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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눈’이 아니라 ‘새눈’이랍니다
최형국/문학박사, 무예24기연구소장
2012-12-10 15:52:52최종 업데이트 : 2012-12-10 15:52:52 작성자 : 편집주간   김우영

얼마 전 올 겨울 들어 첫눈이라는 이름하에 엄청난 폭설이 세상을 뒤덮었다. 그런데 첫눈이라고 하면 2012년 1월에 내리는 눈이 말 그대로 올 해의 첫 번째 눈이 될 것이다. 조심스레 사료를 살펴보니, 조선시대에는 '첫눈' 이 아닌 '신설(新雪)' 즉, '새눈'이라는 예쁜 이름을 사용했다. 그리고 그 고운 새눈이 내리면 조정의 모든 신하들이 한 곳에 모여 임금님께 예를 표하는 신설하례(新雪賀禮)라는 것을 진행하였다. 

그런데 새눈과 관련해서 재미있는 풍습이 있었으니, 이른바 '새눈 선물하기'였다. 
이 풍습은 고려시대때부터 시작해서 조선시대에도 행해졌는데, 새눈이 내리면 그 눈을 귀하게 포장해서 약이 되는 보양식이라고 속여 장난을 치는 것이었다. 
얼마나 정성스레 새눈을 포장하는지 보통 사람들은 귀한 선물을 받았다고 기뻐하는 마음이 너무 앞서 자주 속았다. 그래서 잔뜩 기대하는 마음으로 선물을 열어보면 그저 눈 녹은 맹물만 한 가득 있었으니 얼마나 당황했겠는가. 

여기에 이런 '새눈 선물하기'의 장난에 속으면 당연히 한턱을 내야한다는 불문율이 있었으니 해마다 새눈이 오기만을 기다리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다. 
그래서 이후에는 만약 새 눈을 약이라 속이고 보냈는데, 그냥 받은 사람은 반드시 한턱을 내야하고, 만약 이것이 장난이라는 것을 미리 알고 그 심부름 온 사람을 잡으면 보낸 사람이 도리어 한턱을 내게 되었다. 
새눈을 가지고도 이렇게 재미있는 풍습이 있었으니, 한번 즈음 우리도 친한 지인들과 함께 해볼 만한 놀이인 듯하다.

그런데 하늘에서 펑펑 내리는 눈이라는 것이 보는 사람들의 처지에 따라 달리 보이는 것은 옛날이나 오늘이나 다름이 없었다. 문무백관을 넓은 궁궐 마당에 불러 모아 새해의 풍년을 기원하는 성격의 신설하례의 눈은 축복일 것이고, 이제 막 사귀기 시작한 풋풋한 연인들에게도 그들의 만남을 축하해주는 하늘의 하얀 선물일 것이다. 

그러나 가난을 두 어깨에 짊어진 헐벗은 백성들에게 눈은 추위와 배고픔을 상징하는 엄동설한의 시작을 알리는 종소리와 같을 것이며, 군에 갓 입대한 이등병들에게는 하늘에서 내리는 눈은 드넓은 연병장에 쓸어도 쓸어도 또 다시 쌓이는 하얀 쓰레기와 같은 느낌일 것이다. 
약간의 과장일지는 모르나 해마다 군부대 옆에 겨울만 지나가면 눈과 함께 쓸려간 흙들이 쌓여 작은 언덕이 만들어지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첫눈'이 아니라 '새눈'이랍니다_1
새눈이 내린 화성행궁의 정문 신풍루-화성에서 제일 좋은 명당자리에 자리잡은 화성행궁은 새눈이 쌓여 더욱 눈부시다. 정조시대로의 역사여행 일번지는 역시 화성행궁이다

조선시대에 성군과 폭군을 구별하는 방법이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딱 한 가지 명확한 사실이 있다. 
바로 엄동설한에 백성을 얼마나 굽어 살피는지를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조선의 대표적인 폭군으로 불렸던 연산군은 폭설이 내리는 날에도 수십 명의 기생을 옆에 끼고 술독에 빠져 술안주로 사용할 산짐승의 고기를 잡아오라 하여 백성들을 강제로 동원에서 사냥몰이에 내몰아 많은 사람들이 동상에 걸리거나 목숨을 잃는 경우도 많았다. 

반대로 정조의 경우는 눈이 많이 내리는 겨울에 수원 화산(花山)에 묻힌 아버지 사도세자(장조)의 능에 참배하는 것도 백성들이 눈 쓸기가 힘들 것 같다는 이유로 봄이나 가을로 능행을 미루었던 것을 보면 성군의 모습을 눈을 가지고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설 먹이(歲食)이라고 해서 추운 겨울이 되어 백성들의 쌀독에 밑바닥이 보일 때 미리 국가에서 쌀을 저리로 빌려주어 겨울을 나게 하는 환곡(還穀)을 가장 자주 시행한 국왕이 바로 정조였다. 

바로 그런 정조의 따스한 마음이 있었기에 화성 성곽에 내리는 눈이 더 포근하게 느껴지는 것은 비단 필자 뿐만 아닐 것이다. 새눈을 바라보며 화성과 정조를 한 번 더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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