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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 떠나갈 것들에 기대
최정용/한국 지역언론인클럽 사무총장
2014-04-13 10:46:30최종 업데이트 : 2014-04-13 10:46:30 작성자 : 편집주간   김우영

꽃들이 지천이다.
버스커 버스커의 노래 '벚꽃 엔딩'이 저절로 흥얼거려지는 계절이다.
'그대여 그대여 그대여 그대여 그대여/오늘은 우리 같이 걸어요 이 거리를/밤에 들려오는 자장노래 어떤가요/몰랐던 그대와 단 둘이 손 잡고/알 수 없는 이 떨림과 둘이 걸어요/봄바람 휘날리며~/흩날리는 벚꽃잎이~/울려 퍼질 이 거리를~/둘이 걸어요~~.'
이 노래를 부르노라면 자연스레 몸이 반응한다. 그리고 마음은 벌써 '비행기에 올랐거나 남쪽으로 튀거나'다. 

봄날 떠나갈 것들에 기대_1
사진/김기수

사무실에서도 눈을 창밖에 두고 넋을 잃은 모습으로 상상여행을 떠난 이들이 난분분한 벚꽃만큼이나 많아지는 즈음이다.
운수납자(雲水衲子)의 삶을 꿈꿔온 이에게 떠남의 계절이 딱히 있을리 없겠지만 봄의 유혹은 상상이상이다. '인생은 여행이야'라고 떠나지 못하는 자신을 스스로 위로해보지만 부질없다. 떠나야 떠나는거다. 떠나려고 하나 떠나지 못하는 자는 떠나본 자의 이야기를 듣는 것도 때로는 위안이 된다.

위안 하나.
흑해연안에 있는 작고 아름다운 나라 그루지야(Gruziya)가 있다. 유명한 포도 산지로 와인과 브랜디 맛이 기가 막히다. 수도인 트빌리시는 카프카스의 진주라고 불리는데 산이 높고 골짜기에는 쿠라 강이 흐른다. 어디나 그렇듯 마을은 강을 따라 옹기종기 모여있다. 쿠라 강을 따라가다 보면 작은 선술집을 만나게 된다. 이 작은 선술집에는 언제나 사람들 물결이다. 

오감을 자극하는 와인과 싸고 맛좋은 요리가 유명해 한번 왔던 손님은 반드시 단골이 된다는 철칙이 있다. 트빌리시를 찾은 여행자라면 누구나 이 선술집에 들려야 한다는 불문률이 있을 정도다.(애주가들의 입맛 다시는 소리가 들린다.) 
그런데 와인과 요리보다 더 매력이 넘치는 것이 있는데 바로 가게 주인과 일꾼, 손님들의 유머넘치는 대화다. 듣고 있노라면 '중독'될 정도라니 가히 그 수준이 타의추종을 불허하겠다. 선술집 문을 열고 들어가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이 게시판이다. 이 곳에는 그루지야어와 러시아어, 영어로 적힌 '당부의 말씀'이 있다. 매일 내용이 바뀌는데 예를 들면 이렇다. 

'어서 오십시오, 저희 가게에서는 손님이 신(神)입니다. 손님이 바라는 것이 곧 법입니다. 그것을 실행하기 위해 저의 스태프는 밤낮없이 노력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종종 잔에 담뱃재를 털거나 가래를 뱉는 손님이 계시는데 그런 분께는 더욱 그 요구를 받들어 재떨이에 와인을 따라 드리고 있습니다' 등. 

그런 이유로 게시판 팬클럽이 생겼다나 뭐라나. 술보다 먼저 글에 취하는 술청이다. '음주전 취문장(飮酒前 醉文章)'이라고나할까. 수원에도 이런 매혹적인 술청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 

그러던 어느 날, 게시판엔 이런 글이 적혀 있었다.
'음주가 종교보다 바람직한 이유'
1. 술을 마시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살해당한 사람은 아직 없다.
2. 다른 술을 마신다는 이유만으로 전쟁이 일어난 경우는 없다.
3. 판단력이 없는 미성년자에게 음주를 강요하는 것은 법으로 금지돼 있다.
4. 마시는 술의 상표를 바꿨다는 이유로 배신자 취급을 당하지 않는다.
5. 술을 마시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화형이나 투석형에 처해진 사람은 없다.
6. 다음 술을 주문하기 위해 2000년이나 기다릴 필요는 없다.
7. 술을 많이 팔기 위해 속임수를 쓰면 법에 따라 확실히 처벌받는다.
8. 술을 실제로 마시고 있다는 것은 간단하게 증명할 수 있다.

아픔을 승화하는 방법이 녹아있는 글이다. 
역사적으로 강대국들의 침략을 여러번 받아온 이 나라는 1991년 소비에트 연방이 붕괴된 이후 독립한다. 그 사이 주변국들과 국내의 크고 작은 분쟁을 겪었다. 그 모진 풍랑을 겪으면서 선술집은 외유내강(外柔內剛)이 됐나보다
꽃은 피고 또 질 것이다. 피어난 꽃에 황홀하고 지는 꽃에 슬퍼할 시기다. 그루지야 선술집 게시팜의 글처럼 슬기롭게 환절기를 맞아야겠다.

'시불(詩佛)'이라 불렸던 중국 당나라의 시인 왕유(王維)의 시, '산거추명(山居秋暝)'의 한 구절에 기대 봄을 보낸다.(시인은 가을을 노래했지만 봄날에도 적절하다.)
'…(상략)소나무 사이로/달빛 비치고/맑은 샘물/돌 위를 흐른다./대숲이 버석이더니/빨래꾼 돌아오고/고깃배 지날 적/흔들리는 연잎!/꽃은 질테면 져라/님은 나와 함께 계시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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