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량문제 해결을 위한 동서 전문가의 만남은 서호에서 이뤄졌다
쌀의 원산지는 인도 또는 중국 운남성, 콩은 한국, 중국이 원산지이다. 배추 원산지는 중국, 밀은 터키, 이란지역, 감자는 안데스, 옥수수는 멕시코가 원산지이다. 이 같은 연구결과를 발표한 사람은 러시아의 식물유전학자 바빌로프(1887~1943)이다.
그는 "재배식물의 기원중심지"를 발표하고(1926) 재배식물의 기원중심지를 중국, 인도를 포함한 미얀마 등 동남아시아, 중앙아시아, 근동, 지중해 연안, 에티오피아, 멕시코와 중앙아메리카 그리고 페루, 에콰도르, 볼리비아 등 남미국가 8개 지역으로 구분하였으며(1940), 그 후 다른 연구자들이 12개 지역으로 세분하였다.
이 같은 결과는 1916년 바빌로프 자신이 직접 이란 및 파미르 지역에서의 밀, 보리, 호밀 야생종 탐색, 수집을 시작으로 1926년~1933년 지중해연안, 아프리카, 아시아, 북미, 중미, 남미 등 52개국을 탐험하고 이와 함께 세계 전역 180개 지역을 탐색한 러시아탐험대의 탐색결과였다.
또한 바빌로프는 1929년 일본을 방문, 각 지역의 식물자원을 수집하면서 일본강점기 당시 한국에서도 콩, 팥, 밀 등을 수집하였다. 이들 자원은 이듬해 한국 수집자원으로 등록하였고 지금도 당시 수집된 자원을 보존하고 있다.
한편 미국 정부는 식량공급원으로서 콩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콩 전문가 도셋(1862~1943)과 모스(1884~1959)를 중심으로 콩 유전자원을 수집하기 위한 동방탐험대를 조직하고 1929년 3월 일본에 도착한다. 탐험대는 도쿄에 콩 탐색 본부를 설치하고 10월 중순까지 일본 콩을 수집한다.
그리고 1929년 10월 한국에 들어와 콩 유전자원을 수집하고 1개월 후 일본으로 돌아가 1930년 3월까지 일본의 콩 자원을 수집한다. 이후 1930년 4월~10월에는 중국 동북지역의 콩 유전자원을 수집하고 1930년 11월~12월 다시 한국에서 수집활동을 계속한다. 그후 일본으로 돌아가 탐색활동을 계속한 후 콩 유전자원 4,500 여종을 수집하여 1931년 4월 귀국한다.
모스가 확보한 콩 유전자원은 병해에 강한 품종 개발에 큰 공헌을 하며 미국이 콩 생산량 세계 1위를 차지하는데 밑거름이 된다. 이들 수집종들은 다음세대를 위하여 보존하여야 할 자원이지만 자연 상태에서는 이미 이들 수집종들은 존재하지 않는다.
우연히도 동서 양 진영의 세기적 식물학자 러시아의 바빌로프와 미국의 도셋·모스 탐험대는 한국을 방문한 1929년 10월 21일 서로 만난다. 그리고 함께 수원에서 농사시험장, 지금의 농촌진흥청을 방문한다. 그리고 서호, 항미정을 찾는다.
이타적 과학자 바빌로프와 콩 전문가 도셋·모스의 만남, 지구촌 식량문제 해결을 위한 동서 전문가의 첫 만남은 이렇게 물의 고장 수원, 서호에서 이루어졌다.
정조대왕의 백성사랑이 깃든, 한국농업의 핵심 수리시설을 상징하는 식량자급의지의 발원지인 서호. 가히 뜻 깊은 만남의 장소라 하겠다.
'부어(鮒魚=붕어)의 살이 찌는 서호'. 자아작고(自我作古), 젊은 시절 서호 둑에 앉아 한 잔 술을 마신 연유로, 이후 나는 수십 년을 서호를 곁에 두고 지내왔다. 서호공원, 둘레 길을 곁에 둔 서호는 진정 만남의 장소로 으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