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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모든 존재의 아픔, 측은지심 가져야
김재철/칼럼니스트,농학박사
2014-01-06 15:18:25최종 업데이트 : 2014-01-06 15:18:25 작성자 : 편집주간   김우영

버스 창밖을 내다보면 길가 식당을 포함한 매장들의 간판 내용이 조금씩 바뀐 것이 눈에 띈다. 무한리필, 1+1, 첫 손님 무료 등 문구 내용으로 보아 요즈음 경기가 말이 아닌가 보다. 하기야 '동태탕' 뿐 아니라 북적대던 식당들의 주차장도 한산하다. 내가 발안에서 출발하여 오목천동 오현초등학교에서 버스 갈아타고 탑동 자혜학교 앞에서 내리는 일과로 출퇴근하면서 보아온 현상이다.  

탑동 널따란 밭에 심겨진 옥수수, 콩 등이 울창하다. 지난 여름철 이곳에는 고라니를 비롯한 너구리, 길 개·고양이 등이 활개치고 다녔다. 시내에서 이런 야생동물 보는 것이 신기할 뿐이다. 하지만 겨울철 허허벌판에서는 이들이 보이지 않는다. 울타리 넘어 옛 서울농대 숲속으로 갔을 것 같다. 

사무실 건물 벽에 붙은 말벌 집을 떼어내느라 일하는 분들이 난리다. 모기약을 뿌리고 장대로 후려치고. 말벌들은 날아갔다. 모처럼 장만한 말벌들의 무허가 보금자리이었지만 추운 겨울철, 어디서 노숙할까? 

퇴근길, 길 고양이 한 마리가 도로 옆 배수로 풀숲에 죽어 누워있다. 무심코 지나갔으나 다음 날 출근길에 길가 낙엽을 긁어모아 덮어준다. 주위에 물어보니 지나가던 차량에 부딪쳤다고 한다. 

가끔 자혜학교 학생들을 만난다. 오현초등학교에서 통학하는 여자애. 자혜학교에서 내리면서 '고맙습니다', 오현초등학교에서 내리면서도 '고맙습니다' 라고 인사한다. 그러나 버스기사가 대답하는 것을 한 번도 듣지 못했다. 항상 아버지와 함께 오는 남자애도 있다. 버스 탈 때마다 아버지는 '이따가 꼭 전화해라'. '응'. 그런데 남자애는 자혜학교에서 내릴 기색이 아니다. '너 여기에서 안 내려?' '아니에요'. 괜히 지레 짐작하고.  

자기만의 세계에 빠진 남자애. 정류소 주위를 돌면서 태권브이인지 손을 흔들며 실감나게 연기한다. '너 어디서 내리니?'. '왕림리'. 버스에 타서도 중얼거린다. 버스기사가 소리친다. '조용히 해'. 고색에서 버스 통학하는 여자애. 우연히 어머니와 함께 걸어서 오는 모습이 보여 '오늘은 걸어서 오네' 하니 어머니는 애써 외면한다. 왜 그럴까? 

세상 모든 존재의 아픔, 측은지심 가져야 _1
자혜학교

자혜학교 정문은 버스정류소에서 오십 미터는 걸어가야 한다. 그런데 오늘따라 버스는 정확히 자혜학교 정문 앞에 선다. 기사는 내가 지혜학교와 어떤 연관이 있는 것으로 이해한 것이다. 눈에 보이는 내 모습이 어때서일까?

몸살기운에 일찍 퇴근해 보니 아내는 보이지 않는다. 인근 병원에 들러 주사 맞고 약 타와 집에 오니 밖에서 돌아온 아내가 '왜 일찍 왔어? 전화도 안하고'. '.....'. '아파서'. 부부는 일심동체인데 오늘따라 텔레파시가 통하지 않는다. 

버스 퇴근길. 횡단보도가 아닌 곳에서 멀리 할아버지가 길을 건너가고 있다. 그런데 걸음이 늦어 버스가 가까이 가도록 건너가지 못한다. 게다가 끌고 가던 끌개가 쓰러졌다. 종이 박스가 길에 널린다. 폐지 수집하는 할아버지다. 

'잔액이 부족합니다' 하굣길 교통카드를 확인한 여학생은 할 수 없이 버스에서 내린다. 기사는 버스를 천천히 몰며 걸어가는 여학생을 흘깃 보면서 살짝 살짝 클랙슨을 누른다. 몇 번 반복한 후에야 여학생이 버스를 쳐다본다. 기사는 앞문을 열고 '빨리 버스 타, 혼자 집까지 걸어가려고 해?'

지난 몇 개월 동안 출퇴근길에 겪은 일들이다. 맹자의 측은지심(惻隱之心)은 세상 모든 존재의 아픔을 함께 느끼고 타인에의 관심과 사랑을 통해 나의 존재가 확대되는 것이라 한다. 측은지심은 왕도(王道)정치, 곧 인정(仁政)에 연결된다. 
이와 대비, 패도(覇道)정치가 있다. '힘의 정치는 단시일 내에 민중을 진압할 수는 있겠지만, 결과적으로 저항과 반발을 초래하여 체제를 붕괴시키는 원인이 될 수도 있다'. 측은지심은 자신의 욕망을 추구하기에 바쁜 사람에게서는 발견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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