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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가운 팔달문
양훈도/경희대 외래교수
2013-05-12 15:49:35최종 업데이트 : 2013-05-12 15:49:35 작성자 : 편집주간   김우영

화성 축성 당시 공사비가 많이 모자랐다. 일꾼들을 공짜로 부려먹는 방식이 아니라, 전국 각지에서 데려다가 노임을 지급했기 때문이다. 책임자들이 큰 걱정을 하고 있는데 한 아전이 나섰다. "걱정들 마십시오. 제게 좋은 수가 있습니다." 그의 꾀로 주막이 차려졌다. 

겉으론 평범한 주막인데, 실상은 국영주막이었던 거다. 일꾼들은 저녁이면 품삯을 받아 주막으로 몰려들었다. 그들이 치른 술값은 다시 다음날 다시 노임이 되고…. 꽤 오래전에 들은  민담이다. 다시 찾아보니, 화서문 근방에 진짜 그런 주막이 있었다는 풍설이 전해지기는 하나 보다.

팔달문이 이달 초 돌아왔다. 2010년 6월에 시작된 해체보수 공사를 3년10개월에 마치고 새로운 위용을 드러낸 것이다. 어이없는 화재로 주저앉았던 숭례문 복구완공 바로 전날이라 반가움이 두 배였다. 
오래 못 봐 그런지, 새 단장을 해서 그런지 더 당당하고 더 품위가 넘친다. 조금 과장하면 이제야 수원이 수원다워진 느낌이라고 할까. 보물 402호 팔달문은 역시 인류의 문화유산이라 할 만하다.

반가운 팔달문_1
사진/편집실(수원시 포토뱅크)

1794년(정조 18년) 준공된 팔달문에 이상이 발견된 건 213년이 흐른 2007년이다. 국립문화재연구소의 안전진단에서 상층 문루 등에 꽤 심각한 결함이 있다는 판정을 받았다. 이에 따라 전흥수 대목장(중요무형문화재 제74호)이 도편수를 맡아 2010년 대수술에 들어갔다. 
문루 1층과 2층을 모두 해체하고 주춧돌부터 다시 조정했다. 기울었던 주춧돌을 가지런히 해 기우뚱해진 균형을 바로잡았고, 서까래와 들보를 튼실하게 고쳤다. 옹성 안팎의 전돌 백화를 제거한 뒤 부식되지 않도록 경화 처리하는 작업도 했다고 한다.

사실 화성은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축성 과정에서 벽돌 한 장까지 세심하게 고려한 걸로 유명하다. 빈틈을 찾아보려야 찾아볼 수 없는 완벽한 건축물이라는 이미지가 강하다. 그런 팔달문에 붕괴를 걱정해야 할 정도로 꽤 심각한 결함이 발견됐으니, 그 원인을 두고 설왕설래가 없을 수 없다. 

가장 설득력 큰 설명은 자동차 진동설이다. 말과 가마 타고 다니던 시절에 지어진 성문 주위에 지난 백년 간 각종 차량이 뿡빵거리고 다녔으니 배겨낼 재간이 있었겠느냐는 진단이다. 말 된다. 게다가 잘 고쳐놓아도 자동차 대책을 세우지 않으면 역사문화유산이 다시 손상될 것이라는 경고도 겸하고 있으니 귀담아들어둘 주장이다.

널리 퍼지지는 않았으나 애초에 부실공사가 이뤄졌던 게 아니냐는 추정도 있다. 당시의 기술 수준으로 화성 축성은 당시의 넉넉잡아 10년은 걸려야 하는 공사인데 4년 만에 서둘러 완공하다보니 허점이 있었던 게 아니냐는 거다. 
거기에 더해 공사비 문제가 있었다. 국고가 아니라 정조가 비자금으로 공사비를 댄 만큼 비용을 아낄지 않을 수 없었고, 하여 일부 부재를 생략하기도 했을 것이라는 짐작이다. (한겨레 5월1일자, <정조의 '팔달문' 해체하고 깜짝…부실공사였다>) 서두에 언급한 화서문 주막설은 아마도 이런 배경 때문에 생겨난 듯하다. 

어쨌거나 '화성=완벽한 문화재'라는 '신화'를 다시 생각해보게 한다는 점에서 이 설도 가치가 적지 않다. 흠결이 전혀 없어야만 자랑스러운 문화유산이라는 건 좀 유치한 발상이다. 진정한 사랑은 결점까지 사랑할 때 완성된다.

그런데, 이 설과 관련해서 한 번 더 따져보고 싶은 대목이 있다. 그렇게 공기에 쫓기고, 공사비 부족에 시달리며 공사를 했는데도 팔달문이 200년을 거든히 버텨내지 않았나 하는 점이다. 21세기 건설회사가 최첨단 기술과 설비를 동원한다 해도 200년 버티는 건축물을 세우기 어렵지 않나? 

더군다나 공기가 촉박한데다 인부 노임까지 주막집 차려 조달할 정도로 공사비에 쪼들린다면 아예 엄두도 못 낼 일 아닌가? 그런 점에서 팔달문은 두바이의 몇 백 층 초현대식 빌딩보다 몇 백 배나 자랑스럽다. 
4년 동안 22조원이나 들여 강바닥에 콘크리트 퍼붓는 소견머리로는 여러 번 죽었다 깨도 이루지 못 할 위업이다. 정리하자면, 원래 부실공사 아니었냐는 진단은 번지수를 좀 잘못 짚은 결과가 아닌가 싶다. 

※뱀발-지난겨울 <꾸나, 청소년 스마트 사진전>의 심사를 한 적이 있다. ('꾸나'는 청소년들과 함께 꿈을 꾸자 '꾸나', 같이 놀자 '꾸나'에서 따온 말이다. 청소년들과 더불어 호흡하고 살아가야 한다고 믿는 사람들의 모임 이름이기도 하다.) 수원의 오랜 생활중심이었던 남문(팔달문) 일대에서 오늘날의 청소년은 어떤 꿈을 꾸며 살아가는지 사진으로 스토리텔링해보게 하자는 취지에서 시작된 사진전이다. 

16명의 학생이 스마트폰으로 자유롭게 찍은 작품 30여 점을 보내왔는데, 하나같이 순수한 시선이 신선했다. 그 가운데 한 학생(중학교 2학년)의 사진이 지금도 기억난다. 가림판을 덮고 공사중인 팔달문을 오른쪽에 두고, 왼쪽엔 겨울나무 한 그루를 포착한 사진이다. 사진의 수준은 그리 뛰어나지 않았지만, 사진설명이 기특했다.
"오래 볼수록 의미를 안다.(제목) 이 사진의 첫인상은 텅 빈 느낌이다. 그러나 이를 보고 또 보면, 분주한 남문 속의, 지금까지 혼자 쓸쓸히 견뎌낸 나무 한그루를 볼 수 있다."

맞다. 보고 또 보고, 자세히 자꾸 보면, 안 보이던 게 보이고, 팔달문이 고단하고 쓸쓸한 삶들마저 보듬고 있다는 걸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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