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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正祖)의 첫 목소리를 기억하라
최형국/문학박사, 수원문화재단 무예24기시범단 수석사범
2014-07-28 17:06:15최종 업데이트 : 2014-07-28 17:06:15 작성자 : 편집주간   김우영

정조가 왕위에 올라 처음으로 던진 말은 우리에게 너무나도 잘 알려진 "과인은 사도세자의 아들이다"라고 시작하는 파격적인 일성(一聲)이었다. 그래서 각종 TV드라마나 영화를 비롯한 대중매체에서는 호기심을 자극하는 극적인 전개를 위하여 이를 적극 활용하였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정적들과의 싸움을 이겨내고 국왕이 된 정조의 일성이 마치 거대한 투쟁의 예고편을 암시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이보다도 더 중요한 첫 목소리가 있었다. 바로 정조가 정사를 살피는 정전 위 옥좌에 올라 처음으로 신하들과 대화를 나눴던 조참(朝參)에서 풀어낸 이야기다. 
정조는 첫 번째 아침 조회에서 민산(民産), 인재(人材), 군정(軍政), 재용(財用)이라는 네 가지의 정치개혁을 공표하고 그 이유를 하나하나 예를 들어가며 신하들에게 설명을 하였다.

첫째, '민산(民産)'이 의미하는 것은 백성의 삶을 풍요롭게 하라는 것이다.
정조는 농사를 짓는 농부, 물건을 만들어 파는 상공인, 물고기를 잡는 어부를 비롯한 조선의 모든 백성의 예를 하나씩 들어가며 그들을 살피고자 하였다. 그리고 그들의 삶이 풍요로워지려면 가장 먼저 해야 하는 것이 부정부패를 끊어내고 탐관오리들을 색출해야만이 가능하다라고 했다. 
농부들에게 아무리 비옥한 토지가 있다한들 과도한 세금을 징수하면 누군들 농사를 지으려 하겠는가, 힘센 장정들에게 부과되는 국방의 의무를 젖먹이 아이에게까지 부과한다면 누가 나라를 지키고자 하겠는가라고 되물으며 부패척결을 최우선의 과제로 삼았다.

정조(正祖)의 첫 목소리를 기억하라_1
수원화성 장안문 위로 보름달이 떴다. 장안문은 조선시대 건축된 모든 문들 중 가장 규모가 크다. 서울의 사대문보다 더 큰 문의 크기는 그가 바라던 새로운 조선의 크기를 상징한다. 그래서 과거 중국이 가장 번성했던 당나라 때의 수도 이름을 빌려와 '장안(長安)'이라 붙였다. 수원 화성에는 정조가 추구했던 4대 개혁의 모든 것이 담겨있다.

둘째, '인재(人材)'가 의미하는 것은 교육을 통해 좋은 사람을 키우라는 것이다.
정조는 이미 만들어진 인재를 뽑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좋은 인재를 잘 키울 수 있는 교육환경을 개선하는 것이 강한 조선을 만드는 지름길이라고 역설하였다. 
오로지 과거시험에만 매달려 경전에만 파묻힌 고리타분한 선비들로 꽉찬 현재의 관료사회를 비판하며 덕과 예를 갖춘 제대로 된 인재 기르기 방식이 필요하다는 것을 말하였다. 또한 지금까지 인재 등용방식이 너무나도 한쪽에 치우쳐서 제대로 된 국정을 운영하기 어려울 정도라서 한시바삐 인재를 키워야 한다고 설파하였다.

셋째, '군정(軍政)'이 의미하는 것은 이기는 싸움을 할 줄 아는 국방력을 쌓으라는 것이다.
정조는 국가의 위기상황이 닥치면 반드시 이기는 전쟁을 펼치는 장수와 군대가 필요하다고 하였다. 임진왜란 이후로 많은 군영이 만들어지고 수많은 병서들이 간행되었지만, 정작 전투에 능한 장수와 군대가 없다는 것을 걱정하였다. 심지어 현재의 군영은 정치적 이권에 맞물려 그저 제 살길만을 찾아 무리지어 움직이는 가병(家兵)의 수준이며, 명령체계 또한 중구난방임을 지적하였다. 
그래서 정조는 백성들을 건강하게 살펴 좋은 군사를 뽑고, 양질의 목초지를 통해 전투마를 확보하고, 기본 전술전개능력을 확보하는 군사훈련의 실행 등 가장 기초적인 것부터 다시 준비해야 한다고 말하였다.

넷째, '재용(財用)'이 의미하는 것은 국가의 재정력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라는 것이다.
정조는 국가가 세금으로 거둬들인 돈을 정치적인 상황으로 인해 함부로 퍼주지 말라는 것을 강조하였다. 구체적으로 쓸모없는 관원과 군사들에게 항시적으로 쏟아 부어지는 세금이 전체의 8할이 넘는다는 것을 지적하였다. 특히 이렇게 구멍난 국가재정을 복구하기 위하여 백성들에게 각종 세금을 또 다시 징수하는 일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나타냈다. 
백성들의 살림살이가 곧 국가의 재정에 직결되는 부분임에도 위로는 권문세족들과 아래로는 아전들까지
재정지출의 일관성을 상실해 국가적 위기임을 다시한번 상기시켰다.

정조는 이 네 가지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임금이 존경받지 못하고, 언론이 막혀 바른말이 들리지 않아 소통되지 아니하고, 반역을 꾀하는 무리들이 나온다고 하였다. 

마지막으로 2014년 대한민국의 정치현실에 꼭 필요한 정조가 신하들에게 던진 최고의 해결책을  그대로 인용해 본다. 그때도 정치는 밥이요, 나라는 곧 백성이었다.

"근본을 굳건히 하는 것은 백성에게 있다. 백성을 기르는 것은 먹을 것에 달려 있는데, 먹을 것이 풍족하다면 가르칠 수 있다. 이미 가르치게 되면 반드시 백성들이 스스로 경계하고 보호하여 나라를 도와주고 보탬이 되어 줄 것이다. 이것이 나라를 보호하는 근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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