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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조품 세상
윤수천/동화작가
2013-07-29 13:17:35최종 업데이트 : 2013-07-29 13:17:35 작성자 :   

 내 아는 분 가운데 관상에 관심이 많은 아동문학가가 있다. 그렇다고 그 분이 관상학을 전공했다거나 특별히 그 분야의 공부를 한 건 아니다. 출판사에서 오래 밥을 먹다 보니 여러 사람을 만나게 되고 그러다 보니 자연 사람의 얼굴에 관심이 가게 되더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겸손한 말이고 실은 그 나름대로의 공부도 하는 듯했다.

며칠 전 출판기념회에서 그 분을 만나 함께 식사를 하게 되었다. 몇 마디의 안부 끝에 요즘도 사람의 관상을 연구(?) 하느냐고 물었더니, 웬걸 공부를 그만둔 지 오래 됐노라는 대답이었다. 왜 그 좋아하는 관상 공부를 그만뒀냐고 재차 물었더니 대뜸 한다는 말이 모조품을 들여다보는 재미가 무슨 재미가 있겠느냐는 것이었다. 그 분은 성형한 얼굴을 모조품이란 말로 바꿔 말했다.

아,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자연 그대로의 얼굴을 들여다보는 재미가 바로 관상학이었구나! 그런데 너도나도 예뻐지려고 얼굴에 칼을 들이댄 얼굴들뿐이니 관상학이 나올 수 없지 않은가. 나는 그의 서운함을 조금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모조품 세상_1
모조품 세상_1
그런데 다음 순간, 나는 더 중요한 하나를 깨달았다. 서운함은 그 분 한 사람에게서만 끝날 것 같지 않을 것 같았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얼굴을 애써 만들어 세상에 내보내준 조물주가 가장 서운해 할 듯싶었다. 아니다! 서운할 정도를 넘어 화가 단단히 나 계실 것 같았다. 내가 어떻게 만들어 준 얼굴인데 너희들 맘대로 칼을 들이대?

성형수술을 소재로 쓴 '예뻐지는 병원'은 오래 전에 펴낸 내 첫 동화집 제목이다. 너도나도 예뻐지려는 욕망 때문에 거리에는 똑같이 생긴 얼굴들로 넘쳐나고 급기야는 서로가 진짜 누구라고 우기는 웃지 못 할 소동이 벌어진다. 이래서 예뻐지는 병원 원장은 돈 벌리는 재미에 빠져 처음에는 좋아서 어쩔 줄 몰라라했지만 뜻하지 않은 소동이 일어나자 급기야는 죄의식을 느낀 나머지 아무도 몰라보게 자기 얼굴을 성형수술하게 된다.

내가 이 동화를 썼을 때만 해도 성형수술은 그리 성행하지 않은 때였다. 불의의 사고를 당해 어쩔 수 없이 하는 얼굴 수술이 성형 수술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헌데 어느 때부터인지 성형외과 간판이 하나둘씩 거리에 나타나더니 오늘날에 와서는 웬만한 도시라면 성형외과 간판을 어렵지 않게 보게 되었다. 그만큼 성형 수술이 일반화됐다는 얘기가 될 것이다.

예뻐지려는 데 뭐가 잘못 된 거 있느냐고 할 사람이 있겠다. 분명히 말하지만 잘못 된 게 있다. 얼굴은 창작품이기 때문이다. 창작품에 칼을 들이대는 것은 개칠이 되기 때문이다. 개칠된 작품은 진품이 아니라 모조품이다.

그런데 현실은 참 우습기 짝이 없다. 드라마마다 모조품들이 활개를 친다. 직원을 뽑는 면접에서도 모조품은 대환영을 받는다. 결혼에도 모조품은 유리하면 유리했지 절대 손해를 볼 일이 없다. 하다못해 대학을 들어가는 데도 얼굴이 필요하다고 하니 이쯤 하면 가히 모조품 왕국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스운 얘기가 있다. 주인 여자가 성형 수술을 야단스럽게 하고 왔더니 개가 몰라보고 짖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화가 난 그 주인 여자는 다음날 개를 팔아버렸다. 주인도 몰라보는 어리석은 개를 뭣하러 키우느냐고. 내가 보기엔 그 개야말로 참으로 똑똑한 개라는 생각이 들었다. 주인의 얼굴 구석구석을 그렇게 세밀히 기억할 수 있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이 얘기를 소설을 쓰는 친구한테 맥주 두 병을 받고 팔았다. 헌데 아직까지 소설이 완성됐다는 얘기는 없다.

서글픈 얘기도 있다. 일흔이 가까운 내 아는 분의 아내는 성형외과에 가는 게 취미다. 그러다 보니 동창회를 못 나간다. 그의 얼굴을 기억하는 동창들이 그를 화제로 삼아 수군덕거리기 때문이다. 이 얼마나 서글픈 이야기인가.

올 여름방학에도 성형외과의 문턱은 환자 아닌 환자들로 이미 성시를 이루고 있다고 한다. 어린 학생들까지 이 모조품 생산 대열에 합세를 하고 있다니 이 얼마나 서글픈 현실인가. 이러다가는 얼굴만이 아니라 우리들의 마음까지도 진품이 아닌 모조품 전시장이 되지 않을까 걱정이 앞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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