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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프로야구 팬의 고백
양훈도/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외래교수
2013-01-21 10:59:26최종 업데이트 : 2013-01-21 10:59:26 작성자 : 편집주간   김우영

프로야구 어느 팀 팬이세요? 넥센 히어로즈요. 수원 사시잖아요. 원래 삼미 슈퍼스타즈 팬이었어요. 삼미 연고지가 인천 경기 이북5도였거든요. 삼미에서 청보 핀토스로, 태평양 돌핀스로, 현대 유니콘스로, 우리 히어로스로 넘어갈 때마다 그냥 팬으로 따라가다 보니 그렇게 됐지요.

팀을 바꿔볼 생각은 하지 않으셨어요? 글쎄요. 팀이 연고지를 멋대로 바꿀 때, 하도 죽을 쑬 때는 바꿔볼까 고민도 했죠. 실제로 다른 팀을 정하고 응원해 보기도 하고. 그런데, 마음은 결국 첫 연고팀으로 돌아가더라구요.
(이 때 끼어든 옆 사람) 그렇죠? 그게 잘 안 되죠? 우리처럼 가슴이 뜨거운 사람은 그렇다니까. (자신의 앞에 앉은 사람을 가리키며) 이 친구처럼 가슴보다 머리로 사는 사람이나 팀을 바꾸는 거지.

지난해까지는 그랬다. 나는 분명 넥센 히어로즈 팬이었다. 상반기에 잘 나가던 팀이 곤두박질 할 때 괜히 우울해지고 까닭 없이 화가 나는….
솔직히 고백하자면 1982년 한국 프로야구가 시작될 때부터 나는 선배, 친구들의 눈총을 피해 몰래 야구 중계를 보곤 했다. 안 보면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세미나다 뭐다 해서 못 보게 되는 날은 어떻게든 그 날의 경기 결과를 확인해야 잠들 수 있었다.

곧은 선배, 친구들은 전두환 정권의 3S 우민화 정책이라고 핏대를 세우곤 했다. 얼빠지게 프로야구나 들여다보는 놈은 이 땅의 젊은이로서 자격이 없다고 몰아세웠다. 그래도 나는 프로야구를 몰래 봤다. 왜? 재밌으니까. 팍팍한 청춘에 유일하게 틔어 있는 숨통이었으니까. 내가 응원하는 삼미는 늘 꼴찌였지만, 드물게 이기는 날엔 괜히 신바람이 났다.

어쩌다가 피델 카스트로의 에피소드를 듣게 됐다. 카스트로는 지독한 야구광이었는데, 그 살벌한 쿠바 혁명의 와중에도 메이저리그 경기결과를 확인해야 잠이 들었다고 했다. 
1959년 전세계 젊은이의 우상이 된 체 게바라, 동생 라울 등과 함께 '그란마'호를 타고 쿠바 땅을 밟은 카스트로는 시에라 마에스트라 산맥을 넘어 아바나로 진격하는 동안 중요 지휘관들을 무더기로 잃는다. 당초 전투요원이 아닌, 군의관 자격으로 동참한 체가 전투지휘관이 되었던 것도 그 때문이다. 고작 150여 명의 게릴라가 감당하기엔 너무나도 버거운 싸움, 한 순간 한 순간이 생사의 갈림길인 그런 살벌한 전투의 와중에도 매일 메이저 리그 성적을 확인했다?

믿거나 말거나 한 소문이지만, 내가 프로야구에 쏟는 애정과 관심을 정당화하기엔 충분했다. 거 봐, 싸우면서도 얼마든지 프로야구를 즐길 수 있어. (정권을 잡은 후 쿠바가 아마 야구 세계 최강으로 군림하게 된 걸 보면 그가 야구광이었다는 소문은 사실인 듯하다.)

그 버릇은 전두환 정권이 무너지고, 무늬만 문민인 노태우 정부를 거쳐,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정부까지도 죽 이어졌다. 시간이 갈수록 누구 눈치 안 보고 맘 편하게 프로야구를 즐길 수 있어 좋았다.
가장 애석했던 순간은 수원에 둥지를 틀었으면 했던 현대 유니콘스가 미련 없다는 듯 목동으로 떠났을 때였다. 배신감이 치받쳐 올라 팀을 바꿨다. 하지만 수원 사람인 내가 애정을 쏟을 다른 팀은 없었다. 결국 첫 애인에게로 돌아왔다. 순전히 그놈의 정 때문에.

이젠 진심으로 애정을 쏟을 새 애인이 생기려나? 가능성은 밝아 보인다. 머잖아 당수동에 돔 구장도 들어선다고? 나 같은 팬을 잡으려면 10구단 '수원-KT'가 잘 해야 한다.
다른 거 없다. 시작부터 뼛속 깊이 수원의 팀, 경기도의 팀이라는 걸 보여주면 된다. 셈하고 저울질하는 건 나중에 해도 된다. 돈을 버는 데 프로가 아니라, 희망을 주는데 프로가 되어야 한다. 기업 홍보는 그라운드에서 혼신을 다한 것에 대한 덤으로 치부할 수 있어야 한다.

어느 프로야구 팬의 고백_1
어느 프로야구 팬의 고백_1

나도 이젠 나이가 들어서인지 예전처럼 내 응원팀의 투수 로테이션을 꿴다든지, 타율 홈런 타점 등 주요 부문의 톱 텐 기록을 줄줄이 읊는 실력은 줄었다. 그러나 혹시 모른다. '수원-KT'가 진짜배기 나의 팀이 된다면 왕년의 기억력이 되살아날지도…. 그런 날을 기다리겠다.

※뱀발. 10구단 생기는 기념으로 한국 프로야구도 미국 메이저리그처럼 지역명을 앞에 썼으면 좋겠다. 'KT ○○○○'보다 '수원 ○○○○'가 훨 낫지 않은가? 일본도 그렇게 하고, 다른 팀들도 그렇게 해온 관행이니 어쩔 수 없다고? 글쎄…. 한 팀 정도 역발상을 해도 괜찮지 않을까? 경기도의 다른 도시들이 서운해 한다면 'GG ○○○○'는 어떨까? 이름부터 팬심을 사로잡을 궁리를 해 볼 일이다. 

<양훈도 약력>
-북한학 박사
-경인일보 기자, 논설위원(1984~2007)
-T-broad 수원방송 시사토론 사회자(2009~2012)
-경희대학교 후마니타스 칼리지 외래교수(2010~현재)
-경기신문 비상임 논설위원(2013~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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