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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세자, 그를 다시 만나다
최형국/문학박사, 무예24기연구소장
2012-06-22 08:54:53최종 업데이트 : 2012-06-22 08:54:53 작성자 : 편집주간   김우영

사도세자 서거 250주기 추모 특별기획전을 보며

지난 6월 1일부터 오는 7월 1일까지 수원 화성박물관에서는 사도세자에 관한 특별기획전이 열리고 있다. 사람들에게 사도세자는 아버지 영조의 노여움을 사서 뒤주 속에 갇혀 죽은 비운의 왕세자로 각인되어 있다. 
특히 사도세자의 죽음은 '영원한 제국', '이산', '성균관 스캔들' 과 같은 소설이나 TV 드라마로 끊임없이 재해석·재생산되며 일반 대중에게도 익숙해졌다. 그리고 근래에 사도세자에 대해 조금은 황망한 표현일지는 모르지만, '미쳤는가? 아니면 미치지 않았는가? 라는 주제를 가지고 관련 학자들 간의 다양한 의견이 충돌하면서 가끔 신문지면을 채우고 있는 정도일 것이다. 

그러나 사도세자의 광기(狂氣)에 대한 논쟁보다도 우리가 먼저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은 당연히 그가 조선을 어떻게 바라보았고 또한 어떤 조선을 꿈꿨는가라는 본질적인 고민이 먼저일 것이다. 특히 사도세자가 꿈꾼 조선을 구현해 내기 위해 아들인 정조는 수원에 화성을 건설하고 신도시를 계획하며 새로운 조선을 그려냈기에 그의 삶은 뒤주 속에서 멈춰버린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살고 있는 이곳 수원 화성에서 면면히 이어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래서 18세기 조선을 보다 잘 이해하기 위해서라도 사도세자의 행적은 충분히 들여다 볼 가치가 있다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사도세자에 대한 기록은 상당히 파편적으로만 드러난 상태다. 이는 아버지인 영조가 사도세자가 뒤주 속에 갇혀 죽은 사건 즉, '임오화변(壬午禍變)'에 대해 더 이상 언급하는 것은 국법으로 다스리겠다는 엄명이 있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사도세자가 뒤주 속에 갇힌 그날의 사건일지는 조선시대 국왕 비서실 일지라고도 할 수 있는 '승정원일기'에도 삭제된 상태다. 따라서 임오화변 이후에 사도세자에 대한 구체적 기록은 쉽게 찾아 볼 수 없는 이유이다. 

그런데 작은 파편처럼 흩어져 있는 사도세자에 대한 기록 중 유난히 눈에 띄는 것은 무예에 관한 것이다. 이는 비단 필자가 무예를 익히고 무예사를 연구하는 사람이어서 만은 아니리라. 대표적으로 정조가 아버지인 사도세자의 능을 수원 화산으로 이장하면서 편찬한 '현륭원지(顯隆園志)'와 정조의 문집인 '홍재전서(弘齋全書)'를 보면 가장 돋보이는 것이 무예에 관한 일이다. 

예를 들면, 북벌의 의지를 드높이며 강력한 군사력을 확보하기 위해 직접 말을 타고 월도를 휘둘렀던 선대왕인 효종과 용모가 많이 닮았으며, 효종의 유품인 월도를 꺼내어 소년시절부터 직접 무예를 연마했다는 기록은 사도세자의 어린 시절을 대표하는 내용으로 남아 있다. 
그리고 왕세자 시절 국왕의 업무를 대신하는 '대리청정'시절에 진행시킨 일 중 보병들이 익혔던 18가지 무예를 집대성한 '무예신보(혹은 무기신식)'를 직접 편찬한 일은 길이 기억남을 일이라고 하였다. 이러한 내용은 사도세자의 문집인 '능허관만고(凌虛關漫稿)'에도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이런 내용을 살펴볼 때, 아마도 사도세자가 꿈꾼 나라의 일면에는 청나라도 무시하지 못할 정도로 강력한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는 강군 조선의 모습일 것이다. 그래서 아들인 정조 또한 강력한 군사력을 보유한 조선을 만들기 위해 친위군영인 장용영을 중심으로 군제를 개혁하고자 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 핵심에 바로 수원 화성이 있다. 정조는 화성을 건설하면서 내세웠던 이유 중 가장 중요한 이유를 아버지의 무덤인 '현륭원(현재는 융릉)'을 보호하는 것에 있다고 하였다. 바로 아버지를 생각하며 화성을 건설하고 이를 통해 조선을 부국강병의 길로 이끌고자 했던 것이다. 

사도세자, 그를 다시 만나다_1
사도세자, 그를 다시 만나다_1

사도세자 서거 250주기가 되는 올해에 열리는 특별기획전은 그런 아비를 그리워하는 자식의 애절함이 묻어 있는 화성 성곽 안에서 진행되고 있다. 그곳에 가면 위풍당당한 사도세자의 필력이 담긴 글을 비롯해서 그를 기억하기 위해 애썼던 유물들이 조용히 유리관 너머에서 손짓하고 있다. 18세기 조선의 또 다른 모습을 기억하고 싶다면 지금 수원 화성박물관으로 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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