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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파괴된 '우화관' 복원 시급
고호/문화유산 관리과
2012-02-20 18:13:21최종 업데이트 : 2012-02-20 18:13:21 작성자 : 편집주간   김우영

현재의 신풍초등학교 위치는 조선시대 정조대왕 때 건립된 화성행궁의 일부인 우화관(于華館)이 있던 터이다. 우화관은 1789년에 세워진 화성유수부의 객사(客舍)로 왕을 상징하는 전패(殿牌)가 보관되어 매달 초하루와 보름에 대궐을 향해 예(禮)를 올리던 곳이다.

신풍초등학교는 1896년 소학교령에 의해 수원향교 부근인 교동 2번지 일대에서 수원군공립소학교로 개교하였다. 이후 현 위치로 이전하여 우화관을 개조하여 교실로 사용하였는데 1933년에는 민족말살정책에 따라 의도적으로 우화관을 철거하고 그 자리에 교사를 신축하였다. 6·25전쟁으로 파괴된 후 재축하였으나 그 이후 화재로 인하여 소실되는 바람에 현재의 교사는 1986년 신축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 

일제강점기인 1920년부터 서울과 지방 도시에 있는 왕도의 상징물들이 파괴되고 식민지 통치를 위한 관청·학교·은행 등이 들어서게 되었다. 민족의 고유성을 제거하려는 민족말살정책이 본격화됨에 따라 우화관은 학교 교실로 개조되어 1933년에 철거되었다. 우화관 뿐만 아니라 화성행궁의 다른 건물들도 훼손되어 다른 용도로 쓰였다. 봉수당과 장락당은 수원 자혜의원으로 사용되었고 낙남헌은 수원군청으로 사용되었다. 이후 낙남헌을 제외한 건물들이 병원시설 확충과정에서 철거되는 수모를 겪기도 하였다. 

화성행궁의 훼손과 우화관의 철거는 민족의 얼과 혼이 담긴 우리 고유의 문화유산을 훼손한 행위였으며 일본은 민족문화유산을 철저히 파괴하여 일본문화에 동화시키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화성행궁 등 우화관을 복원하는 것은 단순한 문화재 복원이 아닌 말살되었던 민족문화의 전통을 되찾는 중요한 일인 만큼 시급히 추진해야 할 과제이다. 

수원화성은 정조대왕의 아버지에 대한 효심과 왕권 강화의 일환으로 1794년에 축성되어 2년 뒤 완성되었다. 화성은 유형원과 정약용의 설계를기본으로 하여 영의정 채제공이 성역을 주관하고 화성유수 조심태 등이 감독하였다. 6·25전쟁과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파괴된 것을 1975년부터 복원하여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다. 특히 화성 성곽은 석재와 벽돌을 사용하였고 총포를 방어하는 근대적 성곽구조라는 점에서 18세기 성곽건축사상 독보적인 건축물로 평가받아 199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행궁은 왕이 지방에 능원참배, 전란, 휴양 등의 목적으로 거둥할 때 임시로 거처하는 곳으로 화성행궁은 규모나 기능면에서 단연 으뜸으로 뽑히는 곳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정조시대 실학정신을 바탕으로 위민정신과 개혁정치를 실천하고자 한 역사적 공간이자 혜경궁 홍씨의 진찬연을 베풀었던 효의 상징적인 공간이며 세계문화유산인 수원화성의 중심에 위치한 건물이다.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파괴된 것을 1996년부터 복원하여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화성행궁은 조선시대 행궁의 모습을 재현할 수 있게 된 문화유산으로 역사적 학술적 가치가 크기 때문에 화성행궁의 복원은 우리 문화유산을 되찾는 일련의 작업으로 봐야 한다. 

수원시는 2002년 화성행궁의 주요시설들을 1단계로 복원하여 2007년 국가지정문화재 지정(사적 제478호)을 받았으나  아직까지 2단계 복원을 못하고 있는 실정으로 그 동안 2단계 4개 시설을 복원하기 위하여 270억원을 투입하여 사유지 매입 등 8년에 걸쳐 지속적으로 추진하여 오다가 신풍초등학교의 이전 문제에 부딪쳐 난항을 겪어 왔다.

 

일제강점기 파괴된 '우화관' 복원 시급 _1
일제강점기 파괴된 '우화관' 복원 시급 _1

수원시는 그 동안 수원교육지원청 및 학교측과 지속적으로 협의하여 왔으나 학부모 및 동문회가 난색을 표함에 따라  화성행궁 복원공사를 완료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더 이상 행궁의 복원을 미룰 수 없는 실정이며 신풍초등학교를 제외한 복원예정지를 확보한 상태에서 역사 바로 세우기 차원에서라도 신풍초등학교의 매입 및 이전이 불가피하게 되었다. 한편, 신풍초등학교의 학생수가 급격히 감소하여 2012년에는 전교생이 7학급에 190명 이내에 불과하고 가까이 580미터 떨어진 남창초등학교 역시 학생수가 6학급에 90명 이내 여서 신풍초등학교의 학생들을 인근에 위치한 남창, 연무, 화홍초등학교로 분산 수용하기로 하고 분산되는 학교에 시설개선을 해주는 등 신풍초등학교의 보상과는 별도로 56억(수원교육지원청20억부담)지원하여 학생들이 더 좋은 환경에서 공부를 할 수 있도록 시설을 개선할 수 있게 대폭 지원하는 것은 물론, 남창초등학교는 아토피 치유학교로서 전국적인 특성화가 될 수 있도록 특별 지원하고 현재 신풍초등학교에서 운영중인 취타대에 대한 지원도 지속적으로 실시하여 학생들의 학습 환경은 획기적으로 개선할 계획이다.

그 동안 일제가 민족문화유산을 철거하고 그 위에 신풍초등학교 건립하였던 어두운 역사는 신풍초등학교가 2013년 3월 개교하는 광교택지개발지구로 이전하게 됨으로써 근대교육기관으로서의 역사와 전통은 보존하면서 문화유산도 함께 복원하는 길이 열리게 되었다.

그 동안 문화유산을 아끼는 시민들은 일제에 의하여 왜곡된 역사를 안타깝게 여겼으나 2013년에 신풍초등학교가 이전하고 그 자리에 우화관이 들어서는 등 2014년이 되면 화성행궁의 전체 시설이 복원된다 하니 다행스럽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으며 신풍초등학교 또한 115년의 역사를 보존할 수 있어 퍽 다행이고 학교가 광교로 가면 더욱 발전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이에 대하여 수원시는 올바른 역사관을 가지고 수원교육지원청과 학부모 및 동문회와 원만히 협의하여 2014년까지 화성행궁이 전부 복원되도록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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