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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북시장의 부활을 기대하며
강대욱/경기도 박물관 초대관장
2011-04-11 13:46:12최종 업데이트 : 2011-04-11 13:46:12 작성자 : 편집주간   김우영

상업도시 수원의 어제와 오늘

개성이 고려의 도읍지로 된 고려이래 개성과 수원, 안성은 경기도의 상업지역으로 회자되던 곳이다. 이른바 개성상인, 수원깍쟁이, 안성맞춤이 그것이다. 국토를 남․북으로 관통, 동북아시아 대륙으로 연결된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통로가 개성, 신의주, 수원, 안성으로 연결된 의주로(義州路), 삼남대로(三南大路)다.
  
수원에 화성(華城)이 축성된 18세기 삼남대로의 길목이 영화역(迎華驛)이었다. 

수원에 화성이 축성되는 1790년(정조14) 정조는 새로이 건설되는 화성일원을 살펴보고자 팔달산에 올라 수행하는 좌의정 채제공(蔡濟恭) 수원부사 조심태(趙心泰)에게 이렇게 말했다. 
'거리가 즐비하고 시가가 번창하여 사람들이 일자리를 찾아 모여 들게 하는 특별한 방도를 마련하라.' 

이 지시에 채제공은 '시가를 즐비하게 하기 위해서는 전방(오늘날의 상가)을 조성하는 길밖에 없다'고 전제한 뒤 '서울의 부호가 30여호에게 무이자로 1천냥을 대부해주고 신도시에 서로 마주보고 집을 짓게 하여 매가(賣賈:장사)에 이를 보게한 뒤 몇 년 후에 분할 상환한다면 도시의 면모를 갖추게 되고, 또한 1만냥 정도의 자본을 수원부에 보조하여 매수 희망자에게 팔게 하면 기와집을 짓는데 도움을 주게 되고 공금도 손실이 없을 것이며, 신도시 주변에 매월 6개소의 시장을 개설, 한 푼의 세금도 받지 않고 교역을 자유롭게 한다면 전국의 상가(商賈:상업자)가 소문을 듣고 운집해서 상업이 전주, 안성에 못지않게 번성할 것이다. 따라서 주민생활의 안정은 물론 다른 곳의 주민들을 끌어들이지 않는다 해도 스스로 모여들게 될 것'이라는 방안을 보고했다. 

거북시장 활성화가 필요하다

이때 수원지역에 6개소의 시장이 개설되는 데 거북시장은 영화역을 가슴으로 안고 마장산, 역마산을 배산(뒷산)으로 장안문을 지척에 둔 교통의 요지였다.

거북시장의 부활을 기대하며_1
거북시장의 부활을 기대하며_1


거북시장은 수원상인의 발원지였고 정조임금의 효행, 민생안정, 국운융성의 능행길을 맞이했던 서민의 보람이 가득했던 주막촌의 시장터였다. 
  
1960년대 까지만 해도 이곳은 500여평에 마구간이 있었고 이곳에 말을 놓아먹이던 마장산 역마산이 있어 저 옛날 운송교통의 주인공이었던 마방간과 소장수들이 그리고 등짐장수, 수레에 농산품, 공산품을 가득 싣고 왕래하던 상인들의 실크로드이기도 했다. 
상인과 소장수들이 묵었던 마방간과 주막이 해방후까지도 있었던 수원상인의 아련한 향수가 서린 곳이다. 
 
지명은 생활현장의 역사를 일깨우는 일차 사료다. 
거북시장의 지명 '새수막거리, 술막거리' 는 수원의 상업도시 재래시장의 발자국이 생생하게 서려있고 숨 쉬는 거북시장의 어제이자 오늘의 실상이다. 
  
수원의 상업축제 현장으로 전통 재래시장의 모습, 주막거리가 들어서야 하겠고 저 옛날 나그네의 애환을 달래주던 주막집의 정경, 쪽진머리, 무명행주치마의 여인상을 재현, 화성을 찾는 외국 관광객에게 한국인의 생활상을 보여주는 것이 관광명품이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주막집에서 흘러나오는 흘러간 노래 나그네, 박달재, 번지 없는 주막을 방송하는 것도 거북시장의 애환을 되살리는 길이 될 것을 제안하며 거북시장이 관광도시 화성을 품은 수원의 광관명소로 부각되길 기원해본다.

거북시장의 부활을 기대하며_2
거북시장의 부활을 기대하며_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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