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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크를 누가 쥐고 있나
박두호/언론인, 왓츠뉴스 대표
2012-06-04 11:15:29최종 업데이트 : 2012-06-04 11:15:29 작성자 : 편집주간   김우영

지난 5월 27일 TV 프로그램 '퀴즈! 대한민국'의 최종 영웅 결정전에 소은숙 씨가 진출했다.
퀴즈 프로그램은 문제를 따라가며 함께 풀어보는 재미, 어려운 문제를 맞추는 출연자에 대한 관심 등으로 방송에서는 고유한 장르를 차지하고 있다.

이날 방송을 계속 보게 된 이유는 소 씨의 반듯한 말씨 때문이었다. 소 씨가 입고 있는 붉은 색 옷에 대해 사회자가 언급하자 "레드가 행운을 준 것 같습니다"고 하고 징크스도 있지 않겠냐고 묻자 "징크스는 만들지 않습니다. 스스로 굴레를 만들기 때문입니다"고 말했다.

최종 문제를 앞두고 긴장을 풀어주기 위한 것이겠지만 사회자가 또 물었다. "결혼이 늦어졌습니다." 소 씨는 50세였다.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이 없습니다. 작년부터 외로움을 타기 시작해서요. 등을 기댈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퀴즈 영웅이 되고 난 뒤 소감에서 "엄마 딸 영웅 됐어요. 이제 엄마 옆에서 잘해 드릴께요. 엄마 감사합니다"고 말했다.
그의 말, 즉 구어(口語)에서 주어와 술어의 흐트러짐이 없었다. 형용사와 부사를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경어의 쓰임새가 모자라지도 지나치지도 않았다. 국민이 바라보는 카메라 앞에서 자신의 의견을 당당하게 표현했다.

퀴즈 프로그램 가운데는 고등학교 학생을 대상으로 한 '도전 골든벨'도 인기다. 마지막 관문에 도전하는 학생의 경우 외모가 뛰어나지 않거나 가정이 부유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그 학교에서 평소 그 학생의 말에 귀 기울이는 일은 없어 보인다. 이날 처음으로 그 학생에게 마이크가 주어진다.  

그 학생은 자신을 키우기 위해 고생하시는 부모님을 걱정하고 선생님에게 감사한다. 긴장하는 순간에도 자신의 진로와 희망을 당당하게 표현한다. 이튿날부터 그 학교 뿐 아니라 그 도시에서 그 학생이 영웅이다. 그의 생각과 행동이 기준이 된다. 그가 마이크를 한번 잡은 뒤부터다.

우리나라 방송의 많은 시간을 차지하고 있는 연예프로그램은 어떤가. 이치에 맞지 않고 기발하지도 않은 말들을 시끄럽게 한다. 보기 거북한 행동으로 억지웃음을 끌어낸다. 비속어를 사용하고 외국어와 우리말을 되지도 않게 조합해 사용한다. 이런 문제는 이미 언론이 많이 지적하고 있다. 재치 있는 말과 행동을 보여주는 연예인을 찾기 힘들다. 

얼마 전 한 연예프로그램에서 패널로 참석한 개그맨들에게 진행자의 이름으로 3행시를 짓게 했다. 두세 명이 답했는데 그럴듯한 것이 없었다. 다른 한명은 자기 차례가 되자 도망갔다. 방송이 국민의 시간을 그렇게 허비하게 했다.

60년대 라디오 프로그램에 '재치문답'이 있었다. 산부인과 의사 한국남, 두꺼비 만화가 안의섭 씨 등의 박학다식과 위트가 국민들을 즐겁게 했다. 그러는 사이 그들의 말과 생각이 국민의 기준이 됐다.

무엇이 다른가. 이들의 언어는 문장의 구성도에서 다르다. 모든 말이 주어로 시작해 술어로 끝난다. 초등학교 국어교과서에 그렇게 쓰여 있다. 말하다 보면 주어가 목적어가 되고 자동사와 피동사가 헷갈리는 일이 없다. 

말이 담고 있는 논리성이나 설득력에서 힘이 다르다. 차분한 어조로 말해도 내용이 옳을 때 귀 기울인다. 그렇지 않은 방송인들은 목소리 볼륨을 높이거나 같은 말을 반복하고 비속어를 사용한다. 마이크 뿐 아니라 카메라를 차지하기 위해 자리에서 뛰어나와 말한다. 재치와 위트로는 관심을 끌 내용이 없으니까.

반듯한 생각을 조리 있게 말하는 선남선녀, 재치에 시대상과 희망을 담아 말할 줄 아는 방송인, 국민의 생각을 품위 있게 대변해주는 정치인. 우리나라 방송이, 우리 사회가 이런 사람에게 말할 기회를 더 많이 주는 모습을 보고 싶다.
 
청소년 언어, 인터넷 악플, 사회 풍조가 우리 사회의 마이크를 잡고 있는 사람들이 잘못 선정돼서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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