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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길과 인문학
최형국/역사학 박사, 무예24기연구소장
2013-09-10 13:32:16최종 업데이트 : 2013-09-10 13:32:16 작성자 : 편집주간   김우영

떠나버렸다. 모두 떠나버렸다. 이제 골목길에는 더 이상 사람이 없다. 어릴 적 추억 가득한 어린 아이들의 왁자지껄한 웃음소리도,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의 느린 걸음도 모두 사라져 버린 곳이 오늘날의 골목길이다. 
그곳에는 이제 낡디 낡은 회색의 시멘트벽과 검은 옷을 뒤집어 쓴 유령 같은 아스팔트만이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절대적 편안함을 주는 거대한 철로 만든 자동차가 덩그러니 그곳을 메우고 있다.

어릴 적 골목길에는 사람의 냄새가 가득했다. 아침저녁으로 밥을 짓는 어머니들의 분주함 뒤로 아이들은 저마다 목소리를 내며 그곳을 달려 나갔다. 그래서 '누구야, 밥 먹어라'라는 옆집 아주머니의 목소리 신호에 따라 저마다 아이들은 가재가 제 구멍 찾아 가듯이 작은 대문 속으로 들어갔다가 이내 다시금 달려 나왔다. 저녁 즈음이면 골목길에 엷게 비치는 가로등 아래서 술래잡기와 말타기를 하는 아이들의 모습 속에는 사람이 살고 있음을 쉽게 확인할 수 있었다. 사람냄새가 났다.

그 사람냄새가 사라진 골목길에는 이제 주인 잃은 길고양이가 외롭게 제집인양 이리저리 어슬렁거린다. 사람냄새는 사라지고 짙은 외로움의 향기가 가득하고, 왁자지껄한 소통의 소리는 사라지고 단절의 외마디만 공허한 메아리처럼 울려 퍼진다.

골목길과 인문학 어찌 보면 별 상관관계가 없는 다른 주제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골목길은 인문학이 말하고자 하는 사람에 대한 생각을 가장 잘 담고 있는 공간이다. 인문학(人文學), 말 그대로 사람이 만든 무늬 즉 사람의 문화를 연구하는 학문이다. 곧 사람의 가치와 짐승과 다른 사람다움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파고드는 영역이다.

그러나 현실의 인문학은 너무나 박제화되어 있다. 오직 식자들의 전유물처럼 고매한 정신세계 속에서 인문학은 또 다른 이별을 준비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여기저기 인문학의 열풍이라는 미명하에 수많은 강좌들이 만들어지고, 소비되고 있지만 정작 가장 저편에 깔릴 수 있는 길 위의 인문학은 쉽게 찾아보기 어렵다. 그래서 골목길 속 인문학이 필요한 것이다. 

고담준론으로 무장하고 위대한 사상가나 문학가의 삶을 들여다 볼 것이 아니라, 이제는 골목길 속 우리 아이들의 웃음 속에서 인문학을 이야기하고 풀어가야 한다. 그것이 우리의 삶 속에 녹아내릴 수 있는 인문학인 것이다. 마치 어린 손주들에게 화롯불 옆에서 군밤을 구워주시며 들려 주셨던 할머니의 옛날이야기에 담긴 인문학의 근원정신을 살려야 할 때다. 

칙칙한 골목길 시멘트벽에 아기자기 한 벽화를 그리고 무너진 담장에 작은 넝쿨식물을 심어 그곳에 사람들이 살고 있음을 말해야 한다. 그곳에 다시금 사람들의 발길이 모이고,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되살아난다면 어렵디 어려운 인문학은 그 안에서 좀 더 편안한 모습으로 안착할 수 있을 것이다. 

골목길과 인문학_1
아침저녁 자전거 출퇴근길에 만나는 행궁동 대왕물고기 벽화. 그 크고 깊고 깊은 눈동자로 마치 자신의 몸처럼 긴 골목길의 역사를 이야기를 하는 듯하다. 골목길에는 사람과 사람들이 만나서 나누는 소통과 인문학의 근본이 담겨 있어야 한다. 골목길에 자동차 매연보다 사람들의 향기가 넘쳐흘러야 한다. 그래야 이 삭막한 도시가 좀 더 살맛나는 공간이 되지 않겠는가.

문학의 도시를 꿈꾸는 수원에서 하필 칙칙한 골목길에 벽화를 그리고 사람냄새를 기억하게 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일 게다. 그렇게 좁은 골목에서 사람들이 다시 소통하고, 자신들의 기억을 또 다른 누군가와 교감할 수 있는 시간을 만든다는 것은 오직 사람만이 가능한 것이다. 수원 지동과 행궁동 작은 골목길에 그려진 수많은 벽화들은 그렇게 사람다움을 찾아가는 소중한 시작이 될 것이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생태교통축제 역시 다시 골목길에서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사람들의 냄새를 만들어 내는 시험의 공간이다. 골목길은 자동차가 주인이 아니라, 사람이 주인이다. 세월이 아무리 흘러가도 오직 '사람만이 희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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