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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이들에게도 따뜻한 설날이 됐으면
최정용/시인·언론인
2015-02-12 13:25:09최종 업데이트 : 2015-02-12 13:25:09 작성자 : 편집주간   김우영

가난한 이들에게도 따뜻한 설날이 됐으면_1
사진/하주성 시민기자

까치보다 하루 늦은 설날이 코 앞이다.
문득 옛 생각 한자락. 양력설(新正)과 음력설(舊正)에 대한 씁쓸한 추억 하나다.
1980년대 후반까지 정부가 지정한 설날은 소위 신정이라 불리던 양력설뿐이었다. 특히 공무원에게는 가혹하리만큼 양력설만 강요됐다. 혹시라도 음력설을 쇠고 나면 숟가락 놓기가 무섭게 사무실로 일터로 가야했다. 혹자에게 음력설은 고문이었겠다.

정부는 1월1일부터 사흘동안 휴무일로 정하고 양력설을 쇠게 했지만 음력설엔 하루도 못 쉬게 했다. 공무원은 물론이고 민간기업까지 그런 방침을 따르도록 했다. 몰래 지내는  사람이 생길까 겁이났을까. 음력설에는 휴가나 출장도 보내지 말라는 공문이 내려왔다. 게다가 방앗간에는 음력설 며칠 전부터 떡을 찧지 말라고 종용했으니 기가차다.  음력설을 쇠려면 관(官)의 눈치를 살펴야 했다. 요즘 세대들의 상식으로는 이해할수도 이해돼서도 안되는 시절이 있었다.

음력설과 양력설의 구분은 어디에 기인할까.
당시 정부는 음력설을 옛날에나 쇠던 설이라는 의미로 '구정(舊正)'이라고 불렀다. 그런데 이 명칭 자체가 실은 일본제국주의의 잔재였다.
대한제국은 1896년부터 양력설을 정초(正初)로 삼았다. 그러나 백성의 의지는 그렇지 않았다. 그러다보니 사회 양상이 두갈래로 나뉘게 된다. 관청과 일부 개혁(?)인사들만 자랑스레  '일본 명절'과 '서양 설'을 따랐고 백성들은 그런 그들을 비웃었다. 

이런 두가지 양상의 사회상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일본제국주의가 대한제국을 몰락시킨 후  강압적으로 양력설만 쇠도록 밀어붙였다는 점이다. 일제는 음력설을 쇠는 조선인들을 불령선인(不逞鮮人)으로 몰았고 갖은 압박을 가했다.
예를들면 이랬다.
설을 앞두고 고등계형사들이 방앗간에 가서 영업을 하는지 감시했으며 설빔을 입고 나온 조선 사람들을 향해서는 옷에 먹물을 뿌렸다. 민심은 흉흉해졌으며 조선인들은 양력설을 '왜놈 명절'이라고 여기며 경멸했다. 나아가 설을 지키는 것을 '민족정신을 지키고 일제의 식민지배에 항거하는 것'으로 여겼다.
'일본인들은 음력설을 못 쇠게 하려고 설날에 부역을 시키고 푸줏간과 방앗간을 강제 휴업시키곤 했다.'

'당시 일본인 몰래 음력설을 쇠는 건 민족정신을 잃지 않겠다는 기개의 표시였다'는 기록이 이를 증명한다.
해방이 되면 우리 명절인 설을 반드시 되찾겠다, 는 의지를 다지고 또 다졌다. 그러나 그런 다짐은 해방이후 물거품이 된다. 자유당 정부가 1949년 신정을 유일한 설이자 휴무일로 지정해버린 것이다.
게다가 1962년 국가재건최고회의는 기존의 단기연호를 서력(西曆)으로 바꿨다. 그러자 양력 1월1일이 새해의 첫날로 당연히 굳어졌고 음력설은 뒷방 늙은이 신세가 되고 만다. 

그러나 이런 현상은 공식적(?)으로만 그랬다. 국민들은 정부조치와 다르게 강요된 양력설보다 음력설을 진짜 명절로 보냈다. 농어촌은 거의 100% 도시는 70%이상이 마음속의 명절, 음력설을 쇴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런 민심이 반영된 때문일까.
1963년 최고회의는 구정을 '농어민의 날' 국경일로 지정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발표한다. 양력설은 살리고 음력설 하루를 쉬게 하겠다는 꼼수였지만 결국 '음력설을 공휴일로 하는 건 시대에 맞지 않고 여러 가지 낭비가 뒤따른다'는 이유를 들어 백지화했다. 이후 음력설은 일본의 메이지 유신에 착안해 한국의 유신을 이끈 박정희 전 대통령의 경제제일주의에 밀려 공식적 명절이 되지 못하는 비운을 맞게 됐다.

그러나 국민 절대다수가 원하는 명절인 음력설을 방치할 수 없었을터. 1985년 정부는 음력설에 하루를 쉬게하는 은혜(?)을 베풀며 '민속의 날'로 제정하게 된다. 이어 1989년 '구정'으로 천대받던 음력설은 마침내 '설날'이라는 자신의 이름을 되찾게 된다.
일제이후 1백년 만이다. 일제에 이은 정부의 끊임없는 멸시와 규제도 백성들의 마음 속에 자리잡은 민족의 명절을 말살하지 못한다는 교훈과 함께.

설날을 연휴로만 인식하고 놀기에 급급한 젊은 세대들이 이런 사연을 알았으면 하는 바람이 드는 것은 내가 이미 구세대에 진입했기 때문일까. 아닐 것이다. 뿌리없는 가지가 어디 있겠는가. 바람찬 날에 가난한 이들에게도 따뜻한 설날이 됐으며 하는 간절함을 더한다.
까치의 설날도 함께 축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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