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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華城)을 가슴으로 안은 천혜의 땅
강대욱/전 경기도 박물관장(초대)
2010-05-18 12:52:17최종 업데이트 : 2010-05-18 12:52:17 작성자 : 편집주간   김우영

수원은 경기도의 서울이다. 
백두대간 한남정맥의 주봉인 광교산을 진산(鎭山)으로 동,서,남,북이 수려한 산하로 감싸 안은 곳이 수원이다. 

광교산에서 발원하는 수원천이 수원시민의 생명수로 시내를 관류하고 서호천, 황구지천, 원천천이 농업용수로 촉촉이 적셔주는 곳이다. 

화성(華城)을 가슴으로 안은 천혜의 땅_1
화성(華城)을 가슴으로 안은 천혜의 땅_1

정조(正祖)의 화성 축성으로 도성(都城)을 에워싼 국방의 보루 사대유수부(四大留守府)의 진남 요충이 되어야 했던 수원의 지리(地利)는 화성 축성이 완료된 후 화산의 현륭원 능행길에 장안문을 통과 할때 자신의 마음을 표현한 정조의 시어(詩語)에서 살펴볼 수 있다.

경영흘흘치용장(經營屹屹雉墉壯)
공호중중상설존(供護重重象設尊)
만호횡림호우로(萬戶橫臨湖右路)
삼군기용진남문(三軍氣勇鎭南門)

경영한것 우뚝하다 성담장이 장업하고
겹겹으로 옹위해라 천연의 절벽높다랗네
만호의 민가가 호우로에 가로로 연해있고
삼군의 기개는 장안문에 용솟음치누나

1896년 경기관찰부가 자리했고 1967년 경기도청이 서울의 광화문에서 수원으로 옮긴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일찍이 정조는 화성축성현장이 한눈에 들어오는 서장대(西將臺)에서 수원의 산하(山河)를 가슴에 품은 자신의 심정을 이렇게 표현했다.
"여시본부여시고굉(予視本府如視股肱) 시향시민하이어가(是鄕是民何異於家) 수원은 나의 팔다리와 같은 고을이고 이곳의 백성은 나의 가인이나 부자간과 다를바 없다"

뿐만아니라 화성축성이 진행되는 1795년(정조 19) 국가 경영의 제1과제가 농업에 있음을 만천하에 밝힌 사직단(社稷壇)을 광교산 자락에 세우고 수원부판관 홍원섭으로 하여금 광교산의 신령에게 고유한 제문(祭文)에서 여실히 세월을 일깨우고 있다.

'토지신은 백성의 주인이요 곡식신은 백성의 근본이다.'

어디 그뿐인가 천연의 생명수 광교산의 물줄기를 거두어 조성한 저수지 만석거 주변의 대유둔(大有屯)과 축만제(祝萬堤) 서호(西湖) 주변의 농경지, 현륭원을 풍요롭게 해주는 만년제(萬年堤) 조성등 수원의 산하는 복받은 터전이었다. 

농촌진흥청, 서울농대가 수원에 자리한 것은 이 또한 우연이 아니다. 
필자는 시간이 있을때마다 수원 산하 동북부의 광교산 서쪽의 칠보산, 서남의 삼봉산, 중앙의 팔달산, 숙지산을 오르내리며 수원의 역사와 자연생태, 숲의 의미를 되새기고 있다.

세계인이 공유(共有)하는 세계문화유산 화성(華城)을 가슴으로 안은 천혜의 땅 수원의 산하를 생활터전으로 내일의 국운융성을 정신과 몸으로 헤쳐가는 수원시민은 참으로 행복하다는 것을 여운으로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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