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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사는 재미
윤수천/동화작가
2012-06-18 10:36:31최종 업데이트 : 2012-06-18 10:36:31 작성자 : 편집주간   김우영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나는 아침식사 후엔 외출을 한다. 그렇다고 딱히 목적지가 정해져 있는 건 아니다. 20대부터 정년을 하기까지 직장을 다닌 저 버릇 때문이다. 밥을 먹고 나면 일단 집을 나서야지 그렇지 않고 눌러 앉아 있기라도 하면 소화가 안 된다.

시내 나들이에서 시계방 앞에 앉아 채소류를 파는 할머니를 만나는 것은 하루의 첫 기쁨이다. 할머니는 부지런도 하여 내가 그 앞을 지날 때면 어느새 좌판에 채소류를 진열해 놓고 파를 다듬는다거나 마늘을 까고 있다. 
시내를 돌다 보면 이런 소규모의 장사꾼을 만나기란 그리 어렵지 않다. 약국 앞에도, 은행 골목에도, 음식점 앞에도... 이런 할머니들이 쪼그리고 앉아 있는 것을 쉽게 본다. 

그런데 이들의 공통점은 장사의 규모가 작다 못해 어설프기 그지없다는 데 있다. 펼쳐 놓은 물건의 값을 다 합쳐도 몇 만원을 넘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이 물건이 다 팔리는 것도 아닌 듯싶다. 해거름쯤에 지나다 보면 떨이라고 외치는 소리를 심심찮게 들을 수 있으니 말이다.

한 번은 고추 한 주먹을 사면서 물어보았다. 하루에 얼마를 파시냐니까 많이 팔아야 삼만 원 정도란다. 그 돈으로 뭘 하시냐고 물으니, 가족들 반찬값에 보태는 재미가 쏠쏠하단다. 그러면서 이게 버릇이 돼놔서 이젠 집에 있으면 갑갑해서 못 견딘단다. 
그냥 일어서기가 뭣해서 고생이 심하시다고 한말씀 드렸더니 웬걸, 재미있다는 말이 돌아왔다. 땡볕에서 뭣이 그리 재밌냐고 여쭈었더니 아침부터 사람구경 실컷 하는 재미, 지나간 세월을 돌아다보며 추억하는 재미, 오늘 번 돈으로 집에 무얼 사갈까 궁리하는 재미...그런 재미에 시간 가는 줄 모르겠단다.

나는 돌아서면서 가슴이 참 따뜻했다. 세상에는 저런 재미도 다 있구나! 아니, 저 재미야말로 세상의 그 어떤 재미보다도 값질 수 있구나!

요즘엔 돈이 모든 것의 우위에 놓이다 보니 웬만한 액수가 아니면 만족하지 못하는 게 우리들의 현실이다. 몇 천만 원 가지고는 돈 있다 할 수도 없고, 최소한 억 정도는 가져야 돈 있다고 할 수 있는 세상이다. 아니다! 억도 한 단위로는 부족하다. 두 단위 정도는 돼야만 돈 운운할 수 있는 세상이 돼버렸다.

그런데 가만히 보면 이런 시대의 흐름과는 반대쪽에서 삶의 재미를 누리는 이들이 있음을 본다, 앞에서 얘기한 난전의 할머니들도 그들 가운데 하나임에 틀림없다. 잘 해야 하루 삼만 원의 돈벌이 임에도 타박하지 않고 오히려 거기서 삶의 즐거움을 취하는 저 작은 행복!

직장 다닐 적에 돈 때문에 웃고, 돈 때문에 운 동료를 보며 크게 느낀 바가 있다. C는 입사 당시엔 가난을 헤쳐 나가느라 정신없던 친구였다. 그런데 어느 날 큰돈이 굴러들어왔다. 아버지가 작고하면서 유산으로 물려준 땅이 개발 붐을 타고 천정부지로 치솟은 덕분이었다.
C는 그 돈으로 주택도 새로 장만하고, 자가용도 고급으로 구입했다. 그러고는 술집도 대포집에서 룸살롱으로 바꿨음은 물론 휴일이면 온 가족을 데리고 놀러 다니기에 바빴다. 

그러던 어느 날 가족을 태우고 휴양지에서 돌아오던 중 교통사고를 당해 온 가족이 병원 신세를 지게 되었다. 문병을 간 내게 C는 이런 말을 했다. "내가 잠깐 어떻게 됐었나 봐요. 큰돈이 갑자기 생기니까 세상이 돈짝만 하게 보이더라고요. 이번 일이 없었으면 삶의 어두운 골짜기에서 영영 헤어나지 못했을지도 몰라요. 다행히 요만한 대가를 치루고 정신을 차릴 수가 있어서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어요."

C는 그 뒤 고급차를 실용차로 바꿨고 룸살롱 출입을 삼간 대신 삼겹살에 소주를 마셨다. 그리고 휴일마다 떠나던 나들이도 반으로 줄였고, 나들이를 할 적엔 자가용 대신 기차나 고속버스를 이용하였다. 이십 년도 더 지난 이야기다.

그렇다! 돈만 가지고 세상 사는 재미를 얻는 건 절대 아니다. 오히려 돈을 적게 들여서 더 큰 삶의 즐거움을 얻는 경우도 있다. 잘해야 삼만 원도 안 되는 채소류를 놓고 하루해를 붙잡고 사는 저 난전의 할머니에게서 나는 삶의 교훈을 오늘도 깨달으며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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