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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궁동의 겨울농사
정수자/시인
2010-11-17 13:07:10최종 업데이트 : 2010-11-17 13:07:10 작성자 : 편집주간   김우영

김장하는 날은 잔칫날이다. 수원시 모든 동에서 김장을 담그고, 그것을 나누는 연례행사를 하고 있는데 그 날은 마을잔치가 된다. 부녀회원이나 봉사자들이 기꺼이 나와 각 동의 겨울농사를 같이 준비하는 것이다. 이웃과 함께 하는 시간은 옛 마을의 따뜻함을 일깨운다. 

행궁동 김장하는 날. 동사무소 지하에 들어서니 부녀회원과 봉사자들이 벌써 절인 배추를 씻고 있었다. 곧이어 전날부터 준비한 김치 속을 버무리는가 하면 너도나도 둘러앉아 속을 넣는 한국적인 진풍경이 펼쳐졌다. 이 일을 계속 해온 분들의 익숙한 손끝에서 매콤한 향기와 활기가 싱싱하게 퍼져나갔다. 김치 냄새가 맛있게 퍼지는 가운데 쌈을 한 입씩 넣어주고, 떡도 서로 먹여주고 하면서 김장 판은 한층 무르익었다.  

이번 김장에는 '나눔바자회'로 마련한 약간의 수익금을 배추 값에 얹은 화성연구회 회원도 동참했다. 늦게 온 회원까지 합하면 20명 정도가 참여했다. 남자 회원들도 양복에 앞치마를 두르고 속을 넣으며 부지런히 제 몫을 해냈다. 이렇듯 화성연구회가 행궁동 김치 담그기를 같이 하는 것은 행궁동의 사정에 마음이 더 쓰이기 때문이다. 화성의 아름다움을 위해 얼마간의 손해를 감수하는 주민들에게 조금이나마 예를 표하고 싶었던 것이다. 

행궁동은 화성으로 인해 좀 특별한 지역이 되어 있다. 무엇보다 화성 안에 산다는 이유로 이런저런 규제를 많이 받는 것이다. 그 때문에 다른 동에 비해 낡은 단독주택이 더 많은 데다, 어려운 이웃이나 독거노인도 많은 편이다. 그래서 따뜻한 손이 더 많이 필요한 곳이다. 요즘은 '마을 만들기'로 도시 속의 새로운 마을 문화를 만드는 중이지만, 화성과 더불어 행복하기 위해서라도 더 많은 관심과 지원이 필요한 곳이다. 

사실 행궁동은 매우 중요한 곳이다. 정조가 화성을 쌓고 정치적 이상을 실현하려던 중심지인 때문이다. 행궁동은 정조가 현륭원 행차 시 머문 행궁뿐만 아니라 근대적 중상정책을 펴기 위해 조성한 '팔부자거리'가 있던 곳이다. 또 행궁에서 어머니(혜경궁 홍씨)를 위해 연 진찬연이며 수원의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위민 행정을 편 신풍루 등 모두 역사적으로 귀한 장소인 것이다. 정조의 정신과 사랑이 오롯이 담겨 있는 행궁동, 이곳을 아름다운 전통의 마을로 살려갈 때 화성도 더 빛날 수 있을 것이다. 

김장을 조금 돕고 점심을 잘 먹어 화성연구회 측은 오히려 송구한 마음이 들었다. 김장의 추억으로 얻은 게 더 많았던 것이다. 배추의 노란 고갱이에 빨간 속을 넣어 한 쌈씩 먹는 한국의 맛. 거기다 생굴을 넣은 무채며 돼지고기 수육에 떡과 막걸리까지 있었으니,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한국의 진미를 다시 맛본 시간이 됐다. 이 날 김장 500포기는 행궁동 안의 독거노인과 중증장애인 100가정에 전달했다는 후문이 또 훈훈하다.

수원 하늘에 김치 냄새가 퍼지던 날. 침 삼키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요란했을 법하다. 그만큼 김장에는 특별한 게 있다. 이런 전통을 더 흥겨운 마을축제로 키우면 좋겠다. 김장은 강추위도 따뜻하게 넘게 해주는 겨울농사가 아니던가. 행궁동 김장을 같이 하면서, 부디 김치라도 넉넉해서 배고프고 서러운 사람 없는 수원을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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