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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칼럼] 고장 난 우산 말끔하게 고쳐드립니다
김우영 언론인
2023-08-07 09:01:04최종 업데이트 : 2023-08-07 09:11:27 작성자 :   e수원뉴스

[공감칼럼] 고장 난 우산 말끔하게 고쳐드립니다



장마철이 아니라 '우기'라고 해야 한다는 말에 고개를 끄덕일 정도로 비가 오랫동안 참 많이 내렸다. 장마가 끝나고 폭염이 계속되는 중에 폭우가 쏟아지기도 했다.

 

그러니 외출 시 우산은 필수 휴대품이 됐다. 물론 집에 돌아올 때 온전하게 들고 온 적은 별로 없다. 음식점이든 카페든 버스든 편의점이든 두고 내리는 일이 다반사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올해는 한번 밖에 우산을 잃어버리지 않았다.

   
 

우산 할아버지 노점에/써 놓은 글씨/하늘 고칩니다//비새는 하늘/찢어진 하늘/살 부러진 하늘/말끔하게 고칩니다//머리 위/고장 난 하늘/모두 고칩니다 - 최진 '하늘 고치는 할아버지'

 


위의 시를 읽다 고개를 끄덕였다.

 

어렸을 때 우산 속은 나만의 세상이었고 우산은 하늘이었다. 그런데 그 하늘이 고장 나고 구멍 나 비가 새면 난감했다. 그래서 망가진 우산을 고쳐주는 노점상이나 가게가 많았다.

 

지금이야 살이 부러지거나 천에 구멍이 나는 등 조금이라도 고장 나면 버리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지만 모든 것이 귀했던 시절, 웬만한 것은 고쳐서 썼다.

 

우산이 없는 집도 많았다. 내가 살던 고향에서는 비가 오면 우산 대신 비닐이 재질인 비료 포대 옆구리를 갈라서 쓰고 학교에 오는 친구들이 많았다.

 

우리 집에는 다행히도 우산이 몇 개 있었는데 새것은 없었다. 손재주가 좋았던 아버지가 대나무로 살을 새로 깎아 붙이고 비닐을 덧대 만든 그야말로 '수제품'에 가까운 우산들이었다.

 

 

이슬비 내리는 이른 아침에/우산 셋이 나란히 걸어 갑니다/파란우산 깜장우산 찢어진 우산/ 좁다란 학교 길에 우산 세 개가/이마를 마주 대고 걸어갑니다 - 윤석중 '우산'

 

 

비 오는 날 학교 가는 풍경이 생생하게 그려진다. 그런데 재미있다. 파란우산, 깜장우산, 찢어진 우산이 나란히 이마를 마주 대고 걸어가고 있는 것이다.

 

이 장면을 노경실 작가는 이렇게 설명한다. "'찢어진 우산'을 들고 가는 가난한 아이도, 아버지는 비를 맞고 가고 대신 아이가 들고 오는 커다란 '깜장 우산'의 아이도, 부잣집 아이를 상징하는 예쁜 '파란 우산'의 아이도, 서로 우산 이마를 마주하고 걸어가는" 물질과 소유를 뛰어넘는 사랑과 인자함이 가득한 노래라고.

 

이 노래에서 학교 내 '왕따'는 없다. 부잣집이나 중산층, 또는 찢어진 우산을 들고 온 가난한 아이가 차별 없이 평화롭게 재잘거리며 길을 가고 있다.

 

 

뒤축이 다 닳은 구두가/살이 부러진 우산을 들고 퇴근한다/...(중략)...빗물이 들이치는 낡은 포장마차 안/술에 젖은 몸관악기가/악보 없이 운다. - 공광규 '몸관악기'


 

물론 이런 도시 직장인의 애환을 담은 시도 있긴 하다. 직장에서 나이어린 상사에게 치이다가 살이 부러진 우산을 쓰고 퇴근하면서 포장마차에서 홀로 쓴 소주를 들이키는 애처로운 도시민의 모습이 떠오른다.

 

살이 부러지거나 천에 구멍이 난 우산은 이처럼 많은 문학작품에서 등장한다. 이제 그런 우산을 들고 다니는 사람들을 보기 어려운 현실에서 고장 난 우산은 골칫거리다.

 

인터넷 맘카페 등에는 고장 난 우산 버리는 방법을 묻는 글들이 심심찮게 올라온다.

 

"우산은 어떻게 버려야 하는지 알 수 없어서 계속 숫자만 늘고 있는 현실 입니다. 하나하나 분리해서 버려야 하는지 그냥 속 시원하게 종량제 대봉투에 버려도 될까요?"

 

이에 대한 대답은 "그냥 버리면 안 된다."라는 것이다. 고장 난 우산은 먼저 살(뼈대 철 부분)과 천, 비닐, 플라스틱을 분리해 천은 일반쓰레기, 비닐과 고철, 플라스틱은 재활용 쓰레기로 버려야 한다.

 

<사진> 2019년에 운영된 찾아가는 우산수리센터(사진/수원시 제공)

<사진> 2019년에 운영된 찾아가는 우산수리센터(사진/수원시 제공)

 

하지만 버리기 아까울 정도로 새것이나 사연이 담긴 우산은 수리해 계속 사용하고 싶은 것이 사람의 마음이다.

 

그래서 수원시가 나섰다. 8월 1일부터 11월 30일까지 관내 4개 동(8월 지동, 9월 세류3동, 10월 정자3동, 11월 매탄2동) 행정복지센터를 순회하며, 고장 난 우산을 무료로 수리해 주는 '2023년 찾아가는 우산 수리센터'(오전 9시30분 ~ 오후 3시30분)를 운영한다. 물론 올해 처음 하는 서비스가 아니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중단됐다가 3년 만에 운영을 재개하는 것이다.

 

 

수리센터에는 우산 수리 전문가에게 교육받은 지역공동체 일자리 사업 참여자가 동 행정복지센터에서 망가진 우산을 무료로 고쳐준다. 그러나 골프 우산, 수입 우산, 고가 양산 등 특정 부품이 필요한 우산은 수리 대상에서 제외된다.

 

고장 나거나 사용하지 않는 우산을 기증할 수도 있다. 이런 우산은 수리 후 주민들이 자유롭게 사용한 후 반납하는 '양심 우산'으로 사용한다니 이 또한 좋은 방법이다.

 

버리는 것이 능사가 아니다. 우리 집에도 고장 난 우산이 있나 살펴봐야겠다.

김우영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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