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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 키핑, 들어 보셨습니까?
김재철/칼람니스트, 농학박사
2013-11-18 14:15:45최종 업데이트 : 2013-11-18 14:15:45 작성자 : 편집주간   김우영

발안 옛 장터에 자리 잡은 자그마한 순댓국 집. 주인아주머니가 직접 순대를 만들고 김치를 담그는 등 밑반찬도 몸소 챙긴다. 주인아주머니는 시어머니에게서 만드는 법을 배운 순댓국 장사가 벌써 20여년이 되었다고 묻지도 않은 이야기를 꺼낸다. 
어린 시절 고모가 서울에 산다고 하기에 멀리 부산에서 고모 따라 나섰다가 수원에 도착, 서울행 버스를 타는 줄 알았더니 발안행이란다. 고모는 발안에 살면서 서울 산다고 큰 소리 친 것이다. 그 바람에 옆집 총각 눈에 띠어 지금까지 살아왔단다.

브랜드 없는 순대는 마냥 순박해 보이지만 술안주로 제격이다. 또한 김치는 조미료 등을 넣지 않아 집에서 담근 손맛이랑 비슷하다. 얘기 하나 마나 이집 순댓국은 김치 덕에 더욱 감칠맛이 난다. 대규모 식당에서 먹는 김치는 어쩌면 무척 단 맛이 나거나(쏟아 부은 조미료 덕분이겠지), 짜거나, 빨간 색이 돌더라도 맹숭맹숭한 맛이다. 대부분 담근 지 얼마 안 된 김치로 손맛이 거의 없는 배달김치이다. 나는 이런 김치에는 젓가락이 가지 않는다. 

김치는 젖산발효 식품으로 발효가 시작되면 김치 재료들이 갖고 있는 당분, 아미노산, 무기질 등과 소금이 반응하여 발효 미생물을 직간접적으로 돕는다. 발효가 진행되는 동안 일반 부패균 등은 서서히 죽어가고, 유산균들은 급격히 증가한다. 유산균의 작용으로 생긴 젖산 등은 김치 특유의 상쾌하고 새콤한 맛과 향을 낸다. 이렇게 최고의 맛에 이르렀을 때 비타민 등의 함량도 최고치를 보인다.  

김치발효에 관여하는 젖산균의 종류는 다양하며 김치를 알맞게 익혀 준다. 또한 식이섬유를 만들어 신진대사를 촉진시키는 역할을 한다. 깍두기에 묻어나오는 끈적끈적한 국물은 소화와 변비에 효과가 있다. 김치가 시어진다는 것은 발효과정을 거치면서 미생물에 의한 여러 가지 성분변화가 일어나 독특한 맛과 영양을 지니게 되는 것을 말한다. 

주인아주머니는 다른 손님에게는 얼마 전 담근 듯 한 김치를 내오지만 나에게는 항상 특별히(?) 간직한 신 김치·깍두기를 내온다. 신 김치 국물 떠먹는 모습을 신기한 듯 바라보다가, 첫 대면부터 나의 입맛을 파악한 것이다. 
오늘은 지난번에 '키핑'('보관'대신 아주머니가 사용한 '키핑'용어를 그대로 사용)해 두었던 것이라며 내가 양은 반합 한쪽 구석에 남긴 신 열무김치를 내온다. 적은 양이지만 다른 곳에 활용하지 않고 간직 해 둔 것이다. 

 
김치 키핑, 들어 보셨습니까?_1
김치 키핑, 들어 보셨습니까?_1
김치 키핑, 들어 보셨습니까?_2
김치 키핑, 들어 보셨습니까?_2

하기야 집에서도 신 김치를 즐기면 효과적이다. 다른 가족들은 생김치는 잘 먹지만 시어질수록 쳐다보지도 않는다. 이때부터 나의 독무대가 시작된다. 그야말로 상부상조. 어린 시절,동생 두 녀석이 한 놈은 포도 알만, 한 놈은 포도 껍질만 먹어치워 남는 쓰레기가 없던 것과 같은 맥락이다. 

일본에서는 한국산 소주도 '보관'하는 고급술에 속한다는 기사가 심심찮게 눈에 띠지만, 어정쩡한 걸음걸이 순댓국집 아주머니의 신 김치 '키핑'은 의외로 신선하다. 혹시 남긴 밥도 '키핑'하지 않을 까 모르겠다. 덕분에 나는 '키핑'한 신 김치를 즐겨먹는다. 
내친 김에 옛 사기대접을 '보관'해 둔 인근 식당에 들러 막걸리 한 잔 들이켜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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