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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잡설(雜說)
최정용/시인·한국지역언론인클럽 사무총장
2014-12-28 14:28:09최종 업데이트 : 2014-12-28 14:28:09 작성자 : 편집주간   김우영

12월 잡설(雜說)_1
12월 잡설(雜說)_1

바람찬 날들이 계속되는 요즘이다. 12월이니 당연하겠다. 이런 겨울에는 북방도 아닌 수도권에서도 별이 바람이 찰랑인다. 하여, 별보는 날이 많아지는 시절을 걷고 있다. 독립영화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가 최단기간 100만 관객을 돌파했다는 것도 계절 때문이 아닐까, 생각하게 하는 요즘이다. 겨울은 그런 강이다. 종시불이(終始不二)의 시간. 끝과 시작이 교집합의 행태를 보이며 인간의 마음을 복잡하게 만드는 마법의 시공(時空)울 우리는 지나고 있다.

윤동주 시인의 '별 헤는 밤'은 그래서 인생의 가을을 애끓듯 마음으로 노래했는지도 모른다. 잠깐 들춰보자.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가을로 가득차 있습니다/나는 아무 걱정도 없이/가을 속의 별들을 다 헬 듯합니다/가슴 속에 하나 둘 새겨지는 별을/이제 다 못 헤는 것은/쉬이 아침이 오는 까닭이요/내일 밤이 남은 까닭이요/아직 나의 청춘이 다 하지 않은 까닭입니다/별 하나에 추억과/별 하나에 사랑과/별 하나에 쓸쓸함과/별 하나에 동경과/별 하나에 시와/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어머님, 나는 별 하나에 아름다운 말 한마디씩 불러 봅니다(하략)'
이국 소녀의 이름은 차마 부르지 않더라도 별을 보며 그리워할 수 있는 기억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행복한가, 싶은 날들이다.

예로부터 밤하늘의 별 가운데에 북극성이 있었다.
현재는 작은곰자리 α를 북극성이라고 부른다. 고정불변이라고 믿었던 북극성도 조금씩 변한다고 하니, 세월유감(歲月有感)이다. 한국과 중국에서는 북신(北辰)이라고도 불렀다. 움직이지 않는다는 믿음 때문에 예로부터 항해자나 나그네의 친근한 벗이었다. 

지구로부터 800광년, 지구의 세차운동 때문에 자전축의 방향인 천구북극이 서서히 이동, 작은곰자리 α는 천구북극에서 점차 멀어지고, 1만2천년 후에는 거문고자리 α인 직녀성(Vega)이 북극성이 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예측이다. 5천년 전에는 용자리 α가 북극성이었다고 한다.
새삼스레 별 이야기를 하는 건 시절이 사람을 외롭게 만들기 때문이다. 연말, 잦은 모임에 나가서도 위로받지 못하는 마음을 숙명처럼 부둥켜안고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 쓸쓸한 중장년들에게 따뜻함이라도 전하고 싶은 알량함 때문이다.

우리 모두의 건강을 위하여 '건배'를 외치며 '위하여'를 연발하지만 결국, 공허함을 이기지 못한다는 것을 알아버린 나이. 그 쓰린 속내를 가족들에게도 비치지 못하고 알콜에 기대 잠으로 망명하는 세대들에게도 축복있으라.
유난히 많은 일들이 우리 곁을 스쳐갔던 한 해가 지고 있다.

세월호 참사에서 시작한 대한민국 불행열차는 지자체 단체장과 기초의원 선거를 거쳐 판교사건, 십상시, 땅콩 공주, 통진당 해산 등 설국열차로 까지 여전히 진행형이다. 한반도 곳곳에서 터진 화재사건과 일련의 일들은 우리가 선진국에서 살고 있는 것이 맞나싶은 의구심마저 불러 일으켰다. 돌이켜보면 대한민국의 2014년은 '안전불감증을 외치며 안전불감증에 빠진' 한 해로 기억될 것이다.

아무튼 우리는 어떤 형태로든 세월의 강을 건너고 있다. 2015년 역시 어김없이 올 것이다. '희망'이라는 슬로건을 들고 '그래도 세상은 살만한 곳'이라고 유혹하면서. 그러기위해서는 2014년이라는 강을 잘 건너야 할 것이라는 상투적인 말에 기대를 걸수 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리라.
아니, 어쩌면 그 옛날 북극성같은 '안내자 늑대(Guidin Wolf)'가 없기 때문은 아닐까, 횡설(橫說)해 본다. 시대의 구심점이 없는 시절을 건너고 있는 세대처럼 불행한 삶은 없을지도 모른다. 

최근 '국제시장'이라는 영화로 인해 다시 주목받은 우리들의 전 세대들에게는 가족부양이라는 사명감이 있어 존중받는 삶이었다. 그러나 이데올리기에 휩쓸려 젊은 강을 건넌 중년들에게 윤동주의 별이나 항해자의 북극성이 조금이나마 위로가 됐으면 좋겠다. 하루에 한번쯤은 하늘을 보며 지나온 한 해를 잘 톱아보기를 권한다.

혹, 불과 한 세기도 지나지 않은 세월, 한반도 반대쪽 지구에서 진정한 혁명을 꿈꿨지만 외로웠던 한 영혼의 시(詩)에서 위로를 찾는 것은 또 어떨까.

'지금까지 나는 나의 동지들 때문에 눈물을 흘렸지,/결코 적들 때문에 눈물을 흘리지는 않았다/오늘 다시 이 총대를 적시며 흐르는 눈물은/어쩌면 내가 동지들을 위해 흘리는/마지막 눈물이 될지도 모른다/우리는 그 멀고 험한 길을 함께 걸어왔고/또 앞으로도 함께 걸어갈 것을 맹세했었다/하지만/그 맹세가 하나 둘씩 무너져갈 때마다/나는 치밀어 오르는 배신감보다도/차라리 가슴 저미는 슬픔을 느꼈다/누군들 힘겹고 고단하지 않았겠는가/누군들 별빛 같은 그리움이 없었겠는가/그것을/우리 어찌 세월 탓으로만 돌릴 수 있겠는가/비록 그대들이 떠나 어느 자리에 있든/이 하나만은 꼭 약속해다오/그대들이 한때 신처럼 경배했던 민중들에게/한 줌도 안되는 독재와 제국주의의 착취자처럼/거꾸로 칼끝을 겨누는 일만은 없게 해다오/그대들 스스로를 비참하게는 하지 말아다오/나는 어떠한 고통도 참고 견딜 수 있지만/그 슬픔만큼은 참을 수가 없구나/동지들이 떠나버린 이 빈 산은 너무 넓구나/밤하늘의 별들이 여전히 저렇게 반짝이고/나무들도 여전히 저렇게 제 자리에 있는데/동지들이 떠나버린 이 산은 너무 적막하구나/먼 저편에서 별빛이 나를 부른다'(체 게바라 '먼 저편 : 미래의 착취자가 될지도 모를 동지에게' 全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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