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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의 주력(酒力)이 향상되었습니다
김재철/칼럼니스트, 농학박사
2014-04-07 11:08:59최종 업데이트 : 2014-04-07 11:08:59 작성자 : 편집주간   김우영

오늘 아침 아내는 눈 뜨자마자 콜라 큰 것 한 개와 속이 쓰리고 침 삼키기가 힘드니 약 좀 사오라고 거실에서 서성대는 나에게 다그칩니다. 
아니 7시도 안되었는데 약국 문이 열렸을까요. 8시에 마트 들러 콜라 사고, 돌아오는 길목의 약국은 아직도 문이 닫혀 있습니다. 일단 콜라 들고 집으로 왔습니다. 누워있는 아내는 콜라 뚜껑을 따라고 지시합니다. 뚜껑을 따니 컵에다 달라고 합니다. 

9시가 조금 넘어 약국에 갔습니다. 속 쓰림 방지약이라고 알약과 물약을 줍니다. 아내는 물약 뚜껑을 따고 알약도 뜯어달라고 합니다. 11시가 가까워지자 이번에는 참치김밥 두툼하게 말아달라고, 김밥 집에 다녀오라고 합니다. 오늘 아침은 이상합니다. 내가 요양원에 자원봉사 온 것 같습니다.

어제는 봄바람이 불어 서봉산 산행을 마다한 아내가 보기 안 되어 점심 후 발안천변 벚꽃 산책길에 가자고 했습니다. 산책길이라야 빨리 걸으면 5분 거리도 안 됩니다. 어슬렁어슬렁 사진 몇 장 찍고 돌아왔습니다. 골목길 사이로 산책길을 내려오더니 아내는 미장원에 잠깐 들른다고 합니다. 먼저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아내의 주력(酒力)이 향상되었습니다_1
발안천변의 벚꽃길

잠시 후 찰보리 택배가 온다기에 나가 보았더니 아파트 정문에서 아내가 걸어오는 모습이 보입니다. 나를 보더니 생맥주 한 잔하고 들어가자고 합니다. 벚꽃 산책길 다녀오더니 목이 말랐나 봅니다. 이 시간에 어디 가서 생맥주 마시냐고 물었더니 정문 옆 치킨 집은 오후 1시경이면 문을 연다고 합니다. 웬걸, 아직도 문이 닫혀 있습니다. 아파트 주위를 돌고 돌아 몇 군데 호프집을 더듬었지만 문 연 집은 없습니다. 

할 수 없이 가끔 드나드는 순대국 집으로 향했습니다. '병맥주 시키면 될 것이다' 라며 스스로 위로하면서. 
주인아주머니는 순대국 두 그릇을 가져옵니다. 순대국에는 조선사발 머슴밥 마냥 순대가 수북하게 쌓여 있습니다. 그리고는 알타리 신 김치를 비롯하여 창란젓, 짠지 무, 계란탕 등 집안 반찬을 다 꺼내옵니다. 식구들을 만난 기분이랍니다. 점심 먹은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여기에다 맥주를 마십니까? 순대국과 밥은 살짝 옆으로 비끼고 일단 막걸리를 시켰지요. 

그런데 식당에는 손님이 한 사람 있습니다. 오후 3시가 가까워 오는데 점심 손님은 아닌 것 같고 동네 분이 놀러 온 것 같습니다. 50대 초반의 아주머니입니다. 막걸리 한 잔 권했더니  근무 중이라고 합니다. 근무 중에 마시는 술이 제일 맛있다고 치근대었더니 입맛을 다십니다. 조금 있더니 아내는 소주를 시킵니다. 막걸리는 배만 부르다나요. 참! 

이야기를 듣고 보니 아주머니는 같은 아파트 옆 동에 살고 있습니다. 막걸리 한 잔 들더니 소주를 마십니다. 졸지에 나만 막걸리를 마시게 되었습니다. 물론 소주도 한 잔씩 받아 마셨지요. 주인아주머니는 맥주를 꺼내 듭니다. 술은 까닭이 있어 마시고 까닭이 없어 마신다더니, 졸지에 술 파티가 열렸습니다. 

냉장고를 들락날락, 막걸리, 소주, 맥주 덕에 네 사람은 얼큰해졌습니다. '인생은 짧다. 그러나 술 마실 시간은 충분하다' 그런데 6시가 다 되갑니다. 집에 와 잠에 떨어졌습니다. 눈을 떠 보니 밖이 어둑합니다. 아직도 저녁인가 했더니 벌써 아침입니다. 그래서 오늘 아침에 내가 봉사활동을 한 것입니다. 

아내는 휴대폰을 식당에 두고 왔다고 합니다. 둘레둘레 보니 주방 위에 있습니다. 이번에는 겉옷을 두고 왔다고 합니다. 
술꾼이 전봇대를 보면 웃옷을 전봇대에 걸고 구두 벗고 전봇대 밑에서 편히 잠든다고 했더니 아내는 웃습니다. 그래서 현관문을 나섰지요. 아니나 다를까? 겉옷은 현관 앞 박스위에 고이 접어놓았더군요. 식당 주인아주머니도 어제는 일찍 문 닫고 주무셨답니다.

어제 아내는 마음 놓고 편하게 마셔댔습니다. '얼큰히 취하는 사람이 최상의 술꾼이다'. 임어당의 말대로 아내는 최상의 술꾼이 되었습니다. 당연히 주력(酒力)이 향상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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