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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임금님의 활쏘기와 시력
최형국(역사학 박사/무예24기연구소장)
2013-03-03 11:42:14최종 업데이트 : 2013-03-03 11:42:14 작성자 : 편집주간   김우영

바야흐로 봄바람이 솔솔 부는 3월의 시작이다. 아직 꽃을 시샘하는 꽃샘추위가 있겠지만, 지난겨울 맹추위에 비한다면 그나마 마음이 놓인다. 이렇게 날이 풀리면 궁궐에서 임금님이 가장 많이 했던 운동이 바로 활쏘기다. 특히 정조임금님의 활쏘기 실력은 신궁에 가까웠다. 

기록을 살펴보면, 수원 화성행궁에 거둥(擧動-임금님의 행차는 한자로는 擧動이라고 쓰고 읽기는 거둥이라 읽는다) 해서도 정조임금님은 50발을 쏴서 49발을 맞춰놓고 마지막 한발은 예의상 쏘지 않거나 과녁을 빗나가게 해서 군자의 덕을 지키려 했다. 보통 우리나라 전통 활쏘기인 국궁에서는 화살 5발을 1순(巡) 혹은 한 순이라고 하는데, 한 순을 쏘고 나서 잠시 쉬었다가 다시 쏘도록 되어 있다. 

정조임금님의 활쏘기와 시력_1
소리 나는 화살인 효시(일명 명적 혹은 울고도리) 쏘기. 활을 쏘는 이는 필자인 최형국 박사다./편집자 주

그런데 50발이면 10순인데, 이를 모두 쏘려면 30분에서 1시간 정도의 시간이 소요된다. 이 시간동안 마음의 평정을 잃지 않고 화살 하나하나에 온 신경을 집중하는 것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또한 현재에도 사용하고 있듯이 1m가 넘는 거대한 과녁에 활을 쏘는 것이 아니라, 장혁(掌革)이라고 해서 손바닥 크기만 한 특수 과녁이나 작은 부채나 곤봉을 세워 놓고 이를 과녁삼아 화살을 날려 보내곤 하였다. 그런데 말이 손바닥만 한 크기의 과녁이지 저 멀리 50m 이상의 거리에 그것을 두고 쏘려고 하면 과녁조차도 희미해서 보이지 않을 정도다.

정조임금님이 이렇게 작은 과녁에 화살을 날리는 이유를 신하들도 가끔은 궁금해 하였다. 그래서 어느 날 신하들이 용기를 내어 도대체 국왕께서는 어찌 그리 작은 과녁에 화살을 쏘시냐고 묻게 되었다. 
그러자 정조임금님은 "활쏘기의 묘미는 정신을 집중하는데 있다. 그래서 표적이 작을수록 정신이 한데 모아져 이를 천천히 바라보고 있으면 작은 이 한 마리가 수레바퀴와 같이 크게 보이는 경지에 도달할 수 있다"라고 설명하였다. 그리고 단순히 선대의 유능한 능력을 물려받은 것에 그치지 않고 끊임없이 노력해서 얻은 결과물이라고 단언하였다. 

그런데 TV드라마나 소설 속에서도 그려지듯이 정조임금님은 아버지 사도세자의 문제로 인해 끊임없이 반대세력인 집권노론세력과 쉼 없는 정치 투쟁을 치러야만 했다. 말 그대로 1 대 100의 전투를 이기기 위하여 정조임금님은 신하들보다 뛰어난 학문적 성과를 얻어야만 했다. 
그래서 정조는 스물다섯 살에 왕위에 오른 후 눈이 빠져라 책을 보았으니 시력은 갈수록 나빠졌고 나이 마흔이 넘자 안경 없이 글을 볼 수 없을 만큼 시력이 나빠졌다. 

특히 정조는 '초계문신제(抄啓文臣制)'라고 하여 과거에 합격하여 관리에 등용된 사람들에게 직접 공부를 가르치고 시험을 치러 승진을 시켰는데, 이미 과거급제한 사람들을 가르치려 했으니 얼마나 피나는 공부를 했는지는 쉽게 짐작이 될 것이다.

이후 정조 23년(1799) 즈음에는 시력이 더욱 나빠지자 급기야 정사를 논하는 자리에서 안경을 써야 할까, 말아야 할까를 고민하기에 이른다. 이는 당시 예법으로는 임금이 신하들과 함께 정사를 살피는 자리에서는 안경을 쓰지 않아야 했기 때문이다. 대중이 모인 자리나 자신보다 지위가 높거나 연장자 앞에서도 착용할 수 없었다. 임금이라고 예법에서 예외가 아니었다. 

그래도 정조임금님은 해마다 봄이 되면 온 신하들을 불러 모아 안경을 벗고 스스로 활을 잡아 먼 과녁에 화살을 날리며 만인의 모범이 되려하였다. 바로 눈으로 과녁을 보고 화살을 쏘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과녁을 읽어내는 심안(心眼)을 키워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꽃 피는 춘삼월, 비록 앞이 어두워 희미하게 보일지는 모르나 투쟁하고자 하는 삶의 의지만 충만하다면 멀리 있는 과녁이 손바닥 손금 보듯이 환히 보일 수도 있다. 크게 심호흡 한 번하고 봄기운 가득 가슴에 채워 내가 서 있는 이 공간에서 또 다른 심안을 키워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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