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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읽는 정치인'을 보고 싶다
윤수천/동화작가
2012-05-21 07:17:25최종 업데이트 : 2012-05-21 07:17:25 작성자 : 편집주간   김우영

며칠 전 시를 쓰는 친구를 만났다. 식사가 끝나자 친구는 커피를 마시자며 나를 조용한 곳으로 안내했다. 그러나 실은 커피를 마시고 싶은 게 아니라 나와 이야기를 하고 싶어한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알아차릴 수 있었다.

커피를 주문하고 나자 아니나 다를까 점퍼 안주머니에서 원고를 꺼내더니 내밀었다. 
엊저녁에 잠도 안 오고해서 적어 본 것이란다. 재미있다. 그의 시에는 항상 삶의 이야기가 들어있다. 여기에 시가 어렵지 않고 쉽다. 글을 깨우친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해가 가는 시만 쓴다. 그러다 보니 정작 시를 쓰는 동료들한테서는 가볍다는 이유로 외면을 당하기도 하는 모양이다. 

나는 친구의 시가 좋다. 어렵지가 않아서 좋고, 우리네 삶을 들여다볼 수가 있어서 좋다. 무엇보다도 시 속에 오솔길 같은 이야기가 들어 있어 산책하는 기분을 느끼게 해준다. 짧은 이야기지만 읽고 나면 남는 것도 있다. 
시가 참 재미있다고 했더니 친구는 행복한 듯 웃는다. 그러더니 불쑥, 정치를 하는 사람들이 시를 읽는 사회가 왔으면 참 좋겠다는 말을 꺼내는 거였다. 

국무회의나 국회에서 회의 시작 전에 시 한 편을 낭송하고 회의를 진행한다면 훨씬 분위기가 달라지지 않겠느냔다. 더 나아가 시를 좋아하는 정치인의 모임도 생겼으면 좋겠고, 가끔은 국회의원들이 시낭송회나 시화전 같은 행사를 가졌으면 좋겠단다. 이것이 정 어려우면 국회위원 부인들이라도 나서서 시를 읽고 감상하는 풍토가 이루어졌으면 좋겠단다.

왜 갑자기 그런 생각을 했느냐고 물었더니 우리 정치가 너무 삭막하고 전쟁터 같아서 생각해 본 거라고 했다. 나는 즉시 동의했다. 아니 나 역시 오래 전부터 마음속에 넣고 있던 생각이었다. 시를 읽는 정치인은 나의 오랜, 간절한 바람이었다.

시는 문학 가운데서도 가장 경제성이 높은 문학이다. 짧은 시간에 감상과 감동을 함께 맛볼 수 있는 문학이다. 해서 조병화 시인은 교직에 있을 때 수업을 마친 뒷면 항상 시 한 편을 읽고 에너지를 재충전 받아 다음 수업에  임했다고 하지 않던가.

시는 사람의 마음을 정화시키는 데 그 무엇보다도 좋다. 그러니 시를 통해 정화된 마음으로 나랏일에 임한다면 지금보다는 훨씬 생산적일 것이다. 서로 삿대질할 일도 훨씬 줄어들 것이고, 멱살을 잡거나 주먹을 휘두를 일도 되도록 피할 것이다. 그뿐인가. 입만 열었다 하면 살벌한 용어와 막말이 튀어나오는 일도 조금은 수그러들 것이다.

누가 말했던가. 정치는 물 흐르듯 해야 한다고. 그렇다. 소란스런 정치는 뒤쳐진 정치를 의미한다. 경찰관이 호루라기를 불어대면 시민은 불안해지게 마련이듯이, 정치가 목청을 높일수록 사회의 모든 기능은 움츠러든다.
시를 읽는 정치인을 보고 싶다. 주먹을 불끈 쥐고 목소리를 높이는 정치인의 모습은 너무도 많이 봐와서 이젠 지겹기까지 하다. 대신 시집을 옆구리에 끼고 사색에 잠긴 모습이나 뭔가 하나라도 제대로 붙잡고 고민하는 모습의 정치인을 만나고 싶다. 

선거 때면 흔히 등장하는 재래시장 방문 같은 쇼 대신 동네 서점에라도 슬그머니 나타나 시집 한 권을 사 들고 나가는 모습은 얼마나 신선할까 싶다. 별로 잘나지도 못한 인물에 한 일도 없는 자신을 그럴 듯한 지도자로 포장하여 뻑적지근하게 출판기념회를 여는 일은 더 이상 안 봤으면 좋겠다. 그건 책을 모독하는 일이다.

시대가 변한 만큼 '새로운' 정치인을 보고 싶다. '바람처럼 왔다가 이슬처럼 갈순 없잖아. 내가 산 흔적일랑 남겨 둬야지.' 조용필의 '킬리만자로의 표범'은 우리 인간들이 어떻게 살다 가야 하는 가를 보여주는 대중가요치곤 참 의미가 깊은 가요다.

그렇다. 아무렇게나 살다가 갈 순 없잖은가. 뭔가 제대로 살았다는 작은 흔적이라도 남겨야 하지 않겠는가. 이는 인간이면 누구에게나 해당되는 숙제이듯이 이 땅의 정치인들이라고 예외일 순 없다. 아니 그 누구보다도 모범을 보여야 할 사람이 그들이다. 친구와 헤어져 돌아오면서 나는 그런 날이 하루 속히 오기를 마음속으로 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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