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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에 진정 강한 군대, 수원화성 장용영(壯勇營)
최형국/문학 박사(역사학), 무예24기연구소장
2013-02-04 11:31:33최종 업데이트 : 2013-02-04 11:31:33 작성자 : 편집주간   김우영

영하 15도를 밑도는 강추위 속에서 저마다 옷깃을 여며도 스멀스멀 파고드는 한기 앞에는 천하장사의 어깨도 움츠려들게 한다. 그런데 옛날이나 오늘이나 가장 추운 곳은 역시 군대였다. 
늘 적과의 대치로 인해 팽팽한 긴장감이 감도는 그곳을 지키는 군사들은 세상에서 가장 따스한 옷을 입는 다해도 마음 한구석이 시린 것은 거의 보편적 진리에 가깝다. 요즘이야 방한내복에 고어텍스로 무장한 특수군복들이 많이 보급되어 그나마 육체적인 추위는 조금 덜한 듯하다. 

조선시대 군사들도 추위와 싸워야만 했다. 특히 한겨울에는 적보다는 오히려 추위라는 원초적인 적에 대항하여 깊은 산골과 해안의 국경을 지켜야 했기에 그 수고로움은 말로 형언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래서 진정 최고의 군사들로 정평이 나려면, 엄동설한에도 꿋꿋하게 훈련하고 작전을 펼칠 수 있는 부대여야만 했다. 바로 정조가 수원 화성을 방어하기 위하여 특별히 친위부대 형식으로 만든 장용영이 그런 군사들이었다. 

'조선왕조실록' 정조 14년(1790년) 11월 21일의 기록을 보면 장용영의 군사들이 얼마나 뛰어난 실력이 있었는지 실제 사료를 통해서도 증명이 된다.
당시 정조임금님은 아버지인 사도세자의 무덤을 양주 배봉산에서 수원 화산(현 융륭)으로 옮기고 자주 참배를 하였다. 능행이 시작된 음력 11월 말에는 눈이 많이 쌓여 있었다. 그런 길을 말을 탄 기병 수백 명을 비롯한 수천의 군사들이 각종 깃발과 의식용 기물을 들고 위풍당당하게 걸음을 계속하였다. 

그런데 행렬이 읍청루(揖淸樓-현재 마포 북쪽 기슭)에 다가설 때 바닥에 얼음이 얼고, 길이 좁아져 전진하던 기병들이 갑자기 멈춰 섰다. 임금님의 능행길은 결코 멈춰서는 안 되는 것이 철칙이었기에 모두들 우왕좌왕할 때 장용영의 기병들이 대열을 갖춰 신속하게 그곳을 달려 나가자 후미 행렬이 안전하게 모두 이동할 수 있었다.

이후 한강 나루터에서도 얼어붙은 강을 도강하기 위해 잠시 멈춰서야만 했다. 
행차 앞뒤에 있는 각 군영의 기병들은 나루 길의 절반쯤 얼어붙은 곳을 꺼려 행여 죽을까봐 전진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이때 장용영의 기병은 뛰는 말에 채찍을 가하면서 순식간에 강 한복판에 날아들었다. 

언덕 위에 가득히 나와 구경하던 사람들이 누구나 눈이 휘둥그레지고 입이 딱 벌어져 하는 말이 '오늘 더욱 장용영의 용맹을 믿겠다.'고 하며 장용영의 군사들이 '사람과 말이 나는 것 같아 신병(神兵)과 다름이 없다.'라고 하였다라고 '조선왕조실록'은 전하고 있다. 말 그대로 하늘에서 내려준 군사들이라는 뜻이다. 

이런 장용영 군사들에 대한 칭찬을 들은 정조임금님은 심히 뿌듯하여 당시 호위에 참여했던 군사들에게 각종 포상을 주라고 어명을 내리기도 하였다. 
필자도 20년 가까이 수원 화성에서 무예수련을 하고 10년 넘게 말을 달렸지만, 얼어붙은 강위를 달린다는 것은 말 그대로 목숨을 건 모험이기에 쉽게 도전하지 못하는 일이다. 

겨울에 진정 강한 군대, 수원화성 장용영(壯勇營)_1
엄동설한에도 열리는 무예24기 공연, 베기가 끝난 후 칼날에 묻은 물기는 금방 얼음이 된다.

엄동설한인 지금도 수원 화성행궁 정문 신풍루 앞에서는 조선시대 정조임금님의 꿈과 희망으로 만들어진 장용영의 후예들이 매일같이 무예24기를 시범공연하고 있다. 
체감온도 영하 20도를 밑도는 날씨 속에서도 꿋꿋하게 수원 화성을 방문한 관광객들을 위하여 멋지고 날랜 무예를 보여주고 있다. 
바로 그런 당차고, 기운 넘치는 모습이 있기에 수원 화성이라는 유형의 문화유산은 무예24기라는 무형의 문화유산과의 조화로운 발전과 더불어 세계인이 사랑하는 관광명소로 부각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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