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 화성은 버드나무의 도시
최형국/역사학 박사, 수원시립공연단 무예24기 상임연출
2015-10-19 09:36:11최종 업데이트 : 2015-10-19 09:36:11 작성자 : 편집주간 김우영
|
오늘날 수원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화성(華城)의 존재이유로 인해 국내외적많은 관광객들이 다녀가는 명소가 되었다. 그 신도시 화성(華城)에 가장 어울리는 나무가 있었으니, 다름 아닌 버드나무였다. 정조가 남긴 이야기를 잘 모아 놓은『일성록』을 보면, 능행차를 해서 수원에 도착한 정조는 현륭원에 나아가 직접 제사지낸 다음에 화성 성곽의 기초공사가 진행 중인 북쪽 부근을 직접 거닐면서 채제공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화성성역의궤'에 실린 방화수류정(동북각루)의 모습. 방화수류정(訪花隨柳亭)은 수원 화성 동북각루의 별칭이기도 하다. 중국 송나라의 시인인 정명도(程明道)의 시 중 '운담풍경근오천(雲淡風輕近午天), 방화수류과전천(訪花隨柳過前川)'에서 따왔다고 한다. '꽃을 찾고 버드나무를 따라 노닌다'라는 글귀처럼 버드나무가 아름다운 곳이다. 그 이유는 첫째, 버드나무가 습기에 강한 나무였기 때문이다. 해마다 수원천은 홍수때 범람을 해서 주변의 제방들이 쉽게 무너져 내렸다. 그래서 제방을 보호하기 위해서 버드나무를 집중적으로 심어 하천의 유실을 막아냈다. 특히 버드나무는 줄기만을 잘라 물에 던져 놓아도 뿌리가 생성될 정도로 엄청나게 생명력이 강해 새로 건설한 화성의 이곳저곳의 땅을 단단하게 고정시킬 수 있었다. 두 번째 이유는 관방 즉 군사상의 목적이었다. 버드나무는 빠른 생장활동으로 인하여 줄기가 길게 뻗는 것이 특징이었다. 이런 특징을 활용하여 숲을 만들 경우 청나라의 기병을 쉽게 방어할 수 있었기에 버드나무 군락을 핵심 방어진지 주변에 심는 것을 장려하였다. 대표적으로 숙종대 훈련대장을 비롯하여 핵심 군영의 대장직을 맡았던 유혁연(柳赫然)의 경우는 평안도의 핵심 방어진지에 쉽게 잘 자라는 버드나무와 느릎나무 등을 섞어서 숲을 이루는 것을 국방의 비책으로 건의하기까지 하였다. 세 번째 이유는 관광의 목적이었다. 정조대부터 수원팔경의 하나로 알려진 '남제장류(南提長柳)'의 핵심은 버드나무였다. 화성의 북쪽 수문인 화홍문에서 화산릉 앞까지 이르는 수원천의 긴 제방인 남제(南提) 양편에 늘어서 있는 휘늘어진 수양버들이 그림과 같은 장면이라고 붙여진 이름이었다. 또한 방화수류정 아래 용연 주변의 버드나무는 지금도 화성관광의 명품으로 불릴 정도로 아름다운 곳이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 이유는 의료 목적의 활용이 가능했기 때문이었다. 한방에서도 버드나무의 각 부분은 유화(柳花), 유서(柳絮), 유지(柳枝), 유엽(柳葉)이라고 부르며 진통 및 해열에 처방된다. 이렇게 버드나무는 단순한 경관상의 아름다움 뿐만 아니라 관방의 이로움과 농업에도 도움을 줄 수 있는 실용적인 나무였기에 정조가 새롭게 구상한 신도시이자 핵심방어시설인 화성과 가장 궁합이 잘 맞는 나무였던 것이다. 이렇게 수원에 버드나무가 많이 심어지자, 수원지역에서 활동하던 상인들의 이름을 '유상(柳商)'이라고 부르기까지 하였다. 현재 방화수류정 바깥의 용연을 제외하고는 남지(南池)나 북지, 동지 등 화성의 여러 연못들은 아직도 복원하지 못하고 있다. 수원 화성이 원형의 '유천성'이 되려면 그 연못들을 하루빨리 복원하고 그곳에 버드나무를 가득심어 정조의 실용정신을 나무를 통해서도 찾아야만 할 것이다. 연관 뉴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