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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속도를 조금만 느리게
윤수천/동화작가
2012-11-27 13:42:58최종 업데이트 : 2012-11-27 13:42:58 작성자 : 편집주간   김우영

동그라미가 있었다. 동그라미는 둥글어서 어디든 가고 싶은 곳으로 굴러갈 수가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한 조각이 떨어져 나간 것을 뒤늦게야 알았다. 동그라미는 슬피 울며 자신의 잃어버린 한 조각을 찾으러 길을 떠났다. 
그러나 한 조각이 떨어져 나간 탓에 빨리 구를 수가 없었다. 천천히 굴러가는 동안 동그라미는 길에서 만난 곤충들과 이야기를 하기도 하고 나무, 풀과도 이야기를 할 수가 있었다. 갖은 고생을 해가며 애쓴 끝에 동그라미는 마침내 잃어버렸던 자신의 한 조각을 찾는 데 성공했다. 동그라미는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이제 완벽해진 동그라미는 그가 바란 대로 빨리 구를 수 있었다. 그런데 이걸 어쩌나. 너무 빨리 구르다보니 곤충들과 이야기를 하고 싶어도, 노래를 부르고 싶어도 부를 수가 없었다. 동그라미는 생각다 못해 찾았던 한 조각을 살며시 내려놓았다. 그러고는 천천히 구르면서 곤충들과 이야기도 하고, 노래를 부르기도 하면서 다시 기쁨의 날을 보낼 수가 있었다.

위의 이야기는 쉘 실버스타인의 '잃어버린 한 조각'이란 동화이다. 마치 오늘을 사는 우리들을 위해 쓴 듯하다.
속도와 현대는 떼려야 뗄 수 없는 불과분의 관계이다. 그러나 그 눈부신 편리함이 우리의 소중한 것들을 빼앗아 가는 것 또한 인정해야 한다. 

오래 전 안성에 살 때의 일이다. 금광면 사람들이 안성에 볼일을 위해 오고갈 때는 걷는 게 상례였다. 그땐 아직 버스가 안 다닐 때라서 달리 교통수단이 없었던 것이다. 
그러다가 어느 날부터 버스가 다니긴 했으나 금광면 사람들은 여전히 걸어서 다녔지 버스를 타려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남자들 중에는 버스 탈 돈으로 막걸리를 마시고 얘기를 나누면서 가기도 했다. 

그런데 어쩌다가 한두 번씩 버스를 타다 보니 그 편리함에 홀딱 반한 듯, 걸어다니는 사람의 수가 급작이 줄었다. 그뿐이면 괜찮다. 어쩌다가 버스가 고장이라도 난 날엔 사람들이 걸어갈 생각 대신 돈을 추렴해서라도 택시를 불러 타고 가는 거였다. 사람이 속도의 노예가 되고 만 꼴이다.
'좀 더 빠르게'는 올림픽의 구호이나 이젠 현대 생활의 화두가 되었다. 어떻게 하면 남보다 더 빨리 할 수 있느냐가 개인의 소망이 되고 말았다. 그러나 그 바람에 많은 것들이 뒤로 밀리거나 생략되었다는 건 슬픈 일이다.

며칠 전 길에서 아주 오랜 만에 고등학교 동창 A를 만났다. 그는 대학을 졸업하자 곧바로 대기업에 취직이 되어 승승장구한 끝에 중역으로 퇴직한, 소위 성공한 사람이다. 
몇 해 전부터는 고향에 내려가 밭을 일구며 농사꾼으로 살고 있는 친구다. 마침 점심때라서 우린 가까운 음식점에 들어가 찌개를 앞에 놓고 그간의 이야기를 나누었다. 헌데 반주 탓이었을까, A는 불콰한 얼굴로 갑자기 내 손을 잡더니 한 번뿐인 인생을 잘못 살았노라고 엉뚱한 말을 하는 것이었다. 

그게 무슨 말이냐고 했더니 젊은 날에 너무 승진에만 정신을 쏟다 보니 놓친 일이 너무 많아 후회가 된다고 했다. 자신을 공부시키기 위해 논밭을 팔아가며 고생하신 부모님을 제대로 돌보지도 못했으며, 아내와 외국여행도 한 번 못했다면서 고개를 떨구는 거였다. 
친구의 아내는 오래 전에 지병을 앓다가 저 세상으로 갔고 그 뒤 재혼을 하였으나 행복하지는 못했다.

삶에 대한 후회는 누구나 다 하게 마련이다. 특히 요즘처럼 앞만 보고 달려야 하는 시대에는 후회를 하지 않으려고 해도 그게 쉽지 않다. 마치 등산 대회에 나선 선수들처럼 말이다. 등산 대회에서는 누가 제일 먼저 산 정상에 당도하느냐가 중요하다. 그러다 보니 1등을 하기 위해 너도나도 발밑만 보고 숨차게 오를 수밖에 없다. 그러니 산이 어떻게 생겼는지, 그 산에 어떤 식물들이 자라고 있는지는 까맣게 모를 수밖에.

 

 삶의 속도를 조금만 느리게_1
삶의 속도를 조금만 느리게_1

삶의 속도를 조금만 줄이자. 그러면 보이지 않던 것들이 비로소 보이게 될 것이다. 내 주위에 누가 살고 있는지도 알게 될 것이다. 
그무엇보다도 내가 누구이며 무엇을 위해 땀을 흘려야 하는지도 깨닫게 될 것이다. 자신의 한 조각을 떼어냄으로써 길가의 곤충들과 이야기를 하고 노래를 부르게 된 저 동그라미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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