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본문 바로가기하단 바로가기

상세보기
[공감칼럼] 수원천엔 자라 가족들도 산다
김우영 언론인
2023-09-18 09:28:40최종 업데이트 : 2023-10-05 09:28:21 작성자 :   e수원뉴스

[공감칼럼] 수원천엔 자라 가족들도 산다


몇 해 전 (사)화성연구회 이사이자 사진기록분과위원장으로 활동하고 있는 이용창 형이 "이것 좀 봐." 하면서 스마트폰에 담긴 사진을 보여줬다.

 

수원천이었고 하천 가운데 있는 작은 바위 위에 웬 작은 솥뚜껑 같은 게 올라와 있다. "이거 혹시 자라 아니요?"라고 물으니 그렇단다.

 

주요 산책코스인 수원천을 수없이 걸었어도 자라는 본 적이 없다. 요새는 나오지 않지만 물뱀, 다슬기, 메기, 족제비 등도 수원천에 살았다. 생태계가 살아났다는 얘기이다.

 

거기에 더해 이젠 좀처럼 보기 힘든 자라까지 있다니 반갑기 이를 데 없었다. 

 <사진> 지난 9월 초 수원천에서 만난 자라 가족들 (사진/김우영)

<사진> 지난 9월 초 수원천에서 만난 자라 가족들 (사진/김우영)

 

그런데 올해 들어서 나도 자라를 보았다. 그것도 한두 마리가 아니다. 내가 만난 놈들만 해도 세 곳에서 10마리나 된다. 오늘은 한 곳에서 무려 네 마리나 봤다. 어딘지 밝히지는 않겠다. 이 글의 독자들은 그럴 리 없지만 혹시나 잡아가서 몸보신하겠다는 사람들이 있을지 몰라서다. 자라가 엄청 빠른 녀석이라서 순순히 잡혀 줄지는 의문이지만.

 

게다가 야생 자라는 환경부 지정 포획금지 종이다. 낚시를 하다가 실수로 잡을 경우에도 도로 풀어줘야 한다. 천연기념물은 아니지만 야생 자라의 개체수가 적기에 멸종의 위험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수원천에 자라가 산다는 것을 확인하고 뿌듯했다. 누가 방생한 것인지, 아니면 하류에서 올라와 자연 상태에서 번식한 것인지 알 수는 없다. 하지만 자라가 살만한 생태환경이 유지되고 있다는 것이 중요하다.

 

수원천이 완전히 살아났다는 것이 실감 났다. 수원천 살리기에 한몫을 한 나는 더욱 뿌듯하다.

 
 

지난 5월 2일 자 본란에서도 언급했지만, 수원천 살리기에 앞장선 곳은 수원문화원이다. 정치권에서 수원천을 복개해 도로나 주차장으로 사용해야 한다는 여론이 일자 당시 심재덕 원장은 "수원천은 수원화성과 함께 수원의 상징이자 환경·역사의 젖줄이기 때문에 복개하면 안 된다."며 복개 반대 운동을 시작했다. 수원문화원이 월간으로 발행하던 '수원사랑' 주간을 맡고 있던 나는 1989년 수원사랑 1월호에 죽어가는 수원천을 되살려서 후손에 물려줘야 한다는 내용의 첫 번째 기획기사 이후 몇 번의 칼럼을 썼다.

   

수원천 복개를 반대하고 친환경 하천으로 복원해야 한다는 운동은 시민들의 호응을 얻었다. 반면 교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이미 자연하천으로서의 기능을 잃어버린 수원천을 복개해 도로와 주차장으로 사용해야 한다는 복개 찬성론자들 반발도 만만치 않았다.

 

그러나 1995년 6월 제1회 전국 동시 지방선거에서 심재덕 수원문화원장이 초대 민선 수원시장에 당선되고 나서 "문화재를 지키고 수원천을 살리기 위해 복개를 철회한다."라는 수원시의 공식 발표에 진행 중이던 복개 공사는 중지됐다.

 

수원천이 살아났다. '수원천의 기적'이었다. 물고기들이 돌아왔고 맑아진 하천에서 아이들이 물놀이를 하는 사진도 신문에 자주 등장했다.

 

<사진> 수원천의 자라 한 마리가 햇볕을 쬐기 위해 돌 위에 올라 있다. (사진/김우영)

<사진> 수원천의 자라 한 마리가 햇볕을 쬐기 위해 돌 위에 올라 있다. (사진/김우영)

 

시골이긴 하지만 수원시와 인접해 있던 화성시 봉담읍 수영리가 고향인 나로서는 볼 수 없었던 귀한 동물이 자라였다. 어렸을 때는 그림이나 사진에서만 접했을 뿐이다. 성인이 되고 나서도 보신에 좋다는 얘기는 많이 들었지만 그다지 보신에 신경 쓸 일도 없었고 가격도 만만치 않아서 지금까지 먹어보지 못했다.

 

자라는 '별주부전'이란 옛 소설에 등장한다. 용왕의 병을 고친답시고 토끼를 꾀어 간을 빼가려다 실패한다. '한산:용의 출현'이란 영화에도 자라가 등장한다. 거북선이 적군의 배를 들이받을 때 용두가 배에 끼어버리는 문제로 고민하던 나대용이 자라가 머리를 집어넣는 모습을 보고 용두를 선내로 넣는 아이디어를 얻는 장면이 있다.

 

자라가 우리나라 옛이야기에만 등장하는 것은 아니다.

 

베트남의 전설에서는 대왕 자라가 명나라의 지배에서 나라를 구한 영물이라는 전설이 있다.

 

그런데 중국인들은 자신을 자라에 비유하면 분노한다. 대표적인 중국 욕이라는 '왕빠단(王八蛋)은 '자라의 알', '자라 새끼'라는 뜻이다. 중국에 자라가 제 어미와도 교미를 한다는 속설이 있기 때문이다.

 

그건 중국인들의 속설일 뿐이고 우리나라의 자라는 남생이와 함께 한반도에 본래부터 자생해 있던 토종 거북이다. 주로 강이나 연못 밑바닥 개흙이 있는 민물에서 산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자라의 무는 힘이 180kg이나 된다고 한다. 이 정도면 손가락이 잘릴 만하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도 놀란다'라는 속담은 아마도 자라에게 물려 본 사람들이 만든 것 아닐까.

   

요즘 수원천을 걷다가 자라를 찾는 재미가 추가돼 수원천 산책이 더 즐거워졌다.

김우영 언론인


추천 1
프린트버튼
공유하기 iconiconiconiconiconicon

독자의견전체 0

SNS 로그인 후, 댓글 작성이 가능합니다. icon icon


 

페이지 맨 위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