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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용/한국지역언론인클럽 사무총장
2014-05-12 19:14:52최종 업데이트 : 2014-05-12 19:14:52 작성자 : 편집주간   김우영

90년대 초. 학부시절 시대정신에 충실하느라 등한시했던 학업에 대한 열정을 풀기 위해 대학원에 다닐 때의 기억이다.
어느 날 서점에서 무심히 뽑아든 한 권의 시집을 펼친 순간, 늪으로의 긴 여행은 시작됐다. 기형도 유고시집, '입 속의 검은 잎(문학과지성사 刊/1991년 2월 1일).' 그 날 무심한 하늘은 잿빛이었고 술은 가슴 속에서 일찌감치 농익었다. '1960년 生, 1989년 卒'이라는 생몰연대는 이미 나를 압도하고도 남았다. 죽기 가장 좋은 나이가 서른이라고 생각했던 시절이었으니, 그보다 한 해 먼저 저문 시인이 주는 강렬함이야 말해 무엇 하랴. 

해설은 또 어떤가. 당대 최고의 문학평론가 김현은 첫 문장에서 이렇게 애도한다.
'어느 날 저녁, 지친 눈으로 들여다본 석간신문의 한 귀퉁이에서, 거짓말처럼, 아니 환각처럼 읽은 짧은 기사는 '제망매가'의 슬픈 어조와는 다른 냉랭한 어조로, 한 시인의 죽음을 알게 해 주었다. 이럴 수가 있나, 아니, 이건 거짓이거나 환각이라는 게 내 첫 반응이었다….' 
공교롭게도 해설 말미(末尾)에 '나는 누가 기형도를 따라 다시 그 길을 갈까봐 겁난다. 그 길은 너무 괴로운 길이다'라고 고백했던 김현 선생이 시집 출간 전인 1990년 6월 27일 시인을 따라 '거짓말처럼, 아니 환각처럼' 불귀의 객(不歸之客)이 됐으니 '유고시집 속의 유고해설'이 됐다.

그날 이후 '기형도'의 시들은 오래도록 내 안에 또아리를 틀고 앉아 심장을 놓아주지 않았다. 시의 각 구절들은 분초(分秒)를 다퉈 모공(毛孔)을 타고 올라왔고 눈길 가는 곳 어디에도 기형도의 시가 아닌 것이 없었다. 돌이켜보면, 무게는 달랐지만 혼자 보냈던 시간이 주는 동질감도 있었겠다. 이런 시다.

'…/안 오시네, 해는 시든 지 오래/나는 찬밥처럼 방에 담겨/아무리 천천히 숙제를 해도/엄마 안 오시네, 배추잎 같은 발소리 타박타박/안 들리네, 어둡고 무서워/금간 창틈으로 고요히 빗소리/빈방에 혼자 엎드려 훌쩍거리던//아주 먼 옛날/지금도 내 눈시울을 뜨겁게 하는/그 시절, 내 유년의 윗목/…'('엄마 걱정')

또 있다. 아직 내 마음의 단전(丹田) 어디쯤 '미완(未完)의 화두(話頭)'로 남아있는 죽음과의 만남이다. 강원도 춘천의 어느 성직자는 '죽음이 영원히 피할 수 있는 품목이라면 모르지만 그렇지 않다면 2~3년 더 연장해 달라고 현대 의학이나 신에게 매달리며 영혼을 추하게 만들지 말고 담대하게 받아들이라'고 했지만 그게 어디 쉬운가. 
이성으로야 가능하겠지만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보통 내공으로는 힘들 터. 나 역시 그땐 그랬다. 그의 시에는 죽음에 대한 흔적이, 흡사 대면한 듯한 증언으로 곳곳에서 묻어났고 그 흔적들은 기형도라는 늪에서 벗어나려는 내 가냘픈 몸짓을 어김없이 끌어 내렸다.

'…/나를 한번이라도 본 사람은 모두/나를 떠나갔다, 나의 영혼은/검은 페이지가 대부분이다, 그러니 누가 나를/펼쳐볼 것인가,…('오래된 서적' 중에서)'라거나 '…/잘 있거라, 짧았던 밤들아/창밖을 떠돌던 겨울 안개들아/아무것도 모르던 촛불들아, 잘 있거라/공포를 기다리던 흰 종이들아/망설임을 대신하던 눈물들아/잘 있거라,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열망들아/…('빈집' 중에서) 등이 그들이다. 

이후 '기형도 늪으로의 여행'은 계속됐다. 산문집 '짧은 여행의 기록'에서 10주기를 맞아 출간된 '전집'까지, 성석제와 이영준, 원재길, 조병준, 박해현까지.

각설하고.
푸르른 오월 하늘 아래 어두운 사무실에 앉아 구시렁거리는 까닭은 차마 팽목항에 눈을 맞추지 못하는 비겁함 때문이다. 수많은 꽃들이 봉오리조차 피우지 못하고 지르는 비명을 들어줄 용기가 없는 까닭이다. 끓어오르는 분노를 구체화할 능력이 모자란 탓이다. 

늪_1
사진/이용창

'수장(水葬)된 것은 세월호가 아니라 대한민국'이라 불리는 이 암담한 시대를 어떻게 건널까. 야만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많은 사람들과 이를 비아냥거리는 몇몇의 조소(嘲笑)가 뒤섞인 '야만보다 더 야만적'인 우리네 자화상을 보면서 젊은 시절 오래도록 혼자 건넜던 그 늪이 떠올랐다. 나도 건넜듯 우리는 건널 것이다.

기형도의 죽음에 대한 김훈의 조사(弔詞)에 묻어가며 비겁한 슬픔을 대신한다.
'가거라. 그리고 다시는 생사(生死)를 거듭하지 말아라. 인간으로도 축생으로도 다시는 삶을 받지 말아라. 썩어서 공(空)이 되거라. 네가 간 그곳은 어떠냐…누런 해가 돋고 흰 달이 뜨더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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