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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있어 시대정신을 묻는다면
최정용/.시인·한국지역언론인클럽(KLJC) 사무총장
2014-09-07 09:28:30최종 업데이트 : 2014-09-07 09:28:30 작성자 : 편집주간   김우영

아무래도 안되겠다. 정경부인의 관상을 가졌다는 평가를 받는 아내가 울며 전화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이건 해도 너무한다는 생각때문이다. 지난해 6월 광주시 퇴촌을 떠나 수원시 영통구 광교 이주민 택지지구로 이사한 후 마음의 상처가 너무 크다. '사람이 반가운 휴먼시티, 수원'에 살게 됐다는 자부심도 이제는 너덜너덜해졌다. 

처음에는 택지라는 속성상 아파트 단지 입주와 달리 땅주인의 사정대로 공사가 진행되니까 그러려니 했다. 서로 살아야하니까. 그런데 공사장 인부들의 횡포가 도를 넘었다는 생각을 지울수 없다. 전화를 통해 전해온 아내의 떨린 음성은 아직 내 심장을 울먹이게 하고 있다.

잠깐 자리를 비우면 무질서한 자세로 주차장을 장악하고 있는 공사장 인부들의 차들과 차를 빼달라는 전화를 받지 않는 것은 예사고, "나 차 안 뺄테니까 알아서 해라"는 막말은 물론 위압감을 조성하는 모양새까지. 한두번이 아니란다. "미안하다"라는 말은 고사하고 '너희들이 살면 살았지 공사 때문에 주차한 우리들에게 뭐라고 하는 거야'라는 식이었단다.
이 말을 마지막으로 아내는 전화를 끊었다. "도대체 구청에서는 이런 현실을 알고나 있는지 모르겠어요." 나도 궁금했다, 알기나 할까? 그래서 문득 생각나는 한가지.

새벽부터 시작되는 공사장 소음으로 인해 지난 여름 창문조차 열지 못하고 살았던 주민들의 고충에 대해 답답한 마음에 SNS를 통해 알린 적이 있었다. 답답함의 극치에서 올린 글이니 약간의 비아냥도 있었다. 이해를 전제로 글을 옮기면 이렇다. 아, 참고로 상식선에서 살고 싶은 사람이다. 감안하고 읽으셨으면, 하는 기우(杞憂)도 함께 전한다. 글은 이랬다. 

'수원시 영통구청장님! 광교 이주자 단지에 사는 사람입니다. 이곳은 지난 봄부터 공사가 한창입니다. 얼마나 부지런한지 새벽 6시부터 철근 등을 집어 던지는 소리에 단 하루도 편히 잠을 잔적이 없습니다. 그래도 같은 주민으로 살 사람들이 하는 일이니까 참았습니다. 물론 공사로 인한 양해의 말이나 미안하다는 말 따위는 한마디도 없었습니다. 

해체 공사를 하면서 가림 막조차 하지 않았지요. 심지어 오늘(일요일) 새벽, 돌을 내리는 지게차 사장님께서는 "일요일에는 잠 좀 자자"는 말에 "불러서 일하는데 왜 뭐라 그러느냐. 잘못한 것 없으니 경찰을 부르던지 맘대로 해라"는 등 공권력을 업신여기는 말까지 해가며 당당하게(?) 일을 하시더군요. 저를 포함한 주민들은 노이로제 수준입니다.(중략)얼마 전에는 기중기에서 판넬과 지지대 등이 떨어져, 아찔했습니다. 다행이겠지요. 지나가는 사람이 없었으니 말입니다. 

영통구청장님! 감사합니다. 안전 불감증이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제 옆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을 피부로 느끼게 해주셔서요. 아, 또 있군요. 오늘 아침, 젊은 돌사장님은 "구청에 민원을 넣던지 마음대로 하라"시더군요.

공사 책임자라는 분은 "통행에 불편을 준적도 없는데 지역 주민들에게 왜 미안해야 하느냐"며 당당하게 말하셔서 주눅이 들었습니다. 힘없는 구민은 어디에 하소연해야 하나, 우울한 일요일입니다.
 공무에 바쁘신 공무원분들께 폐가 될까봐 그동안 한 말씀도 못 드리고 쥐죽은 듯 살았는데 오늘 처음 고민하고 있습니다. 내일 찾아뵐지 말지를…. 영통구청장님. 편안한 휴일되세요.'

그후로 마음을 고쳐먹었다. 소음으로 인해 속끓이지말고 저들의 부지런함을 배우자. 그러자 마음이 편해졌다.
그러나 오늘 아내의 전화를 받고 또 많은 생각들이 몽골 초원을 달리는 말처럼 뇌 속을 시끄럽게 하고 있다.
우리는 왜 이 지경까지 왔을까.
여의도에서, 청와대에서, 군대에서, 안산에서, 팽목항에서, 학생들의 등굣길에서, 도무지 어디서부터 실타래를 풀어야할지 모르는 미궁 속에 빠진 느낌이다. 피해자만 있고 가해자는 없는, 비정상이 정상처럼 된 이상한 나라. 자식이 없는 것을 다행으로 생각하고 살아야하는 비정상이 난무하는 이 곳을 무어라 불러야할까.

우리는 왜 이러고 살아야하나.
위로부터 아래까지 책임지려는 사람이 없다. 나만 아니면 된다는 정신이 언제부턴가 시대정신이 된 것은 아닐까. 시대 정신이 있기는 있는걸까. 만병의 근원이 스트레스라는데, 정말 누구의 말처럼 이민을 가야하나. 우리에겐 미래가 진정 없을까. 복잡하다.

 

누가 있어 시대정신을 묻는다면_1
프란시스코 교황이 방문한 해미읍성에 설치된 조형물/사진 김우영

얼마전 프란치스코 교황은 방한 일정만으로, 또 인자함과 인간적 고뇌에서 나오는 사랑만으로, 많은 감동을 선사했다. 살아있다는 자체가 이웃에게 행복이 될 수 있다는 모범을 보였다. 그래서 방한기간동안 그가 무언(無言)으로 남긴 주옥같은 가르침이 떠난 후에도 여러 사람의 가슴에 오롯이 살아 삶의 작은 지침이라도 되기를 바랐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닭이 세 번은 커녕 한 번도 울기 전에 그는 배신당하고 만다. 자신과 같은 주님의 종으로부터. 

이 가을 무엇을 수확할 것인가.
영혼은 성숙되기도 전 곰팡이가 피고 세상은 혼돈과 같은 이름으로 자라고 있는데.
어떤 현자(賢者)가 있어 우리를 평화롭게 할 것인가, 누가 좀 알려주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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