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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은 어디에나 존재한다
윤수천/동화작가
2012-03-27 10:13:57최종 업데이트 : 2012-03-27 10:13:57 작성자 : 편집주간   김우영

'어렵사리' 써서 출판사에 넘긴 원고가 며칠 전에야 책으로 나왔다. 거의 1년 만에 나온 셈이다. 이번 책은 실제 인물을 취재하여 어린이들이 읽기 좋도록 쓴 실화동화이다. 

동화의 주인공은 앞을 못 보는 시각장애인으로 안내견의 도움을 받아 대학교를 다녔고, 졸업과 동시에 서울교육청에서 실시한 교사 시험에 합격하여 현재 중학교 영어 선생님으로 근무하는 젊은 여성이다. 

작년 이맘때였다. 출판사에서 원고를 써달라는 청탁을 받았다. TV 프로에 방송된 인물인데 하도 교육적이어서 동화로 꾸며 어린이들에게 읽혔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나는 청탁자의 진지한 목소리에 이끌려 덜컥 승낙을 하고 말았다. 그리고 계약금까지 덥석 받았다. 

후회를 하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주인공을 만나기가 쉬운 게 아니었다. 게다가 인터뷰도 딱 한 번으로 못이 박혔다. 학교 수업을 위해서는 정상인의 몇 곱을 준비해야 하기 때문에 별도의 시간을 내기가 어렵다는 거였다. 설상가상 주인공과는 전화 통화도 할 수 없는 처지였다. 그녀의 스케줄을 안내견학교를 운영하는 회사에서 쥐고 있었다. 

기다리고 기다린 끝에 인터뷰 날짜가 정해졌다. 나는 안내견학교 관계자, 출판사 직원과 함께 주인공의 집을 방문했다. 그녀는 안내견과 함께 나를 맞았다. 눈만 정상이라면 미인 축에 끼고도 남을 여성이었다. 나는 미리 준비한 인터뷰 항목대로 질문을 했고, 그녀는 간단간단하게 답변했다. 시간이 부족한 관계로 긴 얘기는 할 수가 없었다. 

나는 그날의 인터뷰에다 방송된 내용을 보태어 원고를 완성했고, 이 원고는 주인공, 안내견학교 관계자, 출판사의 검토를 거친 뒤에야 비로소 그림작업에 들어갈 수 있었고, 몇 차례의 그림 수정 끝에야 책이 돼 나올 수 있었던 것이다. 

여기서 내가 애기하려는 것은 어려웠던 책의 제작 과장을 이야기하려는 게 아니다. 인간이란 참으로 대단한 존재라는 것을 이야기하려는 데 있다. 
생각해 보라! 선천성 녹내장을 지니고 태어나 스무 차례나 수술을 받았지만 좋아지기는커녕 나이 열 셋에 앞이 안 보이는 시각장애인이 됐다면 그 절망은 어떠했겠는가? 주인공은 이 엄청난 절망을 딛고 일어나 자신의 꿈인 중학교 영어 교사가 된 것이다. 
물론 그렇게 되기까지에는 곁에서 눈이 되어 준 안내견의 도움이 있었지만 당사자의 의지와 용기가 있었기에 이룰 수 있었던 인간 승리요, 쾌거가 아닐 수 없다. 

나는 이 책을 쓰면서 여러 번이나 손을 멈춰야만 했다. 어느 날엔 한 줄을 쓰고 더 못 쓴 날도 있었는가 하면, 어느 날엔 한 줄도 못 쓰고 그냥 컴퓨터 화면만 멍하니 쳐다보기도 했다. 내가 지금까지 글을 이렇게 어렵게 쓴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누구보다도 속필을 자랑해 온 내가 처음 겪은 경험이었다. 

나는 이 책을 쓰면서 '율마' 란 식물에 대해 알게 된 것도 하나의 수확이었다. 율마란 식물은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쓰다듬어 주면 향기를 내준다고 한다. 그러고 보면 우리 인간도 하나의 율마 같은 존재가 아닐까 싶다. 누군가가 관심을 가져 주고 사랑해 주면 빛을 낼 수 있는 발광체가 아닐까.  

시각 장애란 엄청난 절망을 딛고 어릴 적 꿈을 이룬 장애인 선생님을 맞이한 중학교 교장 선생님은 이런 말로 환영의 뜻을 밝힌다. "정말 잘 오셨습니다. 선생님 그 자체만으로도 이미 학생들에겐 하나의 교육인 걸요. 우리 학교로서는 행운을 잡은 셈이지요." 

그렇다! 세상에는 그가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힘이 되어주는 사람이 있다. 희망이 되어주는 사람이 있다. 찬찬히 내 주위를 둘러보자. 누가 힘이 되어주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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