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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과 성찰-주단잡설(酒檀雜說)
최정용/시인·한국지역언론인클럽(KLJC) 사무총장
2014-08-11 13:43:25최종 업데이트 : 2014-08-11 13:43:25 작성자 : 편집주간   김우영

얼마 전 경기·인천지역 전·현직 지역 신문기자들이 만났다. 몇몇 중견 언론인들의 갑작스런 '도미노 사표' 때문에 마련된 소위 '번개'였다. 그런데 의외였다. 침체되거나 우울한 분위기일 것이라는 예상은 단박에 깨졌다. 늦지 않은 오후 어느 날, 그들은 만나면서 화기애애했고 대화는 유쾌했다.

자연스레 이야기는 그들이 속해있거나 있었던 회사 이야기에서 시작해 지역 언론의 현실과 소위(?) 지역 언론인들의 자질문제로 이어졌다. 그들이 진단한 지역 언론의 현실은 심각했다. 그러나 모두 공감하고 있는 내용인 듯 경쾌하게 진행됐다. 

기억의 힘을 빌리면 이렇다.
 50% 전후의 지분으로 언론사를 장악하고 있는 사람들의 언론관 부재. 그에 따른 언론정신의 부재(不在)가 고스란히 드러나는 지면(紙面). 이로 인해 빚어지는 '기사보다 광고(업무) 우대 정신'로의 무게 중심 이동. 취재 및 기사작성보다 업무능력으로 기자를 평가하는 인사구조 팽배. 열악한 근무조건 및 급여수준. 그마저 장단기 미지급으로 인한 생활 곤란과 파생되는 악행의 악순환 등이다.    

그 밖에 많은 이야기가 오갔고 지역 언론 대표를 맡고 있는 선배의 대안 언론에 대한 선언적 발언이 화제였다. 오래전부터 해 온 고민인 듯 그는 확신에 차 있었다. 대안은 인터넷이고 그 가운데 방송이 있었다.
그는 "종이 언론(신문) 시대는 이미 종말을 맞았다. 그러나 현재 그 명맥이 유지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종사자나 독자들의 오래된 관성이 (이미 죽은 신문을) 간신히 수혈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확언했다.
이어 "구조적으로도 그렇다. 수익구조 창출방법이라는 것이 지면이나 기사 광고 또는 행사에서 충당하는 정도다. 이는 세상은 디지털로 변했는데 신문은 여전히 아날로그 수준에 머물고 있다는 것의 방증이다. 게다가 광고수주 방법도 비정상적이라는 것은 머리가 있는 현장 기자라면 누구나 동의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와함께 현재 대한민국 언론의 대세로 알려져 있는 공중파 방송도 이로 부터 크게 자유로울 수는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 선배의 발언의 행간(行間)을 다소 거칠게 풀면,
이제 언론은 독자들에게 감동을 주고 세상을 함께 만들어 간다는 공감을 형성해 대안을 제시해야 하는데, 대부분의 언론이 보이는 행태는 그렇지 못하다. 특히 회사의 수입을 관공서나 출입처가 주는 광고비 등에 의존하면서도 미안하거나 감사해하는 한 마음은 찾아볼 수도 없고 '왜 안주느냐'는 식의 땡깡(?)이나 어깃장만 부리고 있다. 중요한 것은 이 돈이 세금에서 나온다는데 있다. 이래서 지역 언론이 어떻게 사회발전에 기여한다고 말할 수 있는가. 걸림돌이나 안되면 다행이다, 뭐 이 정도 되겠다.

진단에 이어 전망이 이어졌다. 앞으로 언론은 그 중심에 '인터넷 방송'이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 이유로 인터넷 방송은 기존의 종이 권력과 달리 사람들에게 위안을 주는 콘텐츠를 담아낼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기존의 언론처럼 누군가를 폄훼해서 존재감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더불어 함께하는 세상에 대한 긍정의 힘을 확산시킬 수 있는 대안 언론이라고 거품을 물었다.

듣는 내내 '공감 반 의문 반'이었다. 서서히 공감이 의문보다 영역을 확장되려는 순간, 구체적인 논의는 시간을 갖고 천천히, 그리고 깊게 하자는 그의 제안과 함께 난상에서 이뤄진 1차 발제는 끝났다. 그의 신념에 아무도 토를 달지 못했고 그저 고개를 끄덕거리는 것으로 공감을 표시했다.

대화는 술자리로 이어졌다. 이어진 자리의 화제는 뜬금없이 죽음이었다. 방금 전까지 대안언론의 중요성을 강조하던 그가 갑자기 주단법석(酒壇法席)에서 죽음을 주제로 이야기를 이끌었다. 그는 죽음이 두렵지 않다고 했다. 이미 임사체험(臨死體驗)을 했고 그것을 통해 삶은 계속 이어진다는 확신을 갖고 있다고 힘줘 말했다. 그래서 현실에서 오래 사는 문제는 중요하지 않고 연연해 하지도 않는다고. 또 늙은 가죽에 얽매어 사느니 차라리 새 가죽을 쓰고 세상으로 다시오는 길을 택하겠다고 했다. 경험적 윤회(輪廻)에 대한 확신이겠다.

생(生)과 사(死)를 동시다발로 들었으니 당연히 혼돈이었다. 그러나 두 이야기가 맥을 같이 한다는 것을 알기까지 그리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죽음을 정확히 알아야 삶을 제대로 살 수 있다고 7~8세기 티베트 승려 파드마 삼바바가 설(說)했듯, 현재 한국 언론의 과오를 정확히 진단해야 대안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는 것에서 존재이유를 찾으려 한다면 퇴보의 길을 걷는 것은 자명하다. 이웃들의 다양한 이야기를 담아 세상을 위한 긍정적인 에너지로 사용할 수 그릇이 되는 언론 하나 꿈꾼다. '작금의 언론이 태(胎)를 벗지 않으면 존재하지 않는 것만 못하다. 스스로 공생의 방향으로 변하지 않으면 그 자체가 독(毒)이다.' 

그 날 얻은 법어다, 적어도 내게는. 비록 현재의 언론을 진흙탕이라고 직접 말하지는 않았지만 그의 입에서 수천수만의 연꽃이 피어났다. 주단(酒壇)의 힘이리라.

 

사색과 성찰-주단잡설(酒檀雜說)_1
사진/이용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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