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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맞이한 죽음의 순간들
김재철/칼럼니스트, 농학박사
2012-03-15 11:20:41최종 업데이트 : 2012-03-15 11:20:41 작성자 : 편집주간   김우영

사람이 살아가노라면 어찌 이별이 없을 수 있을까? 가깝게 지내던 사람이 잠시 발길을 돌린다 해도 이별이다. 그러나 만나기 힘든 먼 곳이나 다시는 만나 볼 수 없는 곳으로 가는 이별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이런 슬픔은 깊고 낮음을 가늠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우리는 이별을 준비하고 그 슬픔은 가슴 속에 깊이 간직하여 삭이며 살아가는 것이다.   

내가 맞이한 최근의 죽음의 순간은 1998년도인가, 지병이 도져 병원 응급실을 통하여 중환자실로 들어갔다. 말커녕 한 발자국도 띠지 못했다. 별안간 기관지가 좁아지면서 체내 산소공급이 급격히 감소한 때문이다. 

의사는 몇 시간 간격으로 회진하지만 매번 표정이 같다. 어째 죽을 기미가 아직 보이지 않는다. 이 와중에서도 간호사에게 부탁하여 만화책을 가져와 통독했다. 외국인이 쓴 만화로 읽는 인류문화사. 다윗이 부하 장수를 죽게 하고 아내를 뺏어 낳은 자식이 솔로몬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나는 어쩐 일인지 이십대부터 대략 10년 간격으로 죽음의 순간을 맞이한 경험이 있다. 하기야 따져보면 그 순간은 몇 번은 더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죽음의 순간을 맞이한 경험보다 더 황당한 경험이 있다. 
그것은 내가 군 복무 중 전사했다는 유언비어. 군에서 휴가를 받고 학교에 들르자 동급생들의 놀라는 눈초리를 보아야 했다. 월남전에서 전사했다고 알려졌다니. 부활을 기념하기 위한 막걸리를 꽤나 소모하였다. 

중학시절 4.19학생 데모대의 동창생이 총 맞아 사망하자 한동안 죽음에 대한 강한 의문과 호기심이 일어 죽음의 순간 어떤 이야기가 오고가나를 생각하였다. 아예 마지막 유언을 기록한 단행본을 구하기도 하였다. 
괴테는 죽는 순간 '나에게 빛을', 시인 김영랑은 '레몬 하나 주세요', 어느 의사는 스스로 손목의 맥박을 체크하면서 '이제 맥박이 멈췄어' 라고 말했던가. 어쩌면 나는 살아가면서도 잠재의식 속에 항상 죽음에 대비하고 살아온 것이 아닌가 싶다. 

한겨레21에서는 성숙한 삶을 위해, 한번쯤 유언장을 써 보라 그리고 해마다 유언장을 수정해 준비하라고 권유한다. 또다른 매체에서는 한술 더 떠서 죽음을 인정하고, 죽음은 삶의 형태의 변화일 따름이라며 언제 어디서든 죽을 준비를 하고 살라고 강조한다.

피에르 상소는 '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에서 느림은 민첩성이 결여된 정신이나 둔감한 기질을 의미하지 않는다며 여덟 가지의 느리게 사는 지혜를 열거하였다. 그중 하나가 마음속 진실을 형상화하는 글을 쓸 것, 그리고 장소와 계절이 섬세하고 감동적으로 조화를 이루는 기회에 포도주 한잔을 마시는 지혜를 가지라고 한다. 

이제 느림의 지혜를 발휘하여 마음 속 죽음의 의미를 기록하고 조용히 포도주 한 잔을 들이킨다. 나는 내 방을 마음 속 커튼으로 갈라놓아 언제든지 커튼을 제키고 저쪽으로 갈 수 있다. 우리 모두는 다시 돌아 올 수는 없는 저쪽. 생과 사가 공존하는 바로 이런 방에서 함께 살아가는 것이 아닌가 싶다. 단지 이별을 준비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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