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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메르인의 줄긋기
김재철/칼럼니스트, 농학박사
2015-01-25 17:58:52최종 업데이트 : 2015-01-25 17:58:52 작성자 : 편집주간   김우영

장자의 제물론(齊物論)에 보면 송나라 저공의 원숭이 이야기가 나온다. 저공은 많은 원숭이에게 먹이를 대는 일이 어려워지자 먹이를 줄일 생각을 하였다. 그래서 다음과 같이 제안하였다. '앞으로 도토리를 아침에 세 개, 저녁에 네 개씩 줄 생각이다'. 그러자 모든 원숭이들이 하나같이 화를 냈다. '그러면 아침에 네 개, 저녁에 세 개씩 주마' 라고 하자 원숭이들이 기뻐했다. 조삼모사(朝三暮四). 하지만 손에 쥔 4개와 손에 쥘 4개는 분명 달라 원숭이들이 더 영악할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인류역사상 수의 역사는 오래되어 이미 기원전 3000년 이전 바빌로니아의 수메르인들은 설형문자를 이용하여 숫자를 진흙 판에 기록하였다. 처음에는 필요한 수만큼 줄을 긋는 일들이 행해졌으나 많은 숫자를 기록하기 어려워 10진법, 12진법, 50진법, 60진법들을 사용하는 기호를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아직도 남아있는 12진법, 60진법으로는 오늘날의 시간단위가 있다. 

수메르인의 줄긋기_1
수메르인의 줄긋기_1
처음 직장생활을 시작할 당시, 하루하루 일용근로자들의 출근 상황을 점검하고 이들의 임금을 1개월 단위로 그들 통장에 입금토록 하는 일을 맡았다. 일용근로자들이 하는 일이란 그리 어려운 일들이 아니라서 대체로 환갑이 넘은 노인 어른들이 많았으며 게다가 이들은 대부분 살림살이가 어려운 사람들이었다. 몸도 제대로 가누기 힘들어 보였지만 일에 대한 고집만은 대단해 젊은이 못지않은 열정을 갖고 일에 임하였다. 누구나 젊은 시절이 있었을 테니 그 분들도 마음만은 젊었음에 틀림없었다. 

이들은 건강상 이유로 가끔 결근을 하거나 오후 반나절은 일찍 퇴근하기가 일쑤였다. 그런 날은 수메르인들이 행하던 방법으로 결근의 표시로 작대기 긋기를 하였다. 하지만 오전 반나절보다 더 긴 오후 반나절이라도 가끔은 줄긋기가 마음에 내키지 않았다.  
 
그래서 살림이 어렵고 건강이 안 좋은 노인들의 어려움을 도와준다는 의미에서 나름대로 생각한 끝에 몰래 몰래 반나절은 줄긋는 일을 포기하기도 하였다. 물론 기본 업무방침에는 어긋나는 행동이지만 한줌의 임금이 더 들어온 것에 기뻐하는 소박한 그들을 생각하면 그리 어렵게 생각할 일도 아니었다. 

그날 할아버지 한 분이 찾아왔다. 웬일인가 여쭤보니 지난 달 임금 계산이 잘못됐단다. 아니 틀릴 리가 없을 텐데. 할아버지 이야기로는 반나절 결근한 것이 있었는데 반나절짜리 임금이 없어졌단다. 나는 어이가 없었다. 속으로는 '반나절은 내가 줄긋기를 안 했어요'. 그렇다고 많은 사람 앞에서 크게 말할 수도 없고, 한쪽으로 모시고 가서 오히려 반나절 임금이 더 들어갔다고 말씀드렸다. 할아버진 막무가내였다. 난 그런 것 모르니 반나절 임금을 내 놓으란다. 고집이 대단하다. 조삼모사보다 더 황당하다. 할 수 없이 반나절 임금을 다시 드렸다. 내 지갑에서. 

반나절 임금이 더 들어갑니다 라고 사전에 생색내는 것도 계면쩍고, 그렇다고 반나절 임금을 내놓으라는 호통에 같이 화를 낼 수도 없고. 할아버지에게는 수메르인의 줄긋기, 원숭이의 조삼모사는 통하지 않아 처음부터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알게끔 했어야 했던 것을. 연말정산도 이 정도는 배려했어야 그나마 모든 회원들 얼굴에 함박웃음 피었을 텐데. 지금 수메르인이 나타난다면 줄긋기로 눈속임하여 마일리지는커녕 연회비를 더 받아낸 교활한 놈이라고 호통 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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