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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없는 깨끗한 말에 대하여
윤수천/동화작가
2012-10-29 07:25:37최종 업데이트 : 2012-10-29 07:25:37 작성자 : 편집주간   김우영

이 세상에 와서 가장 착하게 살다 간 시인으로 꼽히는 천상병 선생은 그의 천진난민한 시만큼이나 어린애 같은 행동으로 곧잘 장안의 화제에 오르내렸던 인물이다. 남들은 막걸리를 술로 마시지만 자기는 밥으로 먹는다는 시인, 천상병. 가난 속에서도 얼굴 한 번 찡그린 적이 없이 행복타령만 한 시인 천상병. 험한 세월을 만나 모진 고생을 했으면서도 이 세상은 참으로 아름다웠노라고 했던 시인 천상병.

그 분이 생전에 어느 문학 전문지 기자와 대담을 가진 적이 있었다. 그런데 인터뷰 내내 그의 대답이란 게 하도 싱겁고 간단간단해서 웃음이 여간 나오는 게 아니었다. 기자의 질문 내용에 비해 답변자격인 그의 말은 하나같이 짤막짤막한데다가 희극적이기까지 했던 때문이었다. 

가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으니까 "나는 가난한 걸 좋아합니다" 하는가 하면, 기자가 시인의 시를 여러 편이나 인용해가면서 이것저것 문학에 관한 질문을 던지는 데도 그는 시종일관 "그렇습니다", "옳습니다" 할 뿐이었고, 시인의 시에 '새' 라는 단어가 많이 등장하는 이유를 묻자 "새는 자유분방한 것이니까요. 저는 자유로운 것을 좋아합니다." 하는 등 대담치고는 어설프기 짝이 없었다. 

원래 그 분의 시가 길지 못하고 동강난 엿가락 같았던 것처럼 답변 역시도 그랬다. 모르면 몰라도 대담을 담당했던 그 문학부 기자는 시인의 하도 주변머리 없는 답변 덕분에 계획된 지면의 분량을 채우느라 애를 먹었을 듯싶었다.
언어를 다루는 직업을 가진 시인으로서 더욱이 각박한 세상을 살아내느라 고생깨나 했던 지식인으로서 가슴에 묻어 둔 이야기도 많았을 터인데 그런 울분을 토하기는커녕 이제 막 세상에 나온 어린아이처럼 그저 묻는 말에만 또박또박 대답을 한다는 것은 어찌 보면 뭐가 하나 모자란 사람처럼만 보였다. 그러나 그게 바로 천상병 시인의 천성이었고 사람 됨됨이었다. 

하고많은 이야기 가운데서 천상병 시인의 이야기를 꺼낸 데에는 이유가 있다. 어린아이 같았던 시인의 말 속에 '말' 이 지닌 참뜻이 들어 있는 게 아닐까 여겨졌기 때문이다. 옳다! 오늘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말은 겉보기에는 화려하기 짝이 없지만 안을 들여다보면 왠지 빈 쭉정이거나 이상한 물질로 가득 차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다 보니 들을 때는 한없이 그럴 듯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공허한 소리로만 여겨진다. 

거짓없는 깨끗한 말에 대하여_1
거짓없는 깨끗한 말에 대하여_1

말은 진실이 담길 때 비로소 '빛나는' 언어가 될 수가 있다. 마음이 담기지 않은 말은 한낱 소리에 불과할 뿐이다. 이는 나이가 들어가면서 느끼는 것 중에 하나이기도 하다. 겉과 속이 다른 말, 바로 그것이다.
원래 말이란 의사소통의 수단으로 생겨난 것이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마음의 표현인 셈이다. 아미엘은 '말에 의해 표현된 진리는 인생에 있어서 가장 강한 힘이다' 라고 말했다. 언어가 가지고 있는 의미를 깨우쳐주고 있는 것이다.

청각장애자들의 언어는 말이 아니라 손이다. 손을 부지런히 움직여 자신의 생각을 상대방에게 전한다. 이를 수화라고 하는데 이들이 수화하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다 보면 깨닫게 되는 진리가 있다. 바로 대화는 저렇게 해야 하는 것이로구나, 하는 것이다. 그들은 손동작 하나에 온 신경을 모아 언어를 생산해 낸다. 어디 신경뿐인가? 눈빛은 더더욱 대화의 진실성을 말해 준다. 여기에 비해 정상인인 우리들의 대화하는 모습은 불성실할 때가 많다. 건성으로 듣거나 건성으로 말한다. 

입만 가지고 하는 대화는 반쪽짜리 대화이다. 눈빛도 함께 했을 때 비로소 그 대화는 완전한 것이 되고 함께 한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인다. 그 좋은 예가 바로 비정상인들이 보여주는 대화의 모습이다. 이처럼 세상에는 완전한 이들보다 모자라는 이들이 오히려 세상을 아름답게 가꾸고, 무의미한 것들에 의미를 달아주는 경우를 보게 된다.

이 한없이 맑고 투명한 가을, 누구나 가지고 있고 줄 수 있는 말 선물만은 거짓이 섞이지 않은 깨끗하고 아름다운 것으로 준비하고 알뜰히 사용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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