기까지 아버지는 '어쩔 수 없는' 존재로 그려진 것 또한 사실이었다. 이에 반해 어머니란 존재는 아버지의 반대적 이미지로 잘 알려져 왔다. 그 한 예로 베스트셀러를 넘어 스테디셀러가 된 신경숙의 소설 '엄마를 부탁해'가 만약 '아버지를 부탁해'란 제목을 달았다면 그와 같은 엄청난 판매부수를 올렸을까 싶다. 

언젠가 문학 동아리 주부들과의 모임에서 아버지란 주제로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는데 퍽 재미난 이야기가 많이 나왔다. 한 주부는 한때 자기 아버지에 대해 섭섭함을 넘어 원망의 대상이었다고 했다. 아들선호 사상이 유별난 아버지를 모시고 살다 보니 막내딸로 태어난 자기는 항상 찬밥 신세였다는 것이다. 
이름조차 끝순이라고 부른데다가 아들이 없는 죄가 마치 자신에게 있다는 듯 걸핏하면 화풀이의 대상이 되곤 했단다. 그런데 어느 날 학교 대표로 뽑혀 읍내 웅변대회에 나갔던 날, 한창 열을 올려가지고 웅변을 하고 단상을 내려오는데 청중들 속에 아버지가 와 있는 것을 보았다는 거 아닌가. 그날 그는 입상보다도 더 큰 충격과 기쁨을 맛보았단다. 그리고 그날 이후부터 아버지에 대한 생각을 바꾸었단다. 

또 한 주부는 구두쇠인 아버지에 대해 늘 불만을 갖고 자랐다고 했다. 교과서 외의 책은 꿈도 못 꾸었고 학용품도 공책과 연필 외는 남의 것을 빌려서 쓰라고 했단다. 그런 형편이었으니 운동화는 바닥이 다 닳아서 길바닥의 물이 올라와야만 새 것을 신을 수가 있었단다. 
하루는 깨진 유리병 조각을 잘못 밟아 발바닥에 상처를 입고 집에 오니 아버지란 사람이 약을 발라주기는커녕 눈을 어떻게 뜨고 다녔기에 유리병 조각을 못 봤느냐며 호통을 치더라는 게 아닌가. 그런데 그런 야속한 아버지가 자기가 열병에 걸려 인사불성이 된 날밤, 주무시다 말고 일어나 자기를 둘러업고 읍내 병원까지 뛰던 아버지를 평생 잊을 수가 없다고 했다. 

 '아버지'라는 이름의 그늘과 빛_1
사진/김우영

요즘 극장가를 주름잡는 한국영화로 '국제시장'이 있다. 어린 몸으로 한 집안의 가장이 되어 6.25전쟁, 서독 파견광부, 월남전 자원근무 등 어려웠던 한 시대를 꿋꿋하게 살아낸 아버지가 주인공이다. 이 땅의 국민이라면 꼭 한 번 봐야 할 영화라는 입소문에 나도 그 영화를 보았다. 오전 시간인데도 객석을 꽉 메운 관객들이 먼저 내 눈을 끌었다. 그리고 그 다음은 나도 모르게 영화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아버지는 그렇게 관객의 가슴을 먹먹하게 만들고 마침내 여기저기서 훌쩍이는 감동의 흐느낌으로 이어져갔다. 

2015년 새해가 밝았다. 새해엔 이 땅의 아버지들이 어깨를 활짝 펴고 가정과 사회를 위해 씩씩하게 나서주는 해였으면 좋겠다. 그리하여 아버지의 숨겨졌던 저 힘과 지혜, 투박한 정이 온 누리에 가득하기를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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