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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을 바로 알자
강대욱/경기도박물관 초대관장
2011-10-10 11:15:48최종 업데이트 : 2011-10-10 11:15:48 작성자 : 편집주간   김우영

경기도를 포용한 땅이 수원이다. 수원은 민족사의 맥에서 천시(天時), 지리(地理), 인화(人和)를 아우르며 오늘의 경기도 수부도시로 발전하는 국토의 가슴이다. 고동치는 가슴은 어머니의 젖가슴과 같은 곳이다. 경기도의 서울 수원에 경기도청이 정착한 1967.6.23 이전의 경기도정을 수행했던 도청의 변화를 되새기며 수원의 오늘을 음미해 본다.
  
경기도청은 조선시대 경기감영으로부터 시작된다. 지금의 서울 적십자 병원이 있는 서울 종로 평동 서대문 우체국일대가 경기감영(도청)자리였다. 그 후 504년이 지난 1896년(고종 건양 1년)에 경기 감영이 수원으로 옮겨졌다. 이 후 일제 강점기에는 다시 서울 광화문 앞으로 이전하였으며 6.25 한국전쟁 당시에는 1951년 3월 24일 정부가 부산에서 서울로 복귀할 때 전쟁의 포화로 지금의 수원 종각앞에 있었던 화성군청을 도청의 임시청사로 잠시 사용하기도 하였다.                          
  
역사의 격동기를 온 몸으로 치러야 했던 수원 산하에 경기도청이 자리 잡은 것은 너무도 당연한 역사의 귀결이다. 1967년 수원이 경기도의 서울로 개막. 세계문화유산 화성이 토해내는 숨결을 대변하며 세계인에 각인된 것은 너무도 당연한 시대조류라고 할 것이다. 

이처럼 수원은 천시(天時)의 고장으로 청동기 삼한시대는 모수국(牟水國) 고구려 때는 매홀군(買忽郡), 고려 때는 수성군(水城郡) 수주(水州) 조선시대 수원(水原)이 되었고, 지리(地理)는 삼남교통, 동북아 대륙의 해상관문으로 지금의 남양만을 포용한 국토의 요충이었다. 수원의 백미는 인화(人和)라고 할 것이다. 경기도청의 수원정착, 그것은 국정지표 운영의 중심축 도정(道政)․  시정(市政)․  수행의 현장이 되었다는 것이다. 
  
수원의 44년, 수원을 바로 알아야할 주인공 수원시민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식은 정신적 버팀목이다. 민족사의 근현대를 관류하는 수원시민의 뿌듯한 자긍심이 꿈틀대는 오늘이다. 
  
지난 9월 29일 장안구 노인대학 강의 주제도 '수원을 바로 알자'였다. 열변을 토하는 필자의 열정 때문만은 아니었다. 모두가 공감 하는 표정에서 흐뭇했던 시간이었다.
  
2004년에 문을 연 파장동의 경기도 기록관은 경기도의 발자취를 일목요연하게 알려주는 박물관의 역할을 하고 있다. 경기도 기록문화의 생생한 자료, 행정사료가 전시된 것은 경기도만이 갖는 독특한 행정역량이었고 수원시민의 주체의식 결정체였다. 
개관 당시 천지신명과 역대 관찰사, 도지사, 시장, 군수, 공직자의 중심 역할 행적에 고유제(告由祭)로 대신한 필자의 마음을 시(詩)로서 발표한 시정(詩情)을 여운으로 남긴다.

경기도 행정사료 전시실
"전시실 왼편은 공직의 행정을 / 전시실 오른쪽은 도정의 흔적을 / 앞에는 국가 발전 행정실상 복원을 / 뒤에는 도정현장 영상을 심었더니 / 하루 종일 / 한강의 물소리가 / 광교산의 산바람이 / 평택, 안성, 김포평야의 안개냄새가 / 그리고 / 경기산하의 / 평원과 산정 / 호수와 계곡들이 / 서로 뒤얽히어/ 전시실 좁은 공간이 / 온통 일천년 경기도의 발자취를 아울러 / 어허둥둥 춤을 추니 / 파천황(破天荒)의 새 지평이여/ 경기도의 천리강산이 여기에 있구나 / 경기도민이여 / 그대들은 황제로다 / 공직자의 생애를 의미있게 살펴보는 곳 / 주체의식통합의 자긍심 공유 / 아! 공직의 발걸음이여 / 내일을 여는 등불이어라.

2005년 새해맞이 광교산 정상에서 노래한 필자의 마음이다. 더불어 경기도의 노래도 "삼각산 솟은 아래 고을 고을이" … 60년대 현실을 벗어나 경기도를 산자락으로 품은 한남정맥(漢南正脈) 주봉(主峰) 광교산(光敎山)을 주제(主題)로 해야 하는 오늘의 수원임을 제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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