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본문 바로가기하단 바로가기

상세보기
7월, 또는 50대를 위하여
최정용/시인·한국지역언론인클럽 사무총장
2014-07-06 11:51:32최종 업데이트 : 2014-07-06 11:51:32 작성자 : 편집주간   김우영

'내 고장 7월은/청포도가 익어가는 시절/마을 전설이 주저리 주저리 열리고/먼 데 하늘이 꿈꾸며 알알이 들어와 박혀/하늘 밑 푸른 바다가 가슴을 열고/흰 돛단배가 곱게 밀려서 오면/내가 바라는 손님은 고달픈 몸으로/청포(靑布)을 입고 찾아 온다고 했으니/내 그를 맞아 이 포도를 따 먹으면/두 손은 함뿍 적셔도 좋으련/아이야 우리 식탁엔 은쟁반에/하이얀 모시 수건을 마련해 두렴.'(이육사 '청포도' 全文)

7월이면 부르지도 않았는데 가슴에 살포시 안기는 시(詩)다. 고향을 기억할 수 있게하는 소재는 사람마다 다르겠다. 십대 초반 고향을 떠났으니, 그리 많은 기억을 지니지 못했다. '내 고장 7월은' 어떤 시절일까? 두더쥐 게임의 두더쥐처럼 팔딱거리며 떠오르는 장면이 없다. 청포도처럼 진한 향(香)도 없다. 바닷가에서 생겨나와 바다와 함께 지냈으니 미당(未堂)의 표현을 빌리면 '추억의 8할은 바다'다. 바다. 분지에서 고등학교를 다니던 시절, '바다'란 단어가 들어가는 노래를 부르다 눈물이 주루룩, 한 기억이 있으니 바다가 맞구나, 나를 키운 8할은. 

중학생 시절, 하굣길 부두가에 홀로 앉아 하염없이 수평선을 바라볼 때 머리 위를 날던 수많은 갈매기, 그들의 붉은 눈빛은 기억한다. 섬뜩한 그 빛. 멀리서 볼 때는 낭만이었지만 가까이에서 눈이 마주칠 때는 공포였던 십대 초반의 추억이 있기는 있구나. 비릿한 부두 내음은 추억의 덤이다.
색(色)이거나 향(香)이거나 타향살이 하는 사람에게 고향은 언젠가 돌아가고 싶은 곳이다. 오죽하면 수구초심(首丘初心)일까. 특히 정년을 마치거나 명퇴를 한 남자들은 더욱 그러할터. 타향살이 서럽다지만 돌아갈 고향이 있다는 건 어쩌면 축복일 수 있겠다. '돌아간다'는 희망이라도 있으니.

그래서 도연명(陶淵明)은 이렇게 읊었나 보다.
'돌아가리라/전원은 황폐해 가는데/내 어이 아니 돌아가리/정신을 육체의 노예로 만들고/그 고통을 혼자 슬퍼하고 있겠는가/잘못 들어섰던 길 그리 멀지 않아/지금 고치면 어제의 잘못을 돌이킬 수 있으리다/…/돌아가자/사람들과 만남을 끊고/세속과 나는 서로 다르거늘/다시 수레를 타고 무엇을 구할 것인가/고향에서 가족들과 소박한 이야기를 하고/거문고와 책에서 위안을 얻으니/…/이렇게 나는 마지막 귀향할 때까지/하늘의 명을 달게 받으며/타고난 복을 누리리라/거기에 무슨 의문이 있겠는가.'

 

7월, 또는 50대를 위하여_1
사진/김우영

귀거래사(歸去來辭)다. 그의 나이 41세 팽택 현령으로 근무하던 시절, 상급 기관의 관리들에게 굽신거려야 하는 상황이 닥치자 "내 어찌 쌀 다섯 말의 봉급 때문에 그들에게 허리를 굽히겠느냐"라며 사직하고 고향가는 길에 지은 작품이다. 사내의 기개가 보이는 대목이다. 알량한 월급때문에 목이 달아날까 고민하는 범부들은 쉽게 결정할수 없는 그런 마음이다. 
세상의 부조리에 삶의 신조를 굽히지 않는 그의 결기도 결국 돌아갈 고향이 있어 가능하지 않았을까, 억측해 본다. 

7월은 한 해의 절반이 새롭게 시작되는 시절이다. 수확하고 거두어 마무리를 잘 해야 하는 절기의 시작인 셈이다. 고스란히 인생으로 대치시키면 새로운 생을 도모해야할 50대쯤일 게다. 지금까지의 삶이 제도와 교육과 집안의 요구 등 주변부에 의해 살아진 것이라면 자신이 원하던 삶을 살아야할 출발점이 7월이고, 50대인 것이다. 그것이 쉬운 일이냐고, 머뭇거리는 사이에도 세월은 흐르고 결국 버나드 쇼의 묘비명처럼 '우물쭈물하다 내 이럴줄 알았다'가 될 수도 있다. 아니, 대부분이 그렇게 삶을 마감한다. 

50대에도 새로운 시작을 꿈꿀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벗이 있어 박수를 보낸다. 그동안 살았던 피동적인 삶을 털고 인생의 주인으로 살아보겠다는 결의다. 
'술한잔 사주지 않았'던 세상에게 허리굽혀 살았던 자신의 과거와 결별하고 이제는 세상에 술을 사주며 살겠다고 했다. 쉽지 않았을 결정과 결단에 경의를 표한다. 

당장이야 어렵겠지만 그 결기라면 무엇을 못할까. 세상사 힘들다고 주눅들어 있을 또 다른 50대에게 모범이 되기를 바란다. 그 벗에게 문자 한통 보냈다. 아니, 어쩌면 나에게 보낸 것일수도 있겠다.
'계곡에 발을 담근다고 지금의 슬픔이 씻어질까만 그래도 마음 한켠 차가움으로 비워두자. 더 뜨거워질 미래를 위해.'

연관 뉴스


추천 0
프린트버튼
공유하기 iconiconiconiconiconicon

 

페이지 맨 위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