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온 갖가지 단풍으로 이리오라 손짓하더니만, 벌써 입동을 지나 겨울이 다가오고 있다. 늘 이맘때면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우리를 괴롭히는 질병이 있었으니, 그 이름은 늘 들어도 새롭기만 한 감기라는 질병이다. 다른 질병들과는 다르게 요놈의 감기라는 녀석은 도대체 어떻게 생겨먹었는지 해마다 몇 번씩 기침과 고열을 동반하고도 면역이 생기지 않는다. 화서문과 서북공심돈의 야경- 늦은 밤이라도 화서문 앞의 동그란 옹성은 마치 누군가를 따스하게 감싸 안은 것처럼 찬바람을 막아준다. 그런데 정조의 경우는 유독 감기가 심하여 약원(藥院)에서 진찰하기를 청하여도 이를 자주 거부하였다. 당시 기록을 보면, "선조들을 받들고 백성을 위하는 정성이 조금이나마 통하고 뜻이 기(氣)를 제어할 수 있다면 병이 어찌 나겠는가!" 라고 하며 강한 의지로 감기를 극복하고자 했다. 이런 강인한 마음이 있었기에 18세기 조선을 빛낸 다양한 개혁정치가 가능했을지도 모른다. 특히 수원에 화성을 쌓던 일이 한창 일 때인 1794년 겨울에는 자신의 몸을 먼저 돌보기보다는 성을 쌓는 인부들에게 솜옷과 털모자를 하사하는 자애로운 모습을 보여줘 10년 예상의 공사기간을 3년이 채 안 되는 시간에 끝내는 원동력이 되기도 하였다. 또 지급한 솜옷을 가지고 혹여 중간에 불미스러운 일이 있을까 싶어 직접 그해에 수확한 햇솜인지 아닌지를 꼭 확인할 것을 신신당부하는 모습을 보면 자식을 생각하는 아비의 모습이 연상될 정도다. 요즘 사람들은 잘 모르겠지만, 햇솜은 보온력이 뛰어난데 묵은 솜은 한데 뭉쳐져 있어 보온력이 떨어져서 해마다 새로 솜을 틀어야만 제 기능을 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화성 곳곳에는 혹여 추운날 감기가 들어 고생할까봐 백성을 걱정하는 정조의 마음이 담뿍 담겨있다. 혹여 감기에 걸렸다면, 잠시 하던 일을 멈추고 화성에서 가장 볕이 좋은 화서문 안쪽 구릉에 앉아 잠시 휴식을 취하며 지나간 역사를 추억해보자. 아마도 그런 시간이면 화성의 4대문을 보호하는 둥근 방호물인 '옹성'이 정조의 따스한 두 팔로 느껴질 것이다. 연관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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