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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칼럼] 22대 정조대왕은 수원화성 축성, 22대 심재덕시장은 세계문화유산 등재
김우영 언론인
2023-09-04 08:55:44최종 업데이트 : 2023-09-02 20:34:36 작성자 :   e수원뉴스

[공감칼럼] 22대 정조대왕은 수원화성 축성, 22대 심재덕시장은 세계문화유산 등재


8월 11일~13일까지 행궁동 일원에서 열린 수원 문화재 야행의 중평(衆評)은 성공적이었다는 것이다. 행사 내용도 좋았고 방문객도 많았다. 시에 따르면 7만 5000여 명이 수원 문화재 야행을 즐겼다는데 이는 코로나19 이후 최다 인원으로 지난해보다 2만여 명 늘어난 것이라고 한다.

 

시민과 관광객들은 세계유산인 수원화성 안 밤거리를 천천히 걸으며 수원의 문화재와 역사, 문화 예술의 매력을 만끽했다.

 

비록 태풍 카눈의 영향으로 첫날인 11일에는 일부 야외 프로그램이 취소돼 아쉬움이 들었지만 둘째 날과 마지막 날인 12~13일 화성행궁 일대는 관람객들이 넘쳐났다. 그야말로 인해(人海)를 이루었다.

 

 

늘 그렇듯 흡족한 축제가 끝나면 그 빈자리에 아쉬움이 들어차기 마련이다. 그러나 수원에서는 그럴 틈이 없다. 각종 공연과 축제가 잇따라 열리기 때문이다. 수원 문화재 야행이 끝난 뒤엔 수원발레축제와 수원시립합창단 잔디밭 음악회(밤을 잊은 그대에게)가 열렸다.

 

 

9월과 10월에도 문화예술 공연과 축제가 풍성하다. 헤리티지 콘서트, 재즈페스티벌, 제60회 수원화성문화제, 정조대왕 능행차 공동재현, 수원화성 미디어아트쇼, 세계유산축전 수원화성 등이 기다리고 있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9월과 10월에 열리는 대부분의 축제가 수원화성과 연관성이 있다. 만약에 수원에 화성이 없었다면... '정조대왕님 고맙습니다'라는 말이 저절로 나온다. 정조대왕과 수원은 불가분의 관계다.

 

조선조 제22대 임금인 정조대왕은 수원을 현재 위치로 옮기고 화성을 축성했다. 화성행궁도 지었다.

 

<사진> 정조대왕 동상(사진/수원시 포토뱅크)

<사진> 정조대왕 동상(사진/수원시 포토뱅크)

 

 

그리고 축성 후 200여 년이 흘렀다. 초대 민선 시장으로 선출된 심재덕 시장은 수원화성을 세계유산으로 등재시켰다. 당시 정부 관계자는 등재가 어려울 것이라는 비관적 전망을 했지만, 그는 홀로 유네스코 세계유산 회의가 열리는 프랑스에 가서 위원들을 설득해 등재를 성공시켰다.

 

수원문화원장 시절부터 화성행궁 복원사업을 추진해 시장 재임 때 복원 공사를 시작했다. 오늘날 전 세계에서 관광객들이 찾아오는 문화관광의 도시가 된 것은 정조대왕과 심재덕 시장의 공이 제일 크다.

 

공교롭게도 정조대왕과 심재덕 시장 모두 22대 국왕·시장이다. 나는 몇 년 전 한 잡지에 '22대 조선 국왕 정조대왕이 만든 수원화성을 22대 수원시장 심재덕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시켜 세계 속에 알렸으니 하늘의 뜻이 있었다고 해도 좋을 것 같다.'라고 쓴 적이 있다.

 

그 내용을 일부 소개한다.

 

'수원천 복개 반대 운동도 정조대왕의 뜻을 이은 것이라고 봐도 된다. 화성을 축성할 때 수원천의 자연적 조건을 충분히 고려, 규모․형식․구조 등을 결정했다. 수원천을 건너는 성벽 구간에 화홍문(북수문)과 남수문 같은 빼어난 부속 건축물을 만들었으며, 화홍문 옆에는 조선시대 건축물의 백미라고 평가되는 방화수류정을 지어 하천과 조화를 이루도록 했다. 화성과 수원천과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는 또 하나의 자연문화유산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정조 때 조성된 서호를 살려 개방해야 한다는 운동도 그렇고, 1996년 수원화성 축성 200주년을 기념해 정조대왕이 아버지 사도세자(장조)의 묘를 찾아가는 원행을 재현한 것도 모두 그런 맥락이었다.'

 

<사진> 심재덕 시장 조형물(사진/수원시 포토뱅크)

<사진> 심재덕 시장 조형물(사진/수원시 포토뱅크)

 

심재덕 시장은 수원화성문화제를 한국의 대표적인 지역축제로 성장시킨 인물이다.

 

그는 생전에 "수원의 정신적 뿌리가 된 사상이 '효'임을 확인하고 알리기 위한 맥락에서의 사업이었습니다. 당시 많은 예산 들여서 약 2100명가량 되는 사람의 신발, 옷, 무기, 모자 등등을 준비하고 말까지 몇 십 필을 동원해서 지지대고개에서 시작해서 융릉까지 능행을 재연했던 것은 수원의 정체성을 보이고 정조의 효행을 조명하기 위한 것이죠"라고 말한 적이 있다.

 

당시 "심재덕 시장이 혹시 정조대왕의 환생이 아니었을까"라는 말을 여러 사람으로부터 들은 적이 있다. 불교 신자가 아니기에 환생에 대한 적극적인 믿음은 갖고 있지 않지만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도 해봤다.

 

 

나는 심재덕 시장과 많은 일을 함께 했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다. 대표적인 것은 수원천 복개 반대운동, 서호 개방운동, 화성행궁 복원운동 등이다. 세월이 흘러 심시장은 이 세상에 계시지 않는다. 그와 함께 이런 일들을 했던 김동휘 선생, 안익승 선생, 이승언 선생 등도 타계하셨다.

 

어느새 밤이면 바람이 선선하다. 무더위를 겪을 때는 절대 올 것 같지 않았던 가을이다. 오늘 화성행궁 신풍루 앞 삼정승 느티나무 아래 앉아 이 '어른'들을 생각했다.


김우영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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