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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이라는 말
윤수천/동화작가
2012-03-05 14:10:45최종 업데이트 : 2012-03-05 14:10:45 작성자 : 편집주간   김우영

청소년의 문제가 사회화된 탓인지 요즘엔 문학상 가운데도 청소년문학상이 많이 생겼고, 여기서 선정된 작품이 베스트셀러가 되고 영화와 연극까지 만들어지는 호사를 누리고 있다. 그 대표적인 소설이 '완득이'가 아닌가 싶다. 이 소설은 2007년 제1회 창비청소년문학상을 받은 작품인데, 성인 독자들에게도 상당한 인기가 있어 서점가에서 계속 독보적인 위치를 점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얼마 전에는 역시 청소년문학상인 블루픽션상을 받은 소설이 또 화제가 되었다. 이 소설은 소재부터가 특이하다. '빙판 위의 체스' 라 불리는 컬링을 소재로 꾸민 이야기다. 컬링은 그리 알려지지 않은 비인기 종목으로 4명으로 구성된 두 팀이 빙판 위에 그려진 표적판(하우스)에 20kg 무게의 스톤(돌덩이)을 누가 더 가까이 붙이느냐를 겨루는 경기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수상작의 제목이다. 
'그냥 컬링'. 기자가 작가에게 제목을 왜 '그냥 컬링'으로 정했느냐니까 대답이 또한 흥미로웠다. 인기와는 거리가 한참이나 먼 이 컬링이란 경기에 호기심을 느껴 동호회에 가입해 멍들고 넘어지면서 직접 해보니 컬링이 의외로 매력적인 경기이고, 여기서 깨달은 바가 있었다는 것이다. 
즉 컬링은 '그냥 좋고, 그냥 가슴이 뛰니깐 할 수밖에 없는 운동'이라는 것. 따라서 청소년들이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그냥 좋아서, 그냥 가슴이 뛰어서 할 수 있는 일을 한가지라도 가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이 소설을 썼고, 책 제목을 '그냥 컬링'이라고 붙여 봤다는 것이다. 

그냥, 참 좋은 말이다. 그냥 좋아서 하는 일치고 즐겁지 않은 일이 어디 있을까. 사람끼리의 관계도 그렇다. 그냥 좋은 사람보다 더 좋은 관계는 없다. 이해 관계로 맺어지게 되면 언젠가는 그 이해 때문에 금이 가고 상처를 입게 마련이다. 하지만 그냥 좋아서 사귄 사이는 과정뿐 아니라 끝도 아름답다. 학창 시절의 친구가 평생 가는 것도 그 때문이리라.

나는 중 고등학교 때 문예반에서 만난 친구들과 지금도 교분을 유지해 오고 있다. 그 만남이 어느덧 50년이나 되었다. 그냥 문학이 좋아서 함께 모였고 그러다 보니 교문을 나서서도 만남을 계속해 오고 있는 것이다.

나는 일이란 것도 그냥 좋아서 해야 행복하고 발전도 있다고 보는 사람이다. 단순히 보수만을 받기 위해 하는 일은 즐겁지도 않고 행복하지도 않는다. 일이 좋아서 해야 보람도 크고 행복하다. 

내가 아는 한 선배는 평생 다니던 직장을 마친 뒤 학창 시절에 좋아하던 사진기를 들고 들녘의 야생화를 렌즈에 담는 일로 노후를 행복하게 보내고 있다. 그러면서 그때마다 느낀 감상을 글로 적는 일도 병행한다. 언젠가 그 선배를 길에서 우연히 만나 차를 나눈 적이 있다. 직장에 다닐 때보다도 더 밝고 활기차 보이기에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물었더니 이제야 하고 싶은 일을 하게 되어 더없이 행복하단다. 

그냥 좋아서 하는 사람들은 이 선배만이 아니다. 내가 아는 한 후배는 직장 생활에서 취득한 영어 실력을 퇴직 후에 더욱 써먹고 있다. 외국 관광객을 대상으로 한국의 명소를 안내해 주면서 유서 깊은 역사도 함께 홍보하고 있다. 또 다른 한 후배는 법원의 조정위원직을 맡아 가정 문제로 찾는 이들을 상담해 주는 봉사 활동을 하고 있다. 이 모든 게 누가 시켜서 하는 게 아니라 그냥 좋아서 하는 것이다. 

"보통 청소년들에게 질문하면 가장 많이 돌아오는 대답이 '그냥'이에요."
그래서 '그냥 컬링'으로 제목을 정했다는 작가의 말을 곱씹다 보면 삶이란 것도 저와 같은 것이어야 하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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