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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결혼식
윤수천/동화작가
2012-10-02 13:25:36최종 업데이트 : 2012-10-02 13:25:36 작성자 : 편집주간   김우영

그 날은 유난히도 추웠다. 그런데도 농민회관 안은 난방조차 되지 않아 바깥이나 다름없었다. 
사정이 그러니 신랑도 신랑이지만 얇은 드레스만 달랑 입은 신부는 결혼식 내내 오들오들 떨어야만 했다. 
여기에다 주례사가 어찌나 길었던지 신부가 재채기를 세 번이나 했다. 나중에는 참다못한 사회자가 주례에게 귀띔을 해야만 했다. 

내 일생 중에서 가장 추웠던 날을 꼽으라면 결혼식 날을 꼽고 싶다. 
우린 그렇게 결혼식을 치렀다. 요즘의 젊은이들이라면 결혼식을 안 했으면 안 했지 그렇게 하진 않을 것이다. 어디 결혼식만 그랬던가? 
살림집이라고 해야 셋방이 고작이었다. 방 하나에 부엌 하나가 전부였다. 그래도 불평을 하거나 짜증을 내지 않았다. 결혼은 그렇게 시작하는 것으로만 알았다. 

결혼 초의 그 어려웠던 이야기는 해도 해도 끝이 없다. 쌀 세 가마 값의 공무원 봉급으로 부모님을 모셔야 했고 2남1녀를 키워야 했다. 설상가상 내가 도시로 발령을 받아 두 집 살림을 할 적엔 고생이 두 배가 되기도 했다. 집사람은 지금도 그 시절 이야기를 할 적엔 눈에 물기가 어린다. 

이 지난날의 쓰디쓴 추억이 되살아난 이유는 다른 데 있지 않다. 
최근 들어 엄청난 결혼비용 때문에 혼사를 앞둔 젊은이들과 부모들의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라는 뉴스 때문이다. 그 고민 가운데서도 가장 맨 앞자리에 놓이는 고민이 신혼집이라고 한다. 집을 장만하지 않고는 신부를 맞이할 수가 없다니, 다시 말하면 집 없는 남자한테는 시집을 안 가겠다니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노릇인가? 

언제부터 이런 결혼 풍조가 우리 사회에 들어섰는지는 모르겠으나 잘못 됐어도 한참 잘못된 일이다. 결혼이 무슨 인생의 종착역인가! 결혼은 인생을 시작하는 출발에 불과하다. 
그런 만큼 시작은 미미한 게 정상이다. 벌어놓은 돈이 있다면 모르겠으나 그렇지 못한 경우엔 셋방부터 시작하는 게 당연하다. 이 당연한 일이 당연한 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건 이상해도 보통 이상한 게 아니다. 

중국 사람들은 음식점을 개업할 때 요란한 법이 없다. 저게 돈이 될까 싶을 정도로 아주 작게, 겸손하게 시작한다. 그러다가 돈이 벌려도 장소를 옮기거나 확장하는 데 아주 인색하다. 
만두집은 몇 십 년이 지나도 만두집으로, 짜장면집은 몇 십 년이 지나도 짜장면집이다. 여기에 비해 우리는 개업식부터가 야단스럽고 뻑적지근하기 이를 데 없다. 그러다 보니 얼마 못가 업종을 바꾸거나 문을 닫는 가게가 생긴다. 우리 동네에도 이런 집이 여럿 있었다. 

결혼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겸손하게 시작해야 그게 아름다워 보이고 믿음직스럽다. 사회 초년생인 두 사람의 힘으로 가정을 이루고, 땀 흘려 노력해서 조금씩 살림을 늘려가는 그 재미! 이게 사람 사는 행복이다. 

어렵사리 집에 전화를 놓고 얼마나 기뻤던지 동네 공중전화기 앞으로 달려가 동전을 넣고 아내와 통화를 했던 날을 나는 지금도 잊지 못한다. 그 가난한 삶의 행복감을 지금의 젊은이들은 모를 것이다. 어디 전화기뿐인가. 선풍기며 텔레비전 등등...그 작은 물건 하나를 들여놓을 때마다 그렇게 가슴 벅찼고 부자가 따로 없었다. 

최근 들어 작은 결혼식을 하겠다는 가정이 늘어나는 건 쌍수를 들어 환영할 만하다. 그것도 사회적으로 이름이 난 사람들이 앞장을 서서 자녀들의 결혼식을 그리 하겠다는 데는 우러러 보이기까지 한다. 

살아 보니 인생은 부유한 시절보다도 고생했던 시절이 오히려 아름답고 기억에도 오래 남는다. 
쪼들리는 생활 속에서 서로 의지하며 힘을 모우는 가족애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인생의 자산이자 훈장 같은 것이다. 그리고 그런 튼튼한 가족들이 공동체를 이루었을 때 그 사회는 건강한 사회가 되는 것이다. 그 출발점이 바로 작은 결혼식이다.  

작은 결혼식 _1
지난달 수원의 작은 음식점에서 열린 e수원뉴스 시민기자 김형효씨의 작은 결혼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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