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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너무 꾸미려고 하는 것 아닌가
윤수천/동화작가
2014-11-09 10:57:49최종 업데이트 : 2014-11-09 10:57:49 작성자 : 편집주간   김우영

내가 가르치는 글쓰기반에 N라는 할머니 수강생이 있다. 입만 열었다 하면 가방 끈이 짧아서 글이 시원치 않으니 잘 봐 달라고 애교(?)를 떠는 분이다. 그녀의 말마따나 그가 발표하는 글은 꾸밈이라곤 눈 씻고 봐도 찾아 볼 수 없는, 나오는 대로 적은 글이 대부분이다.

예를 들자면 이런 투의 시(詩)다. 
'나는 우리 남편 건강 때문에/먼 산은 못 가고 가까운/팔달산으로 자주 운동을 간다/맑은 공기 마시면서 걷는다/낙엽들이 쌓여 있다/나는 나이도 잊은 채/어린 동심으로 내려간다/은행잎도 주워 머리에 꽂고/단풍잎도 머리에 꽂고/낙엽들을 밟으며 걸어간다/바스락 바스락 바스락/소리를 낸다/너희들 아프지 내가 밟아서/미안하다'-'산책길'

 

우린 너무 꾸미려고 하는 것 아닌가_1
팔달산의 가을/사진 이용창

그런데 나는 그녀의 치장하지 않은 이런 글이 오히려 마음에 든다. 게다가 맞춤법이며 띄어쓰기조차 제대로 안 된 그녀의 글에서 왠지 진실함을 발견한다. 그래서 부끄러워하는 그녀에게, 그리고 다른 수강생들에게도 이렇게 이른다. 
"정직하게 쓴 글보다 더 잘 쓴 글은 없다. 맞춤법이나 띄어쓰기 좀 안 되면 어떠냐. 그런 것은 편집자들이 다 알아서 잡아준다. 그러니 여러분은 그냥 써라."

나는 글과 요리는 같은 공통점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요리를 잘 하는 사람은 되도록 양념을 적게 쓴다는 것을 안 뒤부터다. 양념을 적게 써야만 재료의 본래 맛을 제대로 낼 수가 있다고 한다. 곧 소박함을 추구하는 요리법이다. 절간의 음식이 담백한 것은 이 요리법을 구사하기 때문으로 안다. 이에 반해 시중의 음식은 대개 맵고 짜고 달다. 그래야만 손님들의 구미에 맞는단다. 

글도 음식과 다를 바가 없다. 느낀 그대로를 적으면 좋은 글인데 자꾸 꾸미려고 든다. 그러다 보니 본래의 맛이 없어진다. 아니 맛뿐이 아니라 무엇을 썼는지 주제까지 흐려 놓는다. 소위 유식해 보이려는 글일수록 이런 류의 글이 많다.  시란 것도 그렇다. 왜 그리 비틀고 쥐어짜고 그것도 모자라서 고무줄 늘리듯 해야 하는가. 꼭 그래야만 좋은 시로 착각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법정 스님의 글은 누구나 이해하기 쉽다. 그러나 담고 있는 뜻은 깊고도 그윽하다. 이해인의 시는 초등학생이 읽어도 좋을 만큼 쉬운 언어로 세상을 노래한다. 그러나 읽을수록 그 맛이 우러난다. 천상병의 시는 더더욱 쉽고 간결하다. 어떤 것은 한글을 갓 깨우친 아이가 쓴 것 같다. 그러나 우리는 그 시를 읽고 오히려 마음이 즐거워진다. 

글만 그런 건 아니다. 우리는 모든 것을 꾸미는 데 너무 많은 노력을 기울이는 것 같다. 얼굴만 해도 그렇다. 하루가 멀다 하고 늘어나는 도심 속의 성형외과가 이를 증명해 준다. 요즘엔 남성들까지도 이 얼굴 성형에 가세를 했다니 세상 참 요지경 속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내 첫 동화책 제목이 '예뻐지는 병원'이었다. 예뻐지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너도나도 얼굴을 고치다 보니 거리에는 똑같은 얼굴을 가진 사람들로 넘쳐나고, 급기야는 누가 진짜인지 모르는 소동이 빚어진다는 내용의 동화다. 이를 보다 못한 병원 원장은 양심의 가책을 느낀 나머지 결국 자신의 얼굴을 아무도 알아 볼 수 없도록 수술하고 만다. 이 동화를 쓴 때가 근 40년 전이었는데, 오늘의 현실을 보면 내게도 선견지명이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꾸미려고 하는 것이 어디 얼굴뿐인가. 아니다! 우리의 삶 어느 것 하나 꾸미지 않은 게 없다. 도시도 그렇고, 집도 그렇고, 가구며 생활도구 하나하나가 다 이에 해당한다. 아니 어쩌면 우리 자신도 너무 꾸민 나머지 '헛것'이 아닌가 여겨질 때가 있어서 혼자 웃곤 한다. 

 '......내가 나무이고/내가 꽃이고/내가 향기인데/끝내 나는 내가 누군지 모르고/헛것을 따라다니다/그만 헛것이 되어 떠돌아다닌다//나 없는 내가 되어 떠돌아다닌다.' 
김형영 시인의 '헛것을 따라다니다'란 시의 끝부분이다. 꼭 요즘의 우리들을 꼬집는 것 같다. 
그래, 되도록이면 꾸미려고 하지 말자. 시도 그렇고, 음식도 그렇고, 집도 그렇고, 얼굴도 그렇다. 그냥 생긴 대로 살자. 신이 준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다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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