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본문 바로가기하단 바로가기

상세보기
빚을 생각하는 시간
정수자/시인, 문학박사
2010-12-22 13:40:30최종 업데이트 : 2010-12-22 13:40:30 작성자 : 편집주간   김우영

세밑은 조금씩 더 겸손해지는 때다. 자취를 자주 돌아보기 때문이다. 송년 모임으로 경황이 없는 중에도 자신의 맨얼굴을 보면 문득문득 삶이 두려워진다. 되감기 시간이 잦다 보니 흰 머리며 주름도 부쩍 늘어 보인다. 

그러면서 빚도 짚어보는 것이다. 빚은 무섭다. 그 중 몸서리나는 것은 보증이나 사업 실패로 짊어진 큰 빚일 게다. 더 가혹한 빚의 기억으로는 먹고살기 힘든 시절의 장리쌀이다. 선이자로 쌀을 반이나 떼어주고 얻은 빚은 벼를 터는 즉시 바쳐야 하는 장리의 고리였다. 그래도 굶어죽을 수는 없어 그 빚을 다시 지고 삶의 보릿고개를 넘곤 했던 것이다. 

요즘도 빚은 많다. 직접 돈이나 곡식을 꾸는 굴욕 대신 카드를 쓰는 등 양상만 달라졌을 뿐이다. 아니 빚이 갈수록 다양하게 진화하며 우리네 삶을 알겨먹는 중이라고 할까. 대출을 끼고 산 아파트에서 신용카드로 산 자동차를 타고 카드로 산 옷을 입고 밥을 먹으면서도 달콤한 할부의 풍요를 버릴 수 없어졌으니 말이다. 이렇듯 신용이 곧 돈이자 빚이 되는 구조는 이제 되돌릴 수 없는 현대인의 생활양식으로 굳어버렸다. 

그런 빚 말고 빚은 또 있다. 말빚과 글빚, 생각해보면 그 빚도 퍽이나 무섭다. 글빚은 글쟁이의 빚이라 제한적이지만, 말빚은 누구나 질 수 있는 흔한 빚이다. 쉽게 뱉어놓고 실행 못한 말들, 그런 기억이 연말이면 적지 않은 빚으로 쌓여 계고장을 보낸다. "밥 한번 먹자", "술 한잔 하자", "언제 한번 보자" 편하게 던지고 입 닦았다면 다 헛말로 쌓은 빚이 아닌가. 그래서 떼어먹은 말은 없나, 불현듯 뒤가 켕기는 것이다. 

말빚은 말로 먹고 사는 사람들이 두려워해야 할 빚이다. 특히 정치인 같은 부류는 자신의 말을 늘 점검해도 누적되는 빚이 많은 듯하다. 시민의 감시가 점점 매섭지만, 한번 진 빚은 탕감이 쉽지 않다. 말이 곧 행동이어야 한다며 '언행일치(言行一致)'를 마음에 걸고 살아도, 실행이 말처럼 쉽지는 않은 법이니 말이다. 그래서 정치 생명을 종칠 만한 잘못이 아니라도 말을 잘 떼어먹는 자들에게는 말빚의 무서움을 수시로 일깨워줄 필요가 있다.  

올해는 무슨 말을 떼어먹고 있는지, 자신을 다시 돌아본다. 연초에 다짐한 것은 구업(口業)의 경계였다. 남을 함부로 흠잡거나 매도하지 않기, 말을 적게 하되 쓸 말만 효과적으로 제대로 잘 하기 등등. 따져보니 이래저래 켕기는 게 한둘이 아니다. 신중한 편인데도 가당치 않거나 심한 말을 불쑥 뱉고 후회한 적이 꽤 있다. 게다가 칼럼, 평론 등을 쓰고 있으니 말과 글 양쪽에서 걸리는 게 더 보인다. 스스로 거듭 가다듬지 않을 수 없다.

그런 빚을 따지다 보니 산다는 게 다 빚이 아닌가 싶다. 나무에게도 우리는 얼마나 큰 빚을 지고 있는가. 날마다 지나는 길이나 공원의 나무에게 받은 맑은 산소나 위안은 무엇으로도 갚을 길이 없다. 그뿐인가, 우리는 물, 바람, 햇살, 꽃, 별 등 주변의 모든 자연과 부모형제, 이웃, 동료에게 빚을 지며 산다. 그렇게 빚 속에서 이어가는 게 목숨이고 인생인 게다. 

그렇다면 빚은 곧 빛이기도 하다. 삶 자체로 진 빚들은 또 다른 빛으로 가꿔 가면 되는 것. '상처 없는 영혼이 어디 있으랴' 하듯, 빚 없는 인생이 어디 있겠는가. 다만 빚을 다시 빛으로 갱신해갈 때, 더불어 삶도 더 빛나지 않겠는가. 

 

추천 0
프린트버튼캡쳐버튼
공유하기 iconiconiconiconiconicon

 

페이지 맨 위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