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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성이란 힘들게 하면 떠나간다
김재철/농학박사, 칼럼니스트
2013-04-08 17:02:04최종 업데이트 : 2013-04-08 17:02:04 작성자 : 편집주간   김우영

지난 해 경기도와 수원시 등 지자체는 역사문화탐방 '삼남길'을 개발하였다. 삼남길 중 제4구간 사적 제140호인 독산성(禿山城)은 백제가 쌓았던 성으로 통일신라와 고려를 거쳐 임진왜란 때까지 이용된 서울과 삼남지방을 잇는 중요한 군사적 요충지였다. 하지만 이름에서와 같이 민둥 바위산이었기에 물을 얻기가 쉽지 않았다. 

임진왜란 발발 8개월 선조 25년(1592) 12월 1일. 전라순찰사 권율은 군사 2만 명과 독산성에 주둔하였다. 물이 없을 것이라 짐작한 왜군은 물 한 지게 올려 보내 조선군을 조롱하였다. 이때 권율은 말에 쌀을 끼얹어 목욕시키는 시늉을 하였다. 이를 본 왜군은 산꼭대기에서 말을 씻길 정도로 물이 풍부하다고 판단, 퇴각하였다고 한다. 이것이 전해오는 세마대 이야기이다. 

독산성 내 보적사 입구까지 자동차편으로 편하게 올라갔다. 백제고찰 보적사는 용주사의 말사(末寺)로 산성을 만들 때 지은 것으로 추정된다. 반갑게도 해탈의 문 입구에서 마을 어른이 이 지역을 자세히 설명하며, 맑은 공기를 접하기 위해 일주일에 한번은 꼭 돌아본다고 한다.  

보적사를 뒤에 두고 성곽 길을 걷다보면 왼편에 주차장으로 내려가는 성문이 보이고 근처 풀숲사이에는 야트막한 성벽이 숨어있다. 옛 관청지역이다. 길섶에는 무늬가 새겨진 석물도 박혀있고 깨진 백자 파편도 더러 보인다. 조금 돌아가면 산성 아래 옛 뱃길인 황구지천 너머로 멀리 융건릉 숲이 눈에 들어온다. 

독산성은 영조, 사도세자, 정조 3대가 묵었던 성이다. 영조는 영조 26년(1750) 온양온천에서 환궁하는 길에 독산성에 들러 성의 방비를 점검했다. 그리고 영조 36년(1760 경진년) 사도세자는 종기치료차 온양 온궁에 행차하여 돌아오는 길에 폭우로 황구지천을 건너지 못하자 독산성에서 하루 묵었다. 

그런데 독산성은 정조가 아버지 사도세자의 능을 현륭원(지금의 융릉)으로 모신 후 위기가 닥친다. 독산성이 현륭원의 풍수지리를 해친다 하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조는 사도세자가 독산성에 묵었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오히려 독산성을 크게 개축하였다. 정조의 애틋한 효심 때문이다.
 
정조 14년(1790) 2월 10일 정조는 현륭원 행차 때 독산성에 거둥하여 노인들을 소견하였다. "그대들 중에는 30년 전 경진년에 어가(사도세자)가 머물렀을 때 구경한 사람이 많겠구나?" 촌노들은 대답하였다. "어가가 머무른 날 친히 백성들의 고충을 물어보시고 곡식을 내어 주셨으며 진남루에 올라 과녁을 쏘아 연거푸 네발을 맞추셨습니다". 

부친의 행적을 들은 정조는 노인들을 위로하고 성내 백성들에게는 양곡을 지급하였다. 돌아오는 길에 화성행궁 득중정(得中亭)에 들러 활을 쏘아 네발을 맞췄다. "오늘 활을 쏜 것은 경진년의 옛일과 똑같다" 며 지방관에게 갑옷을 내려주었다. 정조의 심정을 이해할 만하다.
다시 성곽 길을 돌아오면 세마대가 나온다. 세마대 누각은 1957년에 복원되었으며 현판은 이승만 초대대통령이 썼다. 누각 근처 나뭇가지에서 3000년 만에 한번 핀다는 상상의 꽃 우담바라를 발견한다. 하지만 이는 풀잠자리 알이다.

백성이란 힘들게 하면 떠나간다 _1
관청 터
백성이란 힘들게 하면 떠나간다 _2
화강암 건축물 잔재
백성이란 힘들게 하면 떠나간다 _3
황구지천 너머 융건릉 숲이 보인다
백성이란 힘들게 하면 떠나간다 _4
우담바라

'삼국사기' 내물이사금 18년(373년)에 보면 백제 독산성 성주가 3백 명의 백성을 이끌고 신라에 투항하자 백제왕은 백성들을 돌려 줄 것을 신라에 청하였다. 
이에 신라왕이 말했다. "백성이란 항시 같은 마음을 갖는 것이 아니요. 왕이 돌보면 다가오고 힘들게 하면 떠나가는 것이니, 대왕이 백성을 편안케 해주지 않은 것은 탓하지 않고 오히려 과인을 책망함이 어찌 이리 심한가?" 

목민심서 '애민'(愛民)에서 위정자는 백성의 현실을 잘 살펴 경로애친, 빈곤퇴치, 재난구휼 및 소외되는 민중을 보살피고 민(民)의 편에 서서 다스려야 한다고 강조한다. 한번쯤 독산성에 올라 위정자가 갖추어야 할 덕목을 느껴보자.

*독산성은 낙랑 침입을 막기 위해 백제 온조왕 11년(기원전 8년)에 책(柵)을 설치한 곳이고, 광개토왕 18년(408)에 성을 쌓아 평양 백성을 옮겨 살도록 한 곳이다. 낙랑·고구려 접경지역인 경기북부나 황해남부의 어느 곳으로 생각되나 자세한 위치는 알 수 없다. 경기도 화성군이 아닐까 추정하는 견해도 있고 경기도 안성군이라는 설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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