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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의 산실(産室), 수원의 생명력
강대욱/경기도 박물관 초대관장
2011-06-07 11:36:07최종 업데이트 : 2011-06-07 11:36:07 작성자 : 편집주간   김우영

시(詩)는 역사를 캐고, 흙은 역사를 묻는다고했다. 수원산하의 역사를 캐는 정조(正祖)의 시어(詩語)가 수원의 농경문화 생명력을 일깨우는 인문학의 원천(源泉)이다.
  
"만년제(萬年堤) 윗길 /더딘 수레소리에 멈추고/ 경사로히 금같은 알곡을 나르네/ 옥같은 벼 결실이 잘돼 풍년들기를/ 빈풍농악에 새참이 나오고....." 

융릉 능행길 길목, 만년제 위에서 수원 농민들이 농사짓는 것을 보고 읊은 시정(詩情)이다. 
만년제 저수지는 1797년(정조21) 민생군주 정조의 인문학을 대변하는 상징으로 오늘에 회자되는 농경 문화유산이다. 

인문학은 인류의 문화를 주도한 인물과 문물의 높고 우아한 지적 감정을 배양한 궤적이다. 염태영 수원시장의 지론이다. 
"수원시는 화성을 통해 정조의 개혁정신 실학정신, 문예부흥 애민사상, 효사상이 실증적으로 나타나 있는 도시다. 이러한 전통가치를 매개로 인문학 중심도시를 만들고자 한다" 
전폭적으로 동감하면서 농경문화를 주도했던 정조의 화성축성, 만년제, 축만제, 대유둔의 지명(地名)이 수원의 인문학 생명력으로 기지개를 켜야 하는 수원시 오늘의 이정표다. 
  
역사는 지나간 일의 결과가 아니다. 역사는 장차 올것 때문에 있는 것이다. 
수레의 중요한 것은 축(軸)이다. 역사의 가장 중요한 것은 민족정신, 국민사상이다. 중심축이 없는 바퀴, 밀면 밀수록 이리 구르고 저리 구르고 하듯 역사도 정신이 빠지면 어지러울 뿐이다. 함석헌선생의 잠언이다. 

수원은 민족사의 궤적에서 한시도 빼놓을수 없었던 중심축이었다. 백제의 건국, 고구려의 남진통로, 신라의 통일거점, 국운개혁의 고려왕조, 조선왕도의 터전을 남북으로 옹위한 삼남대로의 길목이 수원이다. 
10세기 이래 오늘날까지 삼남대로의 피할수 없는 생활상의 노선이 남태령, 과천, 지지대고개, 수원, 오산, 천안, 공주, 논산, 여산, 삼례, 정읍, 갈재, 장성, 나주, 영산포, 강진, 해남, 제주로 이어지는 삼남대로를 손짖하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거점도시가 수원시의 어제이자 오늘이다. 

고려태조의 광교산 명명(命名) 병자호란 전승지 김준용 장군의 호항곡 지명 화성축성과 백성을 위한 민생군주의 정신적 귀의처 성신사 사직단, 창건 도성(都城)방위사령부 장용외영을 수원에 설치, 수원은 한국사를 조명하는 인문학의 산실되었다.
  
동양문화를 풍미하는 서한(西漢)시대 가의(賈誼)의 앞차의 바퀴자국은 뒤차의 교훈, 사마천(司馬遷)의 사기열전(史記列傳)과 함께 국조단군이래 한국사의 맥미로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화성성벽의궤는 수원을 상징하는 인문학의 총서다. 
중국의 인문학은 사기를 일컬어 사가지절창(史家之絶唱)이라고 사마천의 사기와 같은 책은 없다고 했다. 

수원의 '화성성역의궤'는 동양사의 기록문화 유일한 보물로 왕조실록과 함께 인문학의 상징임을 여적으로 남기며 "열사람이 멀리서 본것은 한사람이 몸으로 겪은 것만 못하다"는 임진왜란 국난을 수습한 선조(宣祖)의 유언을 마음에 간직하며, 이제 수원시민은 고전 읽기를 통해 과거를 재조명하고 현재와 미래를 투시하는 힘을 얻어 진정한 삶의 가치를 발견하는데 앞서가는 시민이 되고자 제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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