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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인도 비를 맞게 하지 말라
최형국/역사학 박사, 무예24기연구소장
2013-06-29 14:26:15최종 업데이트 : 2013-06-29 14:26:15 작성자 : 편집주간   김우영

가뭄 장마다. 연일 하염없이 내리는 빗방울 사이로 온 세상이 눅눅해졌던 예년과 다르게 한번 왔다하면 뿌리가 뽑힐 정도로 쏟아 부었다가 맑은 날이 계속되는 요상한 날씨가 계속되고 있다. 

옛 어른들이 '삼년 가뭄에는 살아도 석 달 장마에는 못 산다'고 했듯이, 장마가 만들어 낸 습기는 우리들의 삶을 아주 피곤하게 한다. 엊그제 만들어 놓은 반찬에는 곰팡이가 피고, 눅눅해진 구두를 신으면 어김없이 물집이 잡히곤 한다. 거기에 자동차 에어컨 필터에서 풍겨 나오는 쾌쾌한 냄새까지 더해지면 불쾌지수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올라간다.

이런 날에는 습기가 많아 야외에서 운동을 해도 쉽게 지친다. 거기에 내려쬐는 햇살이 더해지면 정말 찜통 속이 따로 없을 지경에 이르기도 한다. 
화성행궁 앞에서 매일 정조시대의 무예를 연마하고 있는 무예24기 시범단원들도 혀를 반쯤 빼놓고 연신 손부채를 펄럭이니 무사들에게도 요즘 날씨는 이기기 힘든 난공불락의 요새인가 보다. 

다행히 얼마 전 혹서기 문제로 갑옷을 탈의하고 시원한 소재로 만든 철릭(帖裏-조선시대 무관의 시위복)을 입고 시범공연을 진행하니 그나마 조금은 위안이 된다.

정조시대로 잠깐 돌아가 장마와 관련된 이야기를 찾아보니, 역시 성군의 면모를 확인할 수 있는 자료들이 가득하다. 그 중 죄인들과 관련한 이야기가 있으니, 한 가지를 풀어 보려한다. 
죄인(罪人), 말 그대로 죄를 지어 죗값을 받기 위해 잡혀 온 사람들이다. 수많은 사연, 사고 끝에 죄인이 되어 굴비 역듯이 오랏줄에 묶여 줄줄이 끌려 다녔던 그들도 엄연히 조선의 백성들이었으며, 정조임금님의 백성들이었다.

특히 친국(親鞫) 즉, 국왕의 친림 하에 특별히 궁성의 호위 절차를 밟고 왕족이나 고위 관원의 중대한 반역 사건을 궁궐내의 특정 장소에서 심문할 때는 주로 넓은 마당이 있는 곳이 활용되었다. 정조시대에도 역모관련 사건이 많았는데, 정조임금님은 주로 궁궐 방위의 핵심 군영인 금위영 마당에서 친국을 진행하였다. 
그런데 역모사건이라는 것이 어디 날씨를 봐가며 들통이 났겠는가. 장마기간에 역모사건이 발생하면 하염없이 내리는 비속에 죄인을 형틀에 묶어 앉혀놓고 심문을 진행할 수밖에 없었다.

 

죄인도 비를 맞게 하지 말라_1
장맛비가 내리는 화령전의 운한각 : 정조임금님의 어진을 모셔 놓은 화령전에도 장맛비가 하염없이 내린다. 고운 단청하나 없지만 수수한 나무빛깔 그대로 정조임금님을 지키고 있다

그런데 정조임금님은 일반 죄인은 물론이고, 자신을 정면으로 거부했던 역모에 관련된 죄인들조차도 비를 맞게 하지 않게 하라는 엄명을 내렸다. 그래서 죄인이 앉아 있는 형틀 위로 풀로 만든 임시 움막인 초둔(草芚)을 세워 그들을 보호하려 했다. 
그리고 그 이유에 대해서 편안히 마음을 가라앉히고 본인의 죄를 말하고 실정을 다 털어 놓을 수 있도록 하여 조정(국가)에서 각박하고 거친 정사를 숭상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 줘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또한 '그것이 진정 백성을 살리는 길'이라는 의미심장한 말도 함께 전하였다.

 바로 그런 백성을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이 법치를 세우는 근본이 되어야 한 것을 역모를 모의한 죄인들에게도 똑같이 적용했던 것이다. 
비록 중죄인이라 할지라도, 거친 비와 내리쬐는 햇볕을 막아 최소한의 사람됨을 지켜주려 했던 국왕이 바로 정조임금님이었다. 현재의 사법기관에서도 귀담아 들어도 될 좋은 내용이다. 제 아무리 법치국가라 하지만, 사람이 먼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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