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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만 잘 살면 무슨 재민겨
윤수천/동화작가
2013-12-21 10:42:26최종 업데이트 : 2013-12-21 10:42:26 작성자 : 편집주간   김우영

농사꾼인 기덕이 아버지는 왼쪽 다리가 오른쪽 다리보다 반 뼘쯤 짧다. 그러다 보니 지게로 물을 져오더라도 정작 밭에 다다를 때면 물통에는 물이 반밖에 남아 있지 않다. 절뚝이며 걷느라 반 통의 물은 길바닥에다 엎지르기 때문이다. 

기덕이는 그런 아버지를 이해할 수가 없다. 반밖에 가져 오지 못할 물이라면 애당초 반 통만 지고 와야 할 텐데, 언제나 가득 물을 져 오니 말이다. 그래서 한번은 아버지한테 말씀을 드려봤지만 흘끔 쳐다볼 뿐 아무 대꾸도 돌아오지 않았다. 

수확의 계절인 가을이 왔다. 기덕이네 밭은 부지런한 아버지 덕분에 배추며 고추, 콩이며 팥이 잘도 자라 풍성했다. 잘 자란 것은 밭작물만이 아니었다. 밭두렁의 풀들도 하도 풍성하게 자라서 누가 보면 밭작물을 키우는지, 풀을 키우는지 분간하기기 어려울 지경이었다. 
기덕이는 그 잘 자란 밭두렁의 풀을 바라보다가 아버지가 물을 가득가득 져 오는 비밀을 비로소 알았다. 엎질러지는 반 통의 물은 그 밭두렁의 풀 몫이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 깨달은 게 있었다. 그 반 통의 물을 새벽마다 받아먹은 풀들 역시 그냥 모른 체하지 않고 맑고 고운 얼굴로 아버지를 기쁘게 해 주었다는 것도 알았던 것이다.

오래 전에 쓴 '기덕이 아버지의 물지게'란 동화다. 더불어 사는 공동체적 삶을 주제로 동화를 써 달라는 청탁을 받고 쓴 작품이다. 밭두렁의 풀도 배추나 고추만큼 소중하다는 것을 이야기해 본 것이다. 다시 말하면 돈이 되는 것만 수확이 아니라 기쁨이 되는 것도 좋은 마음의 선물이 된다는 것을 내 딴에는 주장한 이야기라 하겠다. 

연말이 가까워 오면 언론 한 구석을 비집고 나오는 얼굴들이 있다. 우리 주변의 불우한 이웃들이 그들이다. 가난과 질병에 시달리는 이웃을 비롯해 혼자 사는 독거노인에 이르기까지 그 얼굴들은 참으로 다채롭다. 
구세군의 자선냄비가 등장하는 것도 그 무렵이다. 어려운 이웃을 생각하라는 종소리는 작은 파도가 되어 거리를 누빈다. 빨간 자선냄비와 종소리, 그 앞을 무심히 지나가는 사람도 많지만 걸음을 멈추고 지갑을 여는 이들도 눈에 띈다. 말쑥하게 차려입은 신사나 숙녀에서부터 허리 굽은 할머니나 할아버지에 이르기까지 세대 또한 다양하다. 그 틈새를 비집고 쪼르르 달려와 동전을 넣고 가는 어린이의 모습은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답다. 

나 혼자만 잘 살면 무슨 재민겨_1
사진/김소라 시민기자

내 친구 Y는 연말이면 꼭 동네 새마을금고를 찾아 기부를 하고 있다, 쌀 50kg을 사서 어려운 이웃에 보내는 것이다. 그 친구의 선행은 여기서만 그치지 않는다. 국내 한 자선단체에 매달 3만 원을 보내고, 필리핀 어린이 한 명과도 결연을 맺어 달마다 3만 원의 학비를 보내고 있다. 또 꽃동네에 3천 원, 뇌성마비단체에 2천 원을 보내고 있다. 그런가 하면 구족화가 단체에서 보낸 카드를 받으면 얼마간의 성금을 1년에 두 차례나 보내고 있다. 

한 번은 그 친구를 만난 김에 넉넉하지 않은 살림에도 그런 선행을 하냐고 했더니 한마디 툭 던지는 말이 가슴을 파고들었다. "나 혼자만 잘 살면 무슨 재민겨."

'바람 부는 날 들에 나가 보아라/풀들이 억센 바람에도/쓰러지지 않는 것을 보아라//풀들이 바람 속에서/넘어지지 않는 것은/서로가 서로의 손을/굳게 잡아주기 때문이다//쓰러질 만하면/곁의 풀이 곁의 풀을/넘어질 만하면/곁의 풀이 곁의 풀을/잡아주고 일으켜주기 때문이다//이 세상에 이보다 아름다운 모습이 어디 있으랴//이것이다/우리가 사는 것도/우리가 사랑하고 사랑하는 것도//바람 부는 날 들에 나가 보아라/풀들이 왜 넘어지지 않고 사는 가를 보아라'
-졸시 '바람 부는 날의 풀' 전문.

초등학교 운동회 때 두 사람이 한 조가 되어 발을 한 짝씩 묶은 뒤 달리기를 한 적이 있다. 두 사람이 하나가 되어 달리기 위해서는 협심하여 발을 같이 떼어 놓아야하지 그렇지 않으면 달리기는커녕 넘어지기 딱 알맞은 경기였다. 
그날 나는 달리기를 잘하는 친구랑 한 조가 되었는데 결과는 기대와는 달리 등외였다. 개인적으로는 둘 다 달리기라면 자신이 넘쳤지만 보조를 맞추지 못한 데서 빚어진 결과였던 것이다. 

나는 연말이면 넉넉하지 않은 살림 속에서도 선행을 베푸는 Y가 생각난다. 그리고 혼자만 잘 살면 무슨 재민겨, 라는 말과 함께 운동회 날의 추억이 거듭해서 생각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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