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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임금님 낚시대를 잡다
최형국/역사학 박사, 한국전통무예연구소장
2013-04-27 09:11:19최종 업데이트 : 2013-04-27 09:11:19 작성자 : 편집주간   김우영

햇살 고운 봄날의 아침이다. 거기에 잔뜩 물기를 머금은 어린 잎사귀와 여기저기에 피어난 수많은 꽃들을 바라보고 있으면 도시의 삭막함도 잠시 잊을 수 있어서 좋다. 
여기에 강태공처럼 유유자적하게 흐르는 강물에 낚싯대를 드리울 수 만 있다면 그곳이 딱 천국일거라는 생각은 비단 필자 뿐만은 아닐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찬바람도 멈추고 산들산들 부는 봄바람 속에 고요하게 혼자 앉아 세월을 낚아 올리는 재미를 느껴 본 강태공들이라면 지금 이 순간에도 낚시가방 메고 어디론가 떠날 준비를 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정조임금님께서도 낚시를 참 좋아하셨다. 특히 오월의 햇살이 은은하게 퍼지는 날이면 읽던 책 위에 둥근 안경을 잠시 벗어 두고 봄바람을 쐬러 나갔다. 창덕궁 후원으로 나가면 여기저기 봄꽃들이 화사하게 임금님께 문안인사를 올리고, 널찍하게 사각형으로 파 놓은 부용지(芙蓉池)라는 인공연못에는 이리저리 무리를 지어 움직이는 잉어들이 임금님의 낚시 본능을 깨우곤 하였다. 

정조임금님 낚시대를 잡다_1
'동궐도'에 보이는 부용지의 모습-조선후기 그려진 동궐도에도 봄꽃이 가득하다. 저기 보이는 연못인 부용지에 정조임금님과 수많은 각신들이 둘러 앉아 나른한 오월의 햇살의 즐겼다. 혹여 창덕궁을 관람할 일이 있다면, 꼭 부용지에 들러 그날의 일을 상상해보길 권한다.

이때에는 보통 봄놀이로 낚시를 즐기는 것이라서 그 동안 학업에 몰두해 있던 규장각의 각신(閣臣)들도 모두 불러 들여 줄줄이 열을 지어 창덕궁 후원 부용지에 낚싯대를 드리웠다. 익히 들어 알고 있을 법한 정약용이나 박제가도 그 사이에 끼어 사방에 둘러 앉아 물속을 응시하고 있었으니, 한번 그 흐뭇한 모습을 상상해보시라. 임금과 그를 따르는 신하들이 연못에 둘러 앉아 낚싯대를 드리우고 세월을 낚는 모습이 얼마나 그림 같은 모습이었을 지를...

그런데 임금님과 함께하는 낚시에는 일정한 규칙이 있었다. 만약 누군가 물고기를 잡아 올리면 그 뒤에 서 있던 관원이 물고기를 잡았다는 표시로 붉은 깃발을 힘차게 휘두르게 되어있었다. 마치 무과시험 중 말을 타고 달리며 과녁을 쏘는 기사(騎射)시험에서 맞으면 붉은 깃발을 흔들어 적중을 알리는 것처럼 당사자에게는 언제나 즐거운 일이었다. 그리고 그 깃발이 움직임과 동시에 삼현육각의 풍악소리가 은은하게 부용지에 울려 퍼지면 더욱 어깨가 으쓱해졌을 것이다.

그런데 한 마리도 낚아 올리지 못한 신하들에게 봄바람은 자꾸만 찌를 흔들고, 일렁이는 물결에 비친 고운 햇살은 두 눈은 흔들고, 여기저기서 팔뚝만한 잉어를 끌어올려 풍악소리가 귓가를 흔들면 임금님과 낚시하는 것도 웬만한 정사를 살피는 일 못지않았을 것이다. 

이렇게 모두 둘러앉아 어느 정도 손맛을 보고 난후에는 어김없이 시 짓기가 후속 이야기꺼리였다. 정조임금님께서 시작과 끝에 해당하는 구절을 읊어주면 돌아가며 그날의 일을 한시로 표현하는 것이었다. 만약 이 자리에서 명문을 읊어내지 못하면 임금님 앞에서 아니 규장각 동료들에게 말 그대로 '쪽팔리는' 일이 되기에 그 동안 읽었던 수많은 한시들을 머릿속에서 짜내고 짜내어 그날의 분위기를 한 문장의 시로 표현해야만 했다. 

거기에 당연히 그 시가 허공에 메아리침과 동시에 주변 관원들이 일필휘지해서 그 시를 연결해서 기록했기에 '낙장불입(X)' 아니 조금 고상한 말로 '복수불수(覆水不收:엎질러진 물은 다시 담지 못한다)'라는 어쩔 수 없는 현실이 기다렸다. 
조선시대의 기록정신은 상상초월이며, 조선 그 자체였기 때문에 어느 누구도 기록에서 벋어나지 못하는 팔자였다. 아마도 그날 엉터리 문장으로 시를 읊었던 누군가는 뜬 눈으로 밤을 샜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게 정조시대 오월의 하루가 흘러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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