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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칼럼] 화령전에서 가축품평회와 기생잔치를 벌였다고?
김우영 언론인
2023-08-28 09:01:59최종 업데이트 : 2023-08-28 13:07:59 작성자 :   e수원뉴스

[공감칼럼] 화령전에서 가축품평회와 기생잔치를 벌였다고?

 

<사진> 화령전(사진/수원시 포토뱅크)

<사진> 화령전(사진/수원시 포토뱅크)

 

중학교에 다닐 때만 해도 화령전의 가치를 몰랐다. 그저 '옛날 건물이라서 수원시가 관리를 하는구나'하는 정도였다.

 

그 뒤 '화성재인청의 마지막 예인'이라는 중요무형문화재 제79호 발탈 예능보유자 이동안(1906~1995)선생과 그의 제자로 화성재인청 승무·살풀이 경기도무형문화재로 지정된 정경파(1934. 11. 6.~2000. 9. 28.)선생이 화령전 풍화당에서 제자들에게 춤과 소리를 가르쳤기에 기억에 남는다. 이동안 선생은 말년에 화령전의 재실인 풍화당에 기거하기도 했다.

 

'재인청'은 조선 후기 화랭이·재인·광대 등을 포함해 구성했던 지역별 재인 자치 조직이었다.

 

 

의탁할 곳 없는 말년의 '인간문화재'에 대한 예우였을 것이다. 그렇지만 조선조 22대 정조대왕의 영정을 모시고 제사를 지내던 화령전에서 춤과 노래를 가르치고 사람이 기거했다는 것은 30년이 넘은 지금으로선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화령전을 사랑했던 사람들이 있다.

 

그중 한 사람이 나혜석 서양화가다. 화령전 옆에 살았던 그는 화령전과 앞뜰의 작약을 그림으로 남기기도 했다.

 

1960~70년대 초기의 수원문화원을 전국 최고의 문화원으로 가꾼 김승제 원장도 이곳을 아꼈다. 김원장 당시 수원문화원 사무국장으로 근무한 적이 있는 고 차석정 선생은 수원신풍초등학교 5학년 때 김원장을 만난 기억을 말했다.

 

"학교 옆쪽 약 50m 거리에 있는 화령전 뜰 함박꽃(작약꽃)밭에서 매일 같이 잡초를 뽑아 주는 사람을 보았다. 내 어린 기억으로 머리와 수염이 꼭 미국의 링컨 대통령처럼 보이는 사람이었다. 화령전은 효심이 지극했던 정조대왕의 어진이 모셔진 곳이다. 하지만 태평양 전쟁 때라 먹고살기에도 바쁜 시절이었던 탓에 누구 하나 돌보는 이 없는 폐허상태였던 곳이다. 그런 화령전의 잡초를 뽑고 있는 이상한 사람이라니. 기억에 남지 않을 수 없었다" 그가 바로 김승제 원장이었다.


 

화령전은 1963년 사적으로 지정된 데 이어 2019년엔 화령전의 운한각·복도각·이안청이 국가지정문화재 보물 2035호로 지정됐다. 운한각은 화령전의 정전이고, 이안청은 어진을 임시로 봉안하기 위해 만든 건물이다. 복도각은 운한각과 이안청을 연결해 주는 공간이다.

 

"화령전은 왕실건축의 정수를 보여주고, 창건 당시 원형이 잘 남아있어 보물로서 가치가 높다"는 것이 문화재청의 평가였다.

 

나는 2018년 한 매체의 칼럼에 화령전에 대한 글을 쓴 적이 있다. 그 글 중엔 수원시가 실시하는 버스정류장 인문학글판 창작시 공모 최우수작으로 선정돼 버스 정류장에 내걸린 작품에 대한 내용도 있다.

 

'정조의 효심 배어 있는 뜨락/ 혜경궁 홍씨 회갑연 춤사위 너울대고/ 장구소리에 구성진 육자배기 어깨춤이 더덩실/ 효심에 활짝 핀 꽃잎 속/ 정조의 곤룡포에 내려앉은 나비/ 별과 달이 어우러져 불 밝히는 화성의 하늘/ 대대손손 웃음소리 만고에 울려 퍼지리라'

 

전기한 것처럼 화령전은 정조대왕 서거 후 어진을 모신 추모 공간이다. '장구소리에 구성진 육자배기 어깨춤 더덩실' '혜경궁 홍씨 회갑연 춤사위'가 펼쳐질 곳이 아니다. 아무리 '문학적 상상력' 운운해도 너무 나갔다. 심사위원들의 안목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사진> 2019년 열렸던 화령전 고유별다례(사진/수원시 포토뱅크)

<사진> 2019년 열렸던 화령전 고유별다례(사진/수원시 포토뱅크)

 

그런데 실제로 화령전에서는 '장구소리에 구성진 육자배기 어깨춤 더덩실' 행사가 벌어졌었다. 물론 조선시대도 아니고 현재도 아니다.

 

일제 강점기 때인 1927년에 일어났던 일이다.

 

11월 5일부터 3일간 '수원 용인 진위 안성 4군 연합품평회'와 '제3회 수원군 돈계(豚鷄:돼지와 닭)품평'이 화령전에서 열렸다.

 

'여흥'도 준비됐다. 당시 조선일보에 따르면 '동해대곡예단 기생무용, 농악, 연화(煙火:폭죽을 이용한 불꽃놀이)등'이었다고 한다.
 

 

수원박물관이 지난 2011년 펴낸 '일제 강점기 조선일보(1920~1940) 수원기사 자료집'에 이동근 수원광교박물관팀장이 쓴 해제에 따르면 품평회의 목적은 일제의 식민농정 선전을 극대화하기 위한 것이었다. 출품된 종류들은 일제가 수탈을 위해 정책적으로 지원·육성하던 품종이었다고 밝힌다.

 

어쨌거나 화령전 앞뜰엔 돼지와 닭이 사람과 함께 그득했을 것이고 정조대왕의 어진이 모셔졌던 운한각 월대에서는 동해대곡예단의 기생무용, 농악, 불꽃놀이 등이 요란하게 펼쳐졌을 것이다.

 

그런데 왜 다른 장소를 놔두고 하필이면 임금의 영정을 모신 화령전에서 이런 행사를 했을까? 그 옆엔 수원공립보통학교(신풍초등학교)운동장도 있었는데도 말이다. 민족정기 말살! 행궁과 성신사를 파괴한 이유와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김우영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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