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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 울음소리와 국어책 읽는 소리
윤수천/동화작가
2015-10-25 10:40:34최종 업데이트 : 2015-10-25 10:40:34 작성자 : 편집주간   김우영

어릴 적엔 동네마다 아기 울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앞집에서 아기 울음소리가 나면 뒷집에서도 아기 울음소리가 나면서 온 동네에 아기 울음소리가 충만했던 기억이 새롭다. 어디 아기 울음소리뿐이랴. 초등학교에 갓 들어간 아이들의 국어책 읽는 소리 또한 그랬다. 옆집에서 국어책 읽는 소리가 났다 하면 이에 질세라 그 옆집, 그 옆집에서도 국어책 읽는 소리가 낭랑하게 꼬리를 물었다. 

아기 울음소리와 국어책 읽는 소리_1
아기 울음소리와 국어책 읽는 소리_1

이런 풍경은 사람 사는 곳이면 어느 동네고 비슷비슷했다. 그리고 그 정겨운 소리를 듣는 동네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흐뭇한 표정이었고, 거기서 사람 사는 즐거움을 느끼곤 하였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이런 정겨운 소리를 듣기가 퍽 어렵게 되었다. 국어책 읽는 소리를 들은 게 언제인지 기억조차 가물가물하다. 아기울음 소리는 또 어떤가. 그 역시 가뭄에 콩 나듯 한다. 이러니 학생 수가 모자라서 폐교되는 학교가 늘어나고 출산 문제가 한 가정의 문제에서 사회 문제로까지 확대될 수밖에 없다. 

아기 울음소리는 우주의 소리요, 생명의 소리다. 특히 새벽이나 아침의 아기 울음소리는 세상이 어둠 속에서 깨어났다는 신호이기도 하다. 그리고 아기의 저 환한 얼굴, 깨끗함을 넘어 경건하기까지 한 저 동안童顔, 그건 세상을 비추는 희망의 거울이다.

'어린이가 잠을 잔다. 내 무릎 위에 편안히 누워서 낮잠을 달게 자고 있다. 볕 좋은 조용한 오후다. 고요하다는 고요한 것을 모두 모아서 그 중 고요한 것만을 골라 가진 것이 어린이의 자는 얼굴이다. 평화라는 평화 중에 그 중 훌륭한 평화만을 골라 가진 것이 어린이의 자는 얼굴이다.'
소파 방정환 선생은 어린이를 이렇게 예찬했다. 때 묻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인간의 모습을 소파 선생은 '어린이'란 낱말로 대신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만큼 어린이를 사랑한 이 땅의 큰 아버지였다. 

어린이, 그들을 가진 가정만큼 행복한 가정이 이 세상에 또 어디 있을 것인가. 내 지나온 날을 돌아다봐도 가난했을망정 그래도 가장 행복했던 시절은 아이들이 태어나고, 그 아이들이 무럭무럭 자라 줄 때였다. 그것을 증명해 주는 게 바로 우리 집 사진첩이다. 하루가 다르게 자라는 아이들의 모습을 놓치기 아까워 그때그때 카메라에 담았던 그 기쁨. 카메라 앞에서 갖은 재롱과 미운 짓을 보여주던 아이들. 그 순간만은 세상의 그 어떤 근심과 걱정도 끼어들 틈이 없었다.  

우리 내외는 지금도 종종 사진첩을 꺼내 놓고 들여다보기를 즐긴다. 어려웠던 시절을 잘 견뎌낸 지난날의 힘은 바로 아이들에게서 나왔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아이들의 그 천진난만한 모습 하나하나가 어려운 시절을 이겨내도록 한 삶의 에너지였다, 

그리고 또 하나, 초등학교에 들어간 아이들이 아침마다 소리 내어 읽어주던 국어책의 힘도 가난을 이겨내는 데 빼놓을 수 없는 엔진이었다. 어디 그것만인가. 꼭두새벽에 일어난 아이들이 밤새 저장해 둔 힘찬 목청을 수탉처럼 뽑아내던 그 건강한 소리는 우리 집의 하루를 여는 희망의 팡파르이기도 했다. 나는 지금도 아이들의 국어책 읽는 소리를 종종 듣는다. 비록 환청이긴 하지만 그 소리는 세월 속에서도 지워지거나 바래지지 않고 푸르게 살아 있는 것이다. 

언젠가 여럿이 모인 자리에서 듣고 싶은 소리를 다섯 개씩 적어낸 일이 있었다. 그 가운데는 농촌의 소 울음소리, 계곡물 소리, 새 울음소리, 먼 곳의 개 짖는 소리, 갈대밭의 바람소리, 두부장수의 종소리, 낙엽 밟는 소리, 밤기차 소리, 밤송이 터지는 소리, 메밀묵 장수의 외침소리, 집배원의 "편지요" 하는 소리가 나왔다. 그리고 저 아기 울음소리와 아이들의 국어책 읽는 소리도 포함돼 있었다. 우리는 이 가운데서 세월 속에서 사라지는 소리에 대한 아쉬움을 이야기했는데, 그 중 아기 울음소리에 대한 얘기가 가장 많았다. 왜 요즘엔 아기 울음소리를 통 들을 수 없느냐고. 이대로 가다가는 로봇을 자식으로 삼아야 하는 게 아니냐고.  

아, 정말이지 아기 울음소리를 듣고 싶다. 그리고 저 초등학교 아이들의 국어책 읽는 낭랑한 소리도 듣고 싶다. 이건 결코 나 혼자만 바라는 것은 아닐 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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